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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진공업국 정치가들은 만병통치약으로서 자유화를 권장하고 있지만, 그 자유화가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예를 들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로 미국의 값싼 옥수수가 멕시코로 들어가, 멕시코 옥수수 산업이 파괴된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입니다. 그러한 예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무역의 자유화가 아니라, 투자의 자유화에 의해서 세계에서 가장 값싼 임금을 찾는 대기업 사이의 경쟁력이 결과적으로 선진공업국의 실질임금도 내려가게 합니다. 즉, 투자의 자유화는 `착취의 자유화'로 불러도 좋은 것입니다. 이것도 모두 신문을 읽으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15쪽)

▲ 책 겉그림입니다 - 손아귀에 쥘 만큼 자그마한 책입니다. 들고 다니며 버스와 전철에서 읽기 알맞은 책이기도 하고요.
ⓒ 녹색평론사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읽기 아주 껄끄러운 책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나 깊숙하게는 잘 모르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삶에 대충대충 몸을 맞춰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을 뒤집어 놓기 때문도 아닙니다. 지금은 형편이 안 닿지만, 조금 살림이 나아지면 가난한 사람으로서 비판해 마지않는 소비 사회를 바라는 우리 속내를 들켜서도 아닙니다.

모든 나라가 무기를 만들고 군대를 키우는 것은 결국, 군대가 있는 나라의 기득권자와 정치 권력자들만을 안전하게 할 뿐, 실제로는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을 옥죄고 목숨을 앗아가는 얼개를 꼼꼼히 파헤쳐서 알려주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이 책에는 '우리 생각과 삶을 흔들라'는 중심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먹고살기가 힘이 든지, 왜 차별과 억압 얼개가 있는지, 왜 군대는 `적군'보다 아군, 곧 자기 나라 사람들을 죽이는 데 더 많은 힘을 쏟았고, 실제로도 적군보다 자기 나라 사람들을 억누르는 데 쓰여 왔는지까지 낱낱이 밝히고 있어서 읽기가 참 껄끄럽습니다.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는 미국인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군요. 일본에서 사는 미국사람으로서, 미국이 지닌 문제와 일본이 지닌 문제를 살로 느낍니다. 살로 느낀 문제를 꾸밈과 거침이 없이 밝히고 드러냅니다.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는 중심에 서며 일본이 오래지 않아 자위대를 `자위하는 자위대'가 아니라 `공격할 가능성을 헌법으로 보장 받을 자위대'가 되리라는 걸 이미 내다보고(2000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다봄은 2003년 6월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2>

요즘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은 어떻습니까.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어느 후보가 하는 말처럼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셨습니까?" 어떠한지요.

`살림살이'란 무엇을 가리킬까요. 먹고사는 수단, 돈, 가재도구만이 살림살이일까요? 지난 대통령선거 때 어느 후보가 말한 `살림살이'란 먹고사는 일까지 아우르는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고 물 좋은 곳으로 놀러다니고 영화도 보고, 사랑하는 아내나 딸아들, 또는 연인과 오붓한 시간을 지내는 일도 담는다고 생각합니다. 일과 놀이, 여기에 우리들이 하루하루 먹고사는 모든 것과 입고 자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말이 `살림살이'가 아니었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런 살림살이가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경제성장'만 이루면 먹고살기 좋아질까요. 경제성장률이 6%를 넘고 8%도 넘고 10%도 넘으면 먹고살기 좋아질까요. 경제성장률이 빼기(-)로 돌아선다면? 그때는 먹고살기 힘들어질까요?

…한 사람의 테러리스트가 레스토랑에 폭탄을 던져 거기에 있던 5,6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하는 신문기사를 읽게 되면, 참으로 슬퍼집니다. 인간은 어떻게 해서 그러한 짓을 할 수 있는가, 정말로 가련한 사라들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충격 속에서 절망감을 느끼거나, 역시 인간은 나쁜 동물이야, 라고 생각하거나 합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최근에도 미군은 때때로 이라크를 공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문 1면의 큰 기사가 아니라, 5페이지나 6페이지쯤의 작은 기사로 적혀 있습니다. 몇 명이 죽었는가 하는 것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아마 미군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죽었는지 어찌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사를 읽어도 거의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29쪽)


▲ 혼례식장에서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 - 경제성장이 안 되어도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 어떤 세상일까요? 솜사탕을 뜯어먹으며 생각해 볼까요?
ⓒ 최종규
미국은 이라크로 쳐들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했습니다. 제약 공장과 식료품 공장과 생필품 공장마저 죄다 부수어 버렸고 도서관과 박물관마저도 뒤집어 엎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로 느끼지 못합니다.

