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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1일 정대철 민주당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6월11일 정대철 민주당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오래 전부터 '정치 9단'으로 불렸으니, 이미 입신(入神)의 경지에 올랐을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오래 전에 했던 말이다.

새천년민주당의 이른바 '신주류' 인사들이 지난 5월 16일 기세도 등등하게 '정치개혁과 국민통합을 위한 신당 추진 모임'(이하 신당추진모임)의 '거사'를 결행할 때만 해도 신당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지난 50∼60년대 자유당 독재와 싸운 민주당(신민당)과 민주주의의 싹이 잘린 '쿠데타의 날'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일도 채 안되어 신당 창당 일정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9∼10월도 늦다며 7∼8월로 당겨야 한다던 창당 일정은 연말이나 내년 초에 창당해도 무관한 쪽으로 '조정'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사부(師父)'인 김원기 고문이 키를 잡고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 3인의 항해사가 서둘러 닻을 올린 신당호(號)는 망망대해에 들어서기도 전에 '뜻밖의 암초'를 만났기 때문이다.

신당 창당 움직임이 이처럼 지지부진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진단이 가능하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는 신당이 '노무현 신당'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진단은 역시 노무현 대통령과 이른바 개혁신당 추진파의 책임으로 귀착된다.

여론조사 지지도 리모델링 > 통합신당 > 개혁신당 순으로 역전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검법 수용과 대미외교에서 보여준 대북정책의 변화, 그리고 '전국정당화'를 명분으로 호남에서 의석의 절반을 내주더라도 영남에서 같은 의석수만 가져오면 이긴다는 개혁 추진파의 '셈법'이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과 노무현 지지층, 그리고 호남 유권자의 상당한 '이반'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여전히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민주당 신당의 가닥은 크게 보아 △'신장개업'(리모델링) △구주류 인사를 포함한 '통합신당' △구주류 인사를 배제한 '개혁신당'의 세 가지이다. 신당 추진모임은 5월 16일 '국민참여형 통합개혁신당'으로 신당의 나아갈 바를 '봉합'해 제시했지만, 이 세 가지 갈래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서울이 지역구이고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도 크게 공헌한 '신주류'의 S의원은 "신당 창당은 불가피하지만 그 앞날을 험난하다"고 고민을 실토했다.

실제로 당에서 여론조사를 해보면, 신당 창당을 제기한 초기에만 해도 유형별 지지도가 개혁신당 > 통합신당 > 리모델링 순이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로 리모델링 > 통합신당 > 개혁신당 순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지도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지도의 순위가 역전된 배경에는 신당 창당의 말만 요란할 뿐 실제로는 지지부진하고, 더구나 시일이 지날수록 권력투쟁의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는 권력투쟁과는 거리가 먼 '밥그릇 싸움'일 수도 있다. 아무튼 신당 논의가 장기화될수록 국민들에게 신당은 권력투쟁이나 밥그릇 싸움 같은 퇴영적 이미지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혁형이건 통합형이건 신당이 민주당원과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기에 앞서 반드시 넘어야 할 '인적 장애물'이 있다. 필자는 그것을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했던 표현을 빌려 '반독재·민주화운동의 빛나는 전통을 지켜온 민주당'의 정통성을 잇는 '적자(嫡子) 3인방'이라고 규정한다.

한화갑의 신당 불참선언은 민주당 정통성 잇는 '적자' 시위

한화갑 민주당 전대표가 지난 5월 25일 오전 국회 중앙기자실에서 신당 불참을 공식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한화갑 민주당 전대표가 지난 5월 25일 오전 국회 중앙기자실에서 신당 불참을 공식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신당이 넘어야 할 첫번째 봉우리는 민주당 대표를 지낸 한화갑 의원(전남 무안·신안)이다.

한화갑 의원은 '뜻밖에도' 지난 5월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원칙과 중심 없는 민주당 해체와 국민 분열의 신당 논의는 성공할 수 없다"며 불참을 공식 선언했다. 한 의원은 나아가 현재 비공식 기구를 통해 추진되는 신당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와 당 개혁을 마무리할 것을 촉구했다.

더 뜻밖인 사실은 한 의원이 단호하게 "대통령의 친위정당화는 반드시 실패한다"고 규정하고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점이다. 그는 "민주당의 후보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신당 논의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 노 대통령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했다.

이른바 '당정분리의 원칙' 뒤에 숨은 채 신주류 강경파를 앞세워 '외곽'을 때리지 말고, 노 대통령이 직접 당원들을 상대로 신당 창당의 당위성을 설득하든지, 그게 아니라면 신주류 강경파들이 '노심'(盧心)을 팔지 않도록 선을 그어달라는 주문이었다.

