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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의자에 회원들이 마주보고 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정기영 간사가 벌떡 일어나서 재치 있게 자리배치를 하기 시작했다. 남-녀-남-녀-남... 순으로 자리를 앉히고 대화하기를 독려하자,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해졌다.
원정역에서 내려 철길 건너 마을로 들어갔다. 강바람 쐬며 길을 걷는데, 아뿔싸, 길다란 보가 나타났다. 다행스럽게도 물이 보를 덮지 않아 그럭저럭 건널 수 있었지만, 사이가 뜬 곳은 약간 무섭기도 했다. 손이라도 잡아주어야 훌쩍 건너 뛸 용기라도 생길텐데‥.
총각 회원들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손을 잡아주어서 무사히 보를 건넜다. 덕분에 분위기는 더 좋아지고.
이렇게 찾아간 곳은 영화 <클래식>에 나온 나무다리다. 영화배우 조승우가 손예진에게 반딧불이를 잡아주던 바로 그곳이다. 나무다리는 통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것이어서 건너기엔 좀 무서웠다. 게다가 이곳이 알려진 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지라, 약간 흔들리기도 했다. 처녀 회원들은 발이 빠질까 조심조심 건넜다.
강둑길엔 풀이 많이 자라있었다. 하얀 개망초가 키자랑을 하고, 지칭개는 자줏빛 꽃을 감추고 하얀 홀씨로 남아있었다. 전깃줄 위에 통통한 산비둘기떼가 앉아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필드스코프를 설치해 놓고 보았다. 논에 있는 황로, 물 가운데 긴다리를 빠뜨리고 서있는 쇠백로, 중백로, 왜가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멋지고 아름답다.
이렇게 풀꽃과 새들에게 푹빠져 걷다보니, 어느새 길이 끊어지고 개울이 나타났다. 영락없이 신발벗고 바지 걷어올리고 풍덩풍덩 건널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진흙뻘은 미끄럽고 강바닥도 미끄러웠다.
강바람은 불어오는데, 하늘은 어둑어둑, 날씨는 흐릿흐릿하여 빗방울이 떨어진다. 소나기, 혹은 클래식에 나온 주인공처럼 업힐 것을 청하는 무리가 있어 분위기는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
야실마을 느티나무 아래에서 간식거리를 먹고, 잠시 쉬었다. 신발을 고쳐신고 다시 걷기를 시작, 갑천의 안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말 그대로 물안리다. 물을 안고 흐르는 물안리 마을의 흙집까지 꽤나 걸었다.
인적도 없고 차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낚시꾼들이 띄엄띄엄 걸쳐놓은 낚시대와 수면을 차고 뛰어오르는 피라미들이 그리는 작은 파문들만이 저녁 강가의 한가로움을 장식해주고 있었다. 회원모임 들뫼풀에서 관리하는 흙집에 도착하여 밥을 안치고, 찌개를 끓이고, 텃밭에서 상추와 쑥갓을 뜯어다 놓고 술도 한 순배 돌리니 흥겨워 노래가 절로 나온다.
돌아오는 길엔 반딧불이가 따라왔다. 노란빛 푸른빛을 내는 작은 반딧불이를 손바닥에 올려놓자 빛은 사그라졌다. 살그머니 감추어 버린 것이다. 수줍음 많아 서로 말 건네기도 쑥스러워하던 녹색연합 처녀총각 회원들처럼 반딧불이도 빛을 감추었다 드러냈다 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