미군 한 사람 죽은 일은 크게 보도가 되어도 이라크인 100명이 죽는 일은 그냥 후루룩 읽고 지나갑니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 군인에게 온갖 모욕을 받고 린치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일은 그다지 기삿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아무개가 자살테러를 한 일은 큼직한 기삿거리가 됩니다. 죽음이 죽음처럼 다뤄지지 않고 폭력이 폭력처럼 다뤄지지 않으며, 아픔과 슬픔이 아픔과 슬픔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나라마다 군사지출을 늘립니다.

우리 나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살림이 어렵다고 해도 군사지출을 늘린답니다. 그 돈으로 우리 나라살림을, 나라안에서 먹고살기 힘든 사람을 돕는다면, "가난은 나라가 구제 못한다"가 아니라 "가난은 나라가 구제하고도 남더라" 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화 흐름 속에서, 또 무역과 투자 자유화 흐름 속에서 이런 일은 현실로 이뤄지지 않을 듯하군요. 더구나 미국 압력을 받으며 미국 무기를 사라는 억눌림을 받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힘듭니다.

<3>

'전쟁이 갑자기 끝나자 다시 불경기가 될 걱정'으로 혹은 '투자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다시 재건을 한다는 빌미로 투자를 하는 경제가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의 경제 구조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읽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 나라 경제가 미국에 많이 얽매여 있는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미국 경제 구조'가 살아나는 흐름을 타야 우리도 살아나게 됩니다. 참 힘들지요? 그러니 우리는 자립 쪽으로, 경제와 식량 모두 자립 쪽으로 자주라는 길을 걷지 않으면 경제가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스스로 미국을 경제발전이라는 모델로 보면서 미국과 같은 `소비 지향 경제 얼개'로 달라지려 하고 있다는 것.

…모두가 경제발전하면 지구가 견디어내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꽤 오래 전에 어느 환경운동가이자 연구자가 내놓은 계산입니다만,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일인당 에너지 소비를 기준으로 해서, 그것에 세계 인구를 곱합니다. 즉, 로스엔젤레스의 소비율이 세계 전역으로 확산될 경우에 어떻게 되느냐 하면, 지구가 다섯 개가 아니면 그런 생활은 성립이 안 된다는 계
산이었습니다…(83~84쪽)


더글러스 러미스는 말합니다. "물론 그 계산을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도 말하는군요.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또 이런 계산을 했습니다. 세계의 모든 가족이 자동차를 한 대씩 가진다고 하면 석유는 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까? 결과는 수 개월이었습니다. 이것도 앞서와 같이 수 년간일지도 모르고 수일 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론은 같습니다. 지금 현재의 인간의 소비조차 지구는 견디어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지구는 자꾸 상처를 입고 있는데,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로스엔젤레스와 같은 자동차 문화와 소비율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84쪽)

우리 아버지나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말이 `차를 언제 살 거냐?'입니다. 제 대답은 전기자동차가 아주 싼값으로 나올 때 면허를 딸 생각이고, 자동차는 그 뒤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들 웃습니다. 꿈 같은 소리 말라고요. 그래요. 꿈 같은 소리이지요.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자동차를 덜 가져야 우리들이 살아가는 지구 터전이 조금이나마 살기 좋은 터전이 됩니다.

<4>

"돈이 있으면 돈이 없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의 노동력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노동력을 지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부자의 본질입니다"

"회사 경영이란 관점에서 생각하면, 제품은 팔 수 있으면 좋지, 그 제품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좋으냐 나쁘냐는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군사행동이라는 것은 폭력을 행사해서 상대방을 자신의 의사에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내 의사에 따르지 않으면 너를 죽이겠다, 라는 것이 군사행동의 기본인 까닭에 그것은 당연히 민주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중심 생각은 `생각을 바꾸자'입니다. 생각을 어떻게 바꾸자고 하냐면 `경제성장을 하지 않으면서도 다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지구 사회를 만들자'입니다.

▲ 빈대떡 부치는 아저씨 - 빈대떡 한 장을 부쳐 먹으면서 `경제성장이 안 되어도 행복하게 살아갈 우리들 삶'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아도 재밌겠군요.
ⓒ 최종규
더글러스 러미스는 경제성장을 하지 않는 사회 얼개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삶을 가꾸고 즐기는 길을 찾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자기 경험을 말하고, 우리들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지난날부터 그렇게 살아왔음을 밝힙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우리들이 살아갈 날 동안 지난날과는 똑같지 않겠으나 새로운 틀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가꾸고 낳을 `경제성장을 하지 않으면서 즐거운 삶, 행복하고 어울리는 삶'을 가꾸자고 말합니다.

전쟁과 교전권, 자연 환경과 발전, 경제성장과 풍요와 노동, 민주주의와 선거, 에너지, 아메리카 흰둥이, 영어회화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입니다.

현실이 답답하다면 이 책을 찾아서 읽어 보세요.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또 우리가 얼마나 `지속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말이에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개정판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녹색평론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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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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