'중도 관망파'로 분류되던 한(韓) 의원이 대세인 신당에 반기를 든 것을 당랑거철(螳螂拒轍)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또 신당 논의가 지지부진해지고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자, 신당이 쉽게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쐐기를 박으려 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신주류측은 한(韓) 의원의 불참 선언을 '12+1'로 폄하했다. 당을 고수하겠다는 '민주당 정통성을 지키는 모임'(정통모임·회장 박상천)의 12명에 1명이 가세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DJ의 그늘' 밑에서 오랫동안 '탈DJ'를 꿈꿔온 '리틀 DJ'

과연 그럴까? 신주류가 한 의원을 12+1로 평가 절하한 것은 오히려 한 의원을 그만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 의원의 발언이 전해지자 "당이 이렇게 된 것은 그 사람(한화갑) 때문"이라고 비난했던 김원기 신당추진모임 의장이 5월 27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자신의 어제 발언을 물리고 '분당 불가론'을 강조한 것도 한 의원의 '신당 불참 선언'이 갖는 잠재적인 파괴력을 직감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입신의 경지에 오른 DJ만은 못해도, 오랜 DJ 비서 생활에서 얻은 '리틀 DJ'라는 애칭과 최초의 직선 대표라는 경력에서 짐작하듯, 그래도 '정치 7단'은 되는 정치인이다.

그래서 당내의 상당수 의원들은 한 의원의 뜻밖의 강경 발언에 대해 "민주당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 적자(嫡者)임을 자부하는 한화갑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달라는 것 아니냐"고 해석한다.

한화갑 의원이야말로 'DJ의 그늘' 밑에서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탈DJ'를 꿈꿔온 사람이다. 이런 의지는 한 의원의 기자회견문에서도 엿보인다.

"진정한 탈DJ는 DJ보다 나은 정책을 만드는 것"이라는 발언은 한 의원의 복안이, 김대중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하겠다던 노무현 후보와 마찬가지로 민주당과 김대중 정부의 '창조적 계승'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한 의원은 노 대통령과 만나 이런 협의를 함으로써 민주당의 정통성도 살리고 '정책으로 DJ를 넘어서는 탈DJ'도 실현하려고 했으나 면담조차 좌절되자 신주류를 '3류 정치'라고 비판하면서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개혁신당파가 당권 장악과 인적 청산을 내걸고 민주당을 파탄내는 '3류 정치'를 하고 있다는 한 의원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한 의원이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은 낮다.

'노무현 완장'을 차고 신당을 독려하는 이강철 조직강화특위위원은 "신당은 대세이기 때문에 한화갑 전 대표의 협력 없이도 잘 될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신주류가 한 의원을 '포섭'하지 못하는 한 그만큼 신당 창당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Mr. 바른 말' 조순형 "개혁파 먼저 기득권 버리고 영남에서 출마해라"

조순형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선거기간인 지난해 12월 2일 오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22억 수수설'에 대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조순형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선거기간인 지난해 12월 2일 오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22억 수수설'에 대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신당이 넘어야 할 두 번째 봉우리는 신주류 중진이면서 'Mr. 바른 말' 혹은 'Mr. 쓴 소리'로 통하는 조순형 의원(서울 강북 을)이다.

조순형 의원은 민주당 의원 67명이 신당추진모임을 결의한 5월 16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워크숍에서부터 "워크숍은 워크숍으로 끝나야지 여기서 신당 추진기구를 구성하면 참여 안하는 사람에게 소외감을 주고 쿠데타적 모임이라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개혁신당파의 급가속에 대해 일관되게 제동을 걸어왔다. 당초 신당추진위 같은 신당 추진기구를 만들려던 계획이 신당추진모임으로 바뀐 것도 조 의원 같은 신주류 중진들의 반대가 컸기 때문이다.

한화갑 전 대표가 신당 불참 선언을 한 다음날에도 조순형 의원은 "신당 논의가 오래 끌고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신당에 대해 뭔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사실상 한 의원의 발언에 동조해 신주류의 '분당 불사파'를 곤혹스럽게 했다. 그런데 갈수록 'Mr. 바른 말'의 입바른 소리가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는 데 신주류의 고민이 있다.

조순형 민주당 고문의 쓴 소리는 5월 27일 급기야는 분당을 해서라도 신당을 해야 한다는 천·신·정을 겨냥해 "분당도 불사하고 신당을 하겠다는 사람들 가운데 진짜로 지역주의 청산과 전국 정당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영남으로 가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들에게 그런 각오가 서 있다면 나도 영남에서 출마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신주류가 내건 신당 창당의 명분은 지역주의 청산과 전국 정당화다. 신주류 강경파들은 신당의 조건으로 줄기차게 기득권 포기를 강조해왔다.

