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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의 절묘한 맞춤 희생양? 16일 오전 10시경 서울 대치동 대북송금 특검 사무실에 소환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해관계의 절묘한 맞춤 희생양? 16일 오전 10시경 서울 대치동 대북송금 특검 사무실에 소환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송두환 특별검사가 지휘하고 있는 대북송금 사건 수사가 '종착지'를 향해 가고 있다. 그 종착지는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다. 아니 전 문광부장관이라고 해야 편견없이 이 사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정확한 호칭이다. 대북송금 당시 그의 직책은 문광부장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과 일부 언론은 '장관'보다는 비서실장이나 왕수석(王首席) 혹은 소통령(小統領)이나 대통령(代統領)으로 부르곤 했다. 바로 그점에서 박지원 전 대(代)통령은 소수파 대통령과 거대야당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특검이 여야를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정치·사법적 '희생양'으로 안성맞춤인 것이다.

대북송금 의혹의 '해답'은 김 전 대통령의 성명에 나와있다

우선, 어차피 이번 대북송금 특검 수사는 미국식 대통령제라는 기본 속성에서 출발한 특검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수사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즉 이번 특검은 클린턴 대통령의 과거 주지사 시절의 비리의혹이나 대통령 재직중의 추문 관련 특별검사처럼 현직 대통령의 소추(訴追)와 관련된 특검이 아니고 현직에서 물러난 '힘없는 대통령'의 과거 통치행위와 관련된 특검이다.

달리 말해 '전혀 어려울 것이 없는 수사'라는 것이다. 게다가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14일 대북송금 의혹 관련 대국민 성명에서 그 '해답'까지 제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실정법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했었다"고 사실상 실정법 위반을 시인하면서 그 책임도 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의 추진과정에서 현대측의 협력을 받았습니다. 현대는 대북송금의 대가로 북측으로부터 철도, 전력, 통신, 관광, 개성공단 등 7대 사업권을 얻었습니다. 정부는 평화와 국가이익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실정법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했었습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문제가 된 이상, 정부는 진상을 밝혀야 하고 모든 책임은 대통령인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검의 할 일은 '뻔한 결과'에 대한 '해석'의 문제일 뿐

바로 여기에 모든 '해답'이 있다. 그러나 특별검사 아닌 '일반검찰'은 '범죄사실'과 '범행고백'을 인지하고서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결국 대북송금 특검의 할 일은 '뻔한 결과'에 대한 '해석'의 문제일 뿐이다.

이것이 이해하기 어렵다면 알기 쉽게 쪼개서 써보자. 요컨대 위 인용문의 문장을 해체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뉘앙스'를 보태어 풀어쓰면 이런 것이다.

△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대측의 협력을 받았다.(김대중 정부 초기 정부간 대화채널이 없는 상황에서 현대의 대북채널을 이용해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했다.)

△ 현대는 대북송금(5억달러)을 대가로 북한으로부터 7대 사업권을 얻었다.(7대 사업권에 대한 '리베이트'조로 5억 달러 대북송금을 약속했다.)

△ 정부는 대북송금이 실정법상 문제가 있음에도 평화와 국가이익을 위해 이를 수용(허용)했다.

△ (남북관계와 국익을 위해 공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공개적으로 문제가 된 이상 정부는 진상을 밝혀야 하고 모든 책임은 대통령인 제가 지겠다.

결국 이번 사건은 △'통치행위'는 사법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학설을 적용하건, 통치행위가 권위주의적 표현이어서 '사법심사 자제'라는 표현을 적용하건 사법처리를 배제하는 것(제1안) △'통치행위'를 인정하지 않되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으므로 김대중 대통령 전 대통령만 사법처리 하는 것(제2안) △'통치행위'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한 '공모자'들을 사법처리 하는 것(제3안) △'통치행위'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김 전 대통령을 포함해 실정법 위반자 전원을 사법처리 하는 것(제4안) 중의 하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불행한 조짐은 특검 수사가 당초 예상과 달리 사법처리를 최소화하는 제1·2안보다는 '제3안'이나 '제4안' 쪽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특검팀도 남북관계에 주는 영향과 국민적 우려 등을 감안해 '조기종결과 사법처리 최소화' 원칙을 표명하고 있기는 하다.

