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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자리잡기 시작한 주름이 어느 틈엔가 깊어지면서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미장원에 간 김에 앞머리를 좀 잘라달라고 부탁한다. 이마를 훤히 드러내놓고 다니던 내가 내 몸의 변화에, 민감하지 안은척 하면서도 슬그머니 반응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폐경은 아직 나와 상관없는 일, 어느 먼 훗날의 일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다시 태어나는 중년〉에서 폐경기의 연령대를 45세부터 55세까지 정리해 놓은 것을 보면서, 내 나이 마흔 넷을 드디어 폐경기와 연관시키게 되었다. 올해 마흔 아홉인 선배의 편지 말미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폐경이란 말이 참 싫다. 용도 폐기를 선언받는 듯한 기분이 들고, 폐광을 연상시키는 황량함이 그 단어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누군가 제안했던 '완경(完經)'을 이야기해 주었다. '완경(完經)' 이란 월경의 완결이란 뜻이겠다.

저자는 1장 '중년이라는 것'이란 부분에서 중년은 과연 어떤 시기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가족이나 주변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자유에 대한 갈망과 잃어버린 젊음이나 지난 날을 보상받고 싶어지는 마음이 폐경기의 공통적인 변화라고 서술하고 있다. 사춘기때 아이에서 한 여성이 되는 과정을 겪었던 것처럼 이제는 폐경기에는 한 여성이 진정한 인간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2장에서는 '몸의 소리,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권한다. 뇌와 호르몬의 변화, 가슴 속의 두뇌라고 하는 심장에 대한 관심, 자궁과 유방이 보내오는 메시지 읽기, 뼈의 건강과 요실금에 대한 대처 등 중년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건강 관리를 핵심만 요약해서 적어 놓았다.

이어 3장 '나와 화해하는 시간'은 그동안 가정의 평화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참고 지내온 시간이 가져다 준 분노와 우울증을 들여다본다. 용서를 통한 치유와 상실감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경험, 다른 사람에게 기댈 줄 아는 나약함의 가치 등을 꼽으며 좀 더 편안하고 마음 넉넉한 중년기를 보낼 것을 이야기한다.

또 4장에서는 자연의 지혜를 활용하고 운동과 호르몬 대체 요법, 경제적 능력 향상 등을 통해 '새 에너지를 키우자'고 소리를 높인다. 마지막 5장은 내가 행복해야 주변 사람도 행복하며, 어느 계절이나 아름답다는 결론으로 '백마 탄 기사는 바로 나'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중년, 아줌마, 아저씨, 사십대. 나는 중년에 "노년의 입구"라는 말을 보태고 싶다. 노년의 삶을 가만 들여다보면, 노년 역시 인생의 다른 모든 시기와 마찬가지로 동떨어져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아기와 아동기, 아동기와 사춘기, 사춘기와 청년기가 하나로 이어져 있듯이, 중년기와 노년기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로 연결된 인생 과정이다.

어느 날 갑자기 노년기에 접어들어서 노년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또한 노년기에 이르러서 그저 열심히 잘 살면 아름다운 노년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준비할 수 있는 단계인 중년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아닐 수 없다. 중년의 과제들을 잘 해결하고 건강하게 중년의 삶에 적응한 사람은 역시 노년의 삶도 잘 살아나갈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중년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

넘치는 젊음의 에너지와 아름다움의 시기가 지나가고, 남들 사는대로 적당히 따라가며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사는 게 중년은 아니다. 가족이 먹고 살아야 하는 중요한 문제를 끌어 안고, 위로는 부모님을 아래로는 자녀를 돌봐야 하는 중년의 무거운 짐은 어쩜 사람의 평생 삶이 지니고 있는 무거움을 보여주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중년에 이 어려움과 무거움을 모르고 지나간다면, 우리들 노년의 삶이 얼마나 철없고 가벼울 것인가.

중년은 지나온 생과 남은 생의 중간 지점에 서서 생을 한번 점검해 보는 때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 소용돌이 속에서 여성은 폐경을 맞게 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마음과 영혼의 새로운 변화에 맞춰 몸도 달라지는 것이니 오히려 자신을 다시 세우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도 있겠다.

사춘기 이전,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에 앞서 순전(純全)한 몸과 마음으로 생을 배워나가던 것처럼, 이제 다시 인생의 나머지 반을 남겨 놓고 남성과 여성의 소소한 구별에서 벗어난다. 어떤 의미에서는 회귀일 수도 있는 자연이 만든 사람 몸의 변화가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하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그냥 인간으로 남은 인생의 반을 살아가라는 자연의 메시지는 그래서 더할 수 없이 소중하다.

여기에 '그럼 이제까지는 인간이 아니었나'라는 거추장스러운 물음을 덧붙이지는 말자. 그것은 다시 태어나려는 몸부림을 치는 중년의 삶에 딴죽을 거는 어리석은 짓이다. 특히 저자의 말처럼 '진정한 헌신보다는 힘겨운 보살핌'으로 살아온 중년 여성들은 이제 정말 자기를 들여다봐야 한다. 사회는 이것을 도와야만 한다. 아줌마들의 괜한 호사라고 무조건 밀쳐 둘 것이 아니라, 몸도 마음도 새롭게 바뀌는 폐경기 중년 여성들을 새로운 눈으로 봐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들 중년의 삶은 서서히 기지개를 펼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이 책은 크리스티안 노스럽의 〈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The Wisdom of Menopause / 이상춘 옮김 / 한문화, 2002) 의 내용을 간추려 다시 쓴 책으로, 그 책에서 중요 내용을 발췌하고 거기에 우리나라 여성들의 사례를 덧붙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마음 한 편에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도 온전히 우리의 목소리가 담기고 우리의 손으로 직접 쓴 중년 여성 이야기를 가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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