조 의원은 얘기는 진짜로 기득권을 버리겠다고 한다면 말만 앞세우지 말고 자신들의 선거구부터 내놓고 불모지인 영남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호남 출신으로 지역구가 각각 수도권·서울·전북인 천·신·정 3인에게는 가시 돋친 질책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신당에서 배제할 '5인방'의 이름을 밝혀 구설에 오른 이강철 위원의 신당 추진안 당무회의 표결통과 머릿수 계산에 따르면, 조순형 의원은 강운태 의원 등과 함께 7인의 '입장 미정 당무위원'에 속한다. 신당 추진파가 'Mr. 바른말'을 끌어안지 못하고서 중도파인 강운태 의원 같은 '입장 미정파'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대철 "'노심'과 '당심'은 개혁국민정당과 거리 둔 통합신당"

정대철 대표가 지난 4월 1일 오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이라크전 파병처리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정대철 대표가 지난 4월 1일 오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이라크전 파병처리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신당이 넘어야 할 세 번째 봉우리는 신주류 중진으로서 당대표를 맡고 있는 정대철 의원(서울 중구)이다.

정대철 대표는 10일 당내 신당 논란과 관련해 "개혁신당이 아니라 반드시 통합신당으로 가야 한다"면서 "이 부분에 대해선 노무현 대통령도 어느 정도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안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정 대표는 또 "일각에선 개혁국민정당과 합당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나 의원들은 7대 3정도로 반대가 많다"고 천·신·정과는 다른 입장을 밝혔다.

정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사석에서는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개혁국민정당을 방문해 공개적으로 '연대감'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런데 정 대표는 지금 노심(盧心)과 당심(黨心)은 '개혁국민정당과는 거리를 둔 통합신당'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대철 대표는 지난 5월에도 고위당직자 회의에서 "분당은 현실적으로 호남을 버리는 경우가 될 것이며, 분당된 신당은 수도권에서 어려움을 면치 못할 것"이라면서 "분당은 모두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섬으로써 '털어내기'식 신당을 추진중인 신주류 내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건 바 있다.

정 대표는 신당 추진 움직임이 처음 가시화됐던 4월에는 개혁신당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었으나, 노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 이후에는 이른바 '중진 6인회동'에서 '통합개혁신당'으로 선회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민주당의 모든 세력이 참가하는 신당이 아니면 안된다는 입장을 강조하는 점에서 정 대표의 좌표는 구주류의 '리모델링론'에 더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당대표로서 당내 갈등과정에서 어느 한쪽 편에 설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처신의 어려움을 해석하곤 했다. 하지만 김원기 고문이나 이상수 사무총장 등 당권파조차 "최대한 설득하다 안되면 우리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최후통첩'을 선포한 대치상황에서 '분당 절대불가'를 외친 정 대표의 행보는 '대표 타이틀 때문'으로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관점에서 분당이 현실화 될 경우 정 대표는 신당보다는 민주당 잔류를 택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실제로 정 대표는 지난 5월 22일 신기남 의원 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도 "분당은 절대 안된다, (분당하면) 난 당에 남을 것(Stay)"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무현을 '인우보증'한 버팀목 정대철-조순형의 쓴 소리

호남이 지역구이면서 신주류에 속하는 L의원은 '불가피론'보다는 '불가론' 쪽에 더 가깝다. 이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두고 보십시오, (신당이) 말처럼 안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정국 흐름을 꿰뚫고 있어 '풍향계'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L의원은 한때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했던 의원이다.

L의원이 밝힌 불가론의 근거는 필자가 앞에서 '적자(嫡子) 3인방'으로 규정한 3인의 인간관계론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인 것은 정치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분당을 불사하고서라도 개혁신당을 추진해야 한다는 강경파는 정치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움직이는 생물임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대철 대표와 조순형 의원 두 사람은 신주류에 속한다. 한화갑 의원은 대표 시절 대통령 후보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한화갑 의원과 달리 두 사람은 노무현 후보 지지도가 바닥을 허우적거릴 때도 흔들리지 않고 노무현 후보 곁을 지켰다. 그것은 '집도 절도 돈도 없는 3무 정치인' 노 후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각각 선수(選數)가 5선인 정대철 대표와 조순형 의원의 비중 자체도 그렇지만, 두 사람은 정통 야당 민주당을 대표한 선친의 후광(後光)을 업고 있는 2세 정치인이기도 하다. 곧 정통 야당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두 사람이 노무현 후보의 양 옆에 기둥처럼 서 있는 것만으로도 노무현의 정통성을 '인증'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대선 때 '3무 정치인' 노무현을 '인우보증'했던 바로 그 두 기둥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무현 신당'의 앞날을 험난하게 하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이 존경하는 조순형 의원은 "노 대통령이 직접 신당에 대한 입장을 밝혀라"고 쓴 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고, 사석에서 노 대통령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정대철 대표 또한 통합형 신당 창당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리모델링'을 선호하는 쪽이다.