유명무실해진 조기종결 및 사법처리 최소화 원칙

그러나 특검이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과 최규백 전 국정원 기조실장을 남북교류협력법 및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데 이어 '불법대출'에 관여한 혐의로 이근영 전 산은 총재와 박상배 전 산은 영업본부장을 각각 구속 및 불구속 기소하고 이기호 전 경제수석 또한 구속함으로써 사법처리 최소화 방침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특히 이기호 전 수석의 구속은 2000년 5월 당시 이씨와 대출 및 송금 지원을 '협의'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함께 보고한 임동원·박지원 2인의 사법처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 김윤규 사장과 최규백 전 기조실장에 대한 기소는 각각 이를 지시한 정몽헌 회장과 김보현 3차장 및 임동원 전 원장의 사법처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임동원·박지원·이기호 3인에 대한 사법처리는 3인을 지휘통솔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법 논리상 그렇다는 것이다.

현재 돌아가는 품새를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나 특검은 '통치행위'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한 '공모자'들을 사법처리 하는 제3안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부터가 대북 정책과 관련 최소한 김 전 대통령이 열어온 '햇볕정책' 계승은 확고히 하겠다고 말해왔고, 대북송금 사건 특검과 관련해서도 "남북관계를 해칠 만한 수사로 달려가지 않게 최선의 노력을 하겠으며, 남북정상회담의 가치를 손상하는 결과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또 대북송금 사건으로 특검에서 조사를 받은 핵심 당사자들도 한결같이 특검의 핵심 인사들이 'DJ를 사법처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특검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과 특검의 핵심 인사들이 금방 들통날 것이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사법처리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은 여야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안성맞춤 희생양'

그런데 문제는 특검이 임동원·박지원·이기호 핵심 3인을 사법처리하면서 그 3인을 지휘통솔한 DJ를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할 '재간'이 있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핵심 3인이 지금 서로들 "DJ를 위해 십자가를 지겠다"고 한들, 그것이 '국민정서법'에는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법 논리상 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특검으로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신해 '2인자 노릇'을 하면서 '직권을 마구 남용'하고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을 위해 '대북송금을 총괄지휘'한 '희생양'을 찾는 데 주력해왔고, 김대중 정부 말기에 일부 보수언론과 야당에 의해 '대(代)통령'이라고까지 불렸던 박지원 전 비서실장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희생양감'이었던 것이다.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특검 수사 관계자들은 그동안 특검에서 조사를 받은 핵심 당사자들에게 "왜 DJ한테는 장세동이 없냐, 까놓고 말해 우리는 박지원이만 잡으면 된다"면서 특검수사의 최종 목표가 박지원 전 비서실장을 사법처리하는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정황과 진술은 결국 소수파 대통령과 거대야당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특검 수사가 당초에 예상했던 대로 여(與)도 야(野)도 만족시킬 수 있는 '희생양' 찾기로 매듭지어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점에서 박지원 전 비서실장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특검이 여야를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정치·사법적 '희생양'으로 안성맞춤인 것이다.

물론 특검으로선 이런 표현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특검이 노무현 대통령과 거대야당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은 이미 삼척동자도 아는 것이다. 유인태 정무수석도 노 대통령의 특검 수용 이후 '대통령께서 한나라당에 큰 선물을 드린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특검의 박지원 잡을 '무기'는 경협-정상회담 대가 '연계론'

그렇다면 박지원이라는 희생양을 잡을 무기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특검팀이 스스로 밝힌 바 있다.

특검팀은 지난 6월 5일 브리핑에서 중요한 발언을 남겼다. 김종훈 특검보는 이날 "송금 대가성과 관련, A설(정상회담 대가설)과 B설(경협자금설), 그리고 패키지설(두 가지 성격이 섞여 있는 것)이 있다"면서 "패키지일 가능성이 크겠지만 아직 A와 B가 각각 몇 퍼센트인지 계량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또 김종훈 특검보는 그에 앞서 6월 2일 오전 브리핑에서 기자들과 이런 일문일답을 나누었다.

- <오마이뉴스> 보도를 확인해 줄 수 있나.
"보도에 대해서는 일체 확인해 줄 수 없다."

