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목포시내병원 정씨 영안실
목포시내병원 정씨 영안실 ⓒ 정거배
전남 목포에서 중학생인 정아무개(12)양 납치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3일 밤 8시쯤. 청송교도소를 사흘 전에 출소한 강아무개(32·무직)씨는 이날 학원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정양을 자신이 훔친 차량으로 납치했다.

2시간 뒤인 3일 밤 10시 10분쯤 딸 휴대폰으로 납치범 강씨는 아버지 정아무개(44·공무원)씨에게 연락, 7천만원을 요구했다. 범인 강씨는 또 경찰에게 알리면 갖고 있는 엽총으로 정양과 동반 자살하겠다는 협박도 했다.

납치 사건은 목포경찰에 접수됐고 아버지 정씨는 범인과 첫 번째 만날 장소인 목포시보건소로 이동했으나, 범인 강씨는 다시 장소를 변경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 목포시내 시중은행 지점으로 돈 건네 받을 장소를 변경한 범인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또다시 이곳에서 3.8㎞ 떨어진 전남 무안군 삼향면 임성역 앞으로 장소를 바꿨다.

경찰과 범인 심야 숨바꼭질

목포경찰서 형사 2명은 이미 정씨 승용차 뒷자석에 동승한 상태였고, 경찰은 범인이 사용하는 휴대폰 위치를 추적하며 경찰력을 이동 배치하고 있었다. 한밤중에 경찰과 범인이 숨바꼭질을 하며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상황이었다.

임성역에 도착하자 범인 강씨는 다시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 통화를 끊지 않은 상태에서 4㎞ 떨어진 무안군 일로역 쪽으로 이동할 것을 요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아버지 김씨와 경찰간에 연락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씨가 자정이 넘은 시간 한적한 시골 도로를 범인 요구대로 비상등을 켠 채 5분 정도 진행하던 중, 강씨는 '돈 꾸러미를 철길 옆에 내려놓고 다시 목포 쪽으로 돌아갈 것'을 정씨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범인이 요구한 장소에 돈 꾸러미를 내려놓고 목포 쪽으로 U턴을 해 상황을 확인한 정씨는 50m 정도 진행하다가 범인차량을 보고 다시 자신의 차를 돌려 돌진했다.

정씨가 딸을 살리기 위해 범인과 정면대결을 결심한 이유는 갖다놓은 돈이 범인이 요구한 7천만원이 아니라 몇 백 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이 돈 액수를 확인하게 되면 딸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경찰 ‘예상 밖 상황 때문’

정씨 가족과 경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정씨는 범인의 차에 돌진해 앞길을 막아놓고 범인차량 운전석 유리가 내려진 것을 이용, 범인의 목을 휘감은 상태에서 격투를 벌였다. 범인 강씨가 갖고 있던 흉기를 정씨에게 휘두른 사이에 납치됐던 딸은 가까스로 탈출했다.

경찰에 따르면 경찰은 격투가 끝나는 시간에 현장에 도착했으나 정씨는 쓰러진 상태였고 범인은 차량을 몰고 도주하기 시작했다.(유족측과 경찰은 격투시간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50분간의 추격전 끝에 범인 강씨는 4일 새벽 1시 50분쯤 무안군 삼향면에서 검거됐다. 그리고 흉기에 찔린 정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건발생 6일 만인 지난 9일 아침 과다 출혈로 결국 숨졌다.

유족들, "늑장대처로 사망" 울분

유족들은 먼저 경찰이 현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대처가 늦어 정씨가 사망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씨의 동생 준택(41)씨는 “야간이었지만 경찰이 주위에 잠복해 있었고, 형이 차량을 충돌시키는 등 상황을 알렸음에도 경찰이 신속하게 현장을 제압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준택씨는 또 경찰이 정씨에게 차량을 직접 운전하게 한 점과 동승한 경찰 2명의 행적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동승한 경찰에 대해서는 유족과 경찰간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유족들은 범인이 돈을 놓고 가라는 장소에 접근하기 전에 탑승했던 경찰이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이 탑승한 상태에서 정씨와 범인간에 격투가 벌어졌다면 수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에 사망에까지 이르는 불행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더구나 유족들은 인근 300m이내에 경찰들이 잠복하고 있었음에도 신속하게 현장까지 접근하지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경찰, 범인 위치 정확하게 몰랐다

이에 대해 경찰의 설명은 유족들 입장과 다르다.

목포경찰서 이경수 수사과장은 “이날 범인이 사용 중인 휴대폰 위치추적을 통해 임성역과 일로역 사이에서 이동중인 것으로 확인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장소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피해자 차량만 따라가는 작전을 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경수 과장은 “그 당시 일로역과 임성역, 그리고 돈을 갖다놓으라는 현장에서 290m 떨어진 장소 등 세곳에 총 20여명의 형사가 잠복 해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씨 차량에 동승한 형사 2명에 대한 부분이다. 경찰은 "돈을 갖다놓은 철길까지 정씨 차에 탑승했다가 목포 쪽으로 U턴 한 뒤 240m 후방에서 형사 2명은 내렸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도 범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차량 제동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려 범인이 나타날 철길 쪽에 행인으로 위장해 접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씨가 경찰의 요구대로 목포 쪽으로 갔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시 현장으로 차를 돌려 갑자기 범인 차량과 충돌하면서 격투가 벌어지는 등 예상 밖 상황이 발생해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유족들은 돈을 내려놓기 전 수 백미터 앞에서 동승했던 형사 2명이 내렸고, 격투가 벌어진 현장에 경찰들이 접근하지 못한 것은 범인이 갖고 있을지도 모를 총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의 설명대로 하면 돈을 갖다놓은 현장에서 290m 떨어진 곳에 차량과 함께 이미 경찰이 잠복한 상태였고. 정씨 차량에 동승했던 형사 2명은 같은 방향으로 현장에서부터 240m거리에서 도보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정씨와 범인간의 격투가 벌어진 것이다.

범행 현장에 ‘무기력한 경찰’ 주민불안

격투 와중에서 범인차량에서 빠져 나온 정양은 잠복해 있다가 현장으로 접근한 경찰차량에 태워졌고, 쓰러진 정씨는 몇 분전까지 동승했던 형사들의 의해 자신의 차로 목포시내 병원으로 후송됐다.

유족들은 야간이지만 경찰이 접근 중인 위치나 잠복해 있는 곳이 격투 장소보다 높았고. 인근에 가로등까지 있어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늑장 대처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경수 수사과장은 “피해자 딸이 현장 증인으로 있는데 경찰이 거짓말 할 수 있겠느냐”고 해명하고 “피해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은 있다“고 밝혔다.

어린 학생 납치사건과 딸을 구하러 갔던 아버지의 죽음, 유족과 경찰간에 책임소재를 둘러싼 대립이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공권력이 범행현장 앞에서 결국 무기력하게 비쳐졌고, 이런 대응이 한 생명을 앗아갔다는 점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숨진 정씨는 지난 91년부터 공직에 몸담아 왔고 1남1녀를 두고 있다. 목포시보건소 동료들은 원칙에 충실한 공무원이었다며 그의 어이없는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