조병옥·정일형 박사는 민주당 신·구파 갈등 주역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 해답은 6월 11일 정대철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나눈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김대중 "정 대표 얘기 들으니 돌아가신 선생님(정 대표의 선친인 정일형 박사)이 생각나요. 지금 사직동에서 당시 내가 대선 출마 때 그 양반이 표 얻으려고 뛰던 생각이 나요."
정대철 "30년 전이네요."

김대중 "돌아가신 아버님과 사모님(이태영 여사) 평생 은혜를 입었어요. 71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현재 세종문화회관에서) 대회 할 때 그 어른이 피켓 들고 현관 옆에서 서 계시면서 선거운동 하셨어요. 나 같으면 못할 일이죠. 내가 대선 후보가 되자 사무장 맡아주시기도 하시고. 나중에 같이 (76년) 3·1 공동선언(명동성당 시국선언) 참여했고 내외분이 나와 함께 법정에도 서시고…."
정대철 "나이 차이가 나와 20년, 아버지와 대통령님이 20년, 내가 그 중간입니다."

김대중 "국회의원직 박탈당하고도 민주주의를 위해 흔들리지 않았어요. 민주당은 자유당 때부터 시작됐고, 해공 신익희, 유석 조병옥, 장면, 박순천, 정일형 박사로 이어져 왔어요.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도 하고, 많은 공헌을 했다고 생각해요."

김대중-이희호 부부에게 '부부 인연'을 맺어준 '정치적 대부'인 정일형-이태영 부부.
김대중-이희호 부부에게 '부부 인연'을 맺어준 '정치적 대부'인 정일형-이태영 부부.
김대중 전 대통령도 '평생 은혜'라고 표현했지만, 김대중-이희호 부부와 고(故) 정일형-이태영 박사 부부의 인연은 각별하다.

김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혼사도 김정례 전 보사부장관이 중신을 서, 두 사람이 모두 이태영 여사에게 자문해 성사된 것이다. 두 사람을 잘 아는 이 여사가 양쪽 모두의 '보증'을 선 것이다. 또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 신파'로 정치에 입문해 정일형 박사를 '정치적 대부'로 모시고 정치를 배웠다.

DJ가 언급한 조순형 의원의 선친 조병옥 박사와 정대철 대표의 선친 정일형 박사는 공교롭게도 민주당 신구파 갈등의 주역이다. 신익희의 뒤를 이은 조병옥 박사는 김도연·윤보선씨와 함께 민주당 구파의 대표였고, 장면 박사의 뒤를 이은 정일형 박사는 곽상훈·박순천씨와 함께 민주당 신파를 대표했다.

천·신·정이 DJ와 '적자(嫡子) 3인방'을 극복할 수 있을까?

헌정사상 정권을 창출한 집권 여당이 집권 초기에 깨진 사례는 세 번 있었다. 권력을 주체하지 못한 '여당 분열의 법칙'에 따른 것이었다.

60년 4·19혁명으로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은 7·29 총선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신·구 양파 후보가 마치 여야대결을 방불케하는 경쟁을 벌임으로써 심각한 내분을 겪었다. 결국 민주당은 내각책임제 하에서 신파가 승리하여 장면이 국무총리가 되자, 구파측은 스스로 야당의 길을 걸을 것을 선언하고 '구파동지회'라는 국회교섭단체를 만들어 신파와의 결별을 고했다. 그리고 이런 '정치적 혼란상'이 5·16 군사 쿠데타를 초래했던 것이다.

고흥문 전 국회 부의장은 회고록 <못다 이룬 민주의 꿈>에서 "이 나라 정통야당은 집권도전의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하는 시지프란 말인가"라며 야권의 집권 기회였던 해공 신익희 선생과 유석 조병옥 박사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의의 급서(急逝)를 당해 교체가 무산된 데 대해 아쉬워하고, 이후 야권의 분열로 정권교체의 기회가 상실된 것을 회한(悔恨)으로 기록하고 있다.

민주당은 그로부터 30여년만에, 한 세대를 지나서야 헌정사상 첫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런 민주당을 지금 버리려고 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의 버팀목이었던 신주류 중진인 정대철·조순형 두 사람이 민주당 해체를 통한 신당보다는 '리모델링' 쪽을 선호하는 데는 바로 선대(先代)의 회한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조병옥 박사는 회고록에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울 수는 없다"는 어록을 남겼다. L의원은 "정 대표는 '내 손으로 2대에 걸쳐 분당의 방망이를 칠 수는 없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천·신·정이 민주당의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잇는 DJ와 정대철·조순형·한화갑 '적자(嫡子) 3인방'을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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