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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사랑병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4년 차인 김영철(30)씨는 동료 한 명이 휴가를 가는 바람에 현재 40시간째 근무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천하장사도 내려앉는 눈꺼풀은 어쩔 수 없다는데, 김씨의 충혈된 눈은 퉁퉁 부어 올라 한 번 감기면 도무지 떠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 모습에 그저 냉혹할 것만 같았던 의사에 대한 기자의 막연한 고정관념이 일순간에 달아나 버립니다.
수술 전 단계까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치료를 해주는 것이 응급실의 소임이라고 말하는 그는 응급실의 특성상 환자나 보호자들을 끝까지 치료해주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항상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안고 산다 합니다.
'빨리 빨리'라는 한국인의 고질적인 습성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바로 이 응급실이라고 말하는 그는 찰나의 판단에 한 사람의 인생이 360도 뒤바뀔 수 있다며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인라인 스케이트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가는 요즘.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응급실에는 인라인 스케이트에 의한 부상자가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또한 월드컵 이후부터는 축구 열풍까지 불어 부상당한 조기 축구회 회원들도 꽤 많이 찾아온다는군요.
손자의 콧 속에 들어간 콩을 못 빼 죄책감에 휩싸인 할아버지, 오토바이를 타다가 반신불수가 될 뻔한 10대 비행 청소년, 아픈 아기 옆에서 같이 울어버리는 초보 신혼 부부,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꼬마 환자 등 그의 치료를 받은 환자들 사연을 듣고 나니 각양 각색의 인생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김씨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무연고 환자'입니다. 어제는 친지나 가족들에게 연락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한 환자가 끝내 홀로 세상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임종을 앞둔 그 환자를 끝내 살려내지 못한 것도 미안한데, 가장 마음 편히 행복하게 가야 할 마지막 순간마저도 지켜주지 못한 것 같다며 연신 씁쓸해 합니다.
"또 한번 버림받았다라는 생각으로 생애를 마감하게 되는 거잖아요."
김씨는 무연고 환자에 대한 안쓰러움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가 봅니다. 입을 열기가 무섭게 쉴새없이 말이 쏟아져 나오며 급기야 적잖은 흥분에 말의 속도가 빨라지기까지 합니다. 연이어 그는 제대로 된 장례 문화의 장려까지도 언급하며 무연고 환자의 뒤안길에 짙은 애잔함을 표합니다.
"우선은 사람을 살려 놓고 봐야죠? 일단 병원은 사람을 무조건 살려내야 해요."
그는 가끔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환자들이 그냥 갈 경우엔 원무과와 싸워서라도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며 병원의 의무를 강조합니다.
그는 시대가 바뀌면서 환자와 의사 간의 '정'이 수그러든 것 같다며 아쉬워합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흡사 편의점에 들른 소비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는 김씨는 점점 메말라가는 세상살이가 얄궂어보이는 모양입니다.
늦은 밤 보호자의 다급한 방문에 환자를 위해 청진기를 메고 시골길을 달리던 그 따뜻함을 그리워합니다. 고향이 제주도인 그는 실제로 그런 경험에 이끌려 의사가 되었다며 여전히 지금도 잊지 못할 애잔한 향수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혹자는 개업하는 의사들이 '무조건 돈을 많이 벌기 위함이다'라는 오해를 종종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근데 모든 의사들이 다 그렇지는 않아요. 시대가 많이 변해도 아직까지 사람들은 의사에 대해 고정관념을 쉬이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딘가에는 타락한 의사들도 있겠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주위에는 그간 환자들에게 못 대해준 죄를 씻어 버리고 싶어 개업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다급하게 쫓기듯 환자를 돌봐야 했던 레지던트 시절이 너무 죄스럽다며 좀더 쉽게 얻을 수 있는 명예와 부를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죠."
시대가 변화하면서 그는 의사의 존재감이나 위상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고 합니다. 의대를 나왔다고 무조건 청진기를 드는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동물원의 김창기씨처럼 연예인을 부업으로 하는 사람, 보건복지부로 전업해 공무원을 하는 사람, 혹은 학원 강사를 하는 사람 등 사회의 다양한 흐름이 의사들에게도 고스란히 반영된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보통 '의사'하면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같아요. 시골 잔치에 가면 항상 동네 유지들이나 교장 선생님 옆에 꼭 같이 앉아 있었잖아요(웃음). 지금은 저희도 다른 일반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똑같은 사회 구성원의 일부분이죠.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떤 이들은 의사를 낯설어하시는 것 같아요. 전 동창회에 나가면 의학 지식 말고는 도통 아는 게 없어 항상 '바보'라고 친구들이 놀려요. 전 정말 이것 말고는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사회 구성원이에요."
그가 틈틈이 눈을 붙이는 6층 숙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을 칩니다. 사면이 유흥가의 공허한 네온사인과 고막을 울리는 요란한 소음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시원한 바람을 마시러 밖에 나온 들 좀처럼 지친 눈과 귀를 달랠 방도가 없어 보입니다.
유흥가에 반듯하게 자리잡은 병원 위치의 특성상 금요일과 토요일이면 술에 만취한 환자들이 북새통을 이룬다고 합니다. 방정맞은 도시의 공해와 소음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그는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그저 재미있다고 합니다.
"나쁜 쪽으로 생각하지 말고 반대로 돌려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되죠. 전국을 통틀어 아마 이렇게 유흥가에 휩싸여 특이한 곳에 위치한 병원은 우리 병원뿐일 걸요. 어디든 편의점이 있어 먹고 싶은 것도 쉽게 사먹을 수 있고 재밌어요. 단, 자고 일어나면 소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곤하긴 해요."
실제로 몸이 아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그는 의사도 직접 아파봐야 환자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사기치지 않고 인정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을 그는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라며 감사해 합니다.
'오늘도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며 더 열심히 사는 것'이 남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의 소박한 바람입니다.
"의사들은 병에 있어선 무조건 의심쟁이가 돼야 해요. 결국 환자들이 좋아하는 의사가 나중에는 의사들도 좋아하는 의사가 되더라구요. 환자들에게 인정받는 걸 기본으로 계속 공부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공부하지 않는 의사일수록 환자들에게 더 불친절한 의사가 되거든요.
자기가 모르니 계속 다음으로 미루며 말도 안 해주는 거구요. 전 정말 제가 바보같다는 생각을 종종해요. 공부라는 게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환자들에게 친절해지기 위해서라도 계속 공부하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