- (참고인·피의자 진술에서) '국가공작 사업'이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확인해 줄 수 없나.
"확인해 줄 수 없다."

- <오마이뉴스>에서 국가공작 사업을 사법 처리한 전례가 없다고 보도했는데….
"과거적 개념으로 '통치행위'라는 논리가 나왔는데, 통치행위라는 말 자체가 권위주의적이라 법률적으로 말하면 '사법심사 자제'라는 용어가 적절하다. 그런데 사회과학에서 학설이라는 것은 주관적 견해의 포장을 의미한다. 결국 통치행위라는 것도 주관적 견해의 포장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국가공작'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사견을 말하자면, 들키면 더 이상 공작이 아니지 않나. 공작이라고 이제 와서 봐달라고 하는 건가."

대북송금의 본질은 7대 경협사업-정상회담 '연계'

이와 같은 문답은 지난 6월 1일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대북송금 특검수사와 관련된 두 꼭지의 기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중 한 꼭지는 "임동원·박지원·이기호 '3인 회의'…DJ, 사전보고 받고 대북송금 묵인" 제하의 기사였고, 다른 한 꼭지는 "특검은 '박지원만 잡으면 된다'고 한다"는 제목의 분석기사였다.

전자는 대북송금 사건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지난 1월 29일 대북송금 의혹사건에 대한 첫 보도 이후 <오마이뉴스>가 일관되게 보도한 이 사건의 본질은 "현대가 정부(국정원)의 '묵인'과 '송금 편의' 제공 하에 당시 동시에 추진된 남북 정상회담과 '연계'해서 '7대 경협사업 대가금'조로 총액 5억 달러를 비밀 송금했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그 연장선에서 최근 "정부(국정원)는 2000년 5월초에 현대-북한 사이의 5억 달러 대가로 7대 사업권 잠정합의 사실을 처음 알게 되어, 5월중에 임동원 국정원장·박지원 문광부장관·이기호 경제수석 3인이 3∼4회 협의해 '묵인'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으며, 3인은 5월말에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해 김 대통령으로부터 '묵시적 동의'를 받았다"고 그 과정과 시점을 '특정'해서 보도했다.

아울러 <오마이뉴스>는 핵심 당사자들의 진술을 인용해 "당시 국정원은 현대가 독자적으로 추진한 '7대 경협사업'을 '매개'로 거의 동시에 병행 추진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한다는 대북전략을 추진하고 있었다"면서 "대북송금 5억 달러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정상회담 대가금이 아니고 7대 경협사업 대가금이지만, 북한의 개혁개방이라는 국정원이 수행한 '국가공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상회담과 연계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오마이뉴스의 '연계론'〓특검의 '패키지설'

결국 '패키지설'에 비중을 둔 특검팀의 발언은 대북송금 사건의 본질인 '대가성'에 대한 특검 수사의 방향이 <오마이뉴스>가 제기한 7대 경협사업-정상회담 대가 '연계론' 쪽으로 가닥을 잡았음을 암시한다.

이는 '7대 경협사업 대가금 5억달러 대북송금' 자체가 당시 정상회담을 추진한 남북한 당국과, 정상회담을 통해 사업을 보장받으려 한 현대 등 '3자의 이익'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이해관계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문제는 특검 수사 관계자들이 '박지원을 잡기 위해' 대북송금에 관여한 현대 임직원들과 현직 국정원 간부들 그리고 핵심 당사자들에게까지도 '면책'을 조건으로 일부 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이들 가운데 일부는 특검의 주문에 대한 '맞춤진술'로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특정인을 잡기 위한 '면책'을 조건으로 한 특검의 수사방식은 향후 특정인에 대한 '표적수사' 시비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김종훈 특검보는 6월4일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오마이뉴스> 보도를 인용해 "국정원 관계자들에 대한 특검조사가 면책성을 전제로 이뤄졌다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면책, 그런 이야기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하면서 "박지원씨 관련 기사를 제목으로만 읽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답변했다.

"면책 그런 이야기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김종훈 특검보의 답변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특검팀에 검사는 김종훈 특검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DJ에게는 왜 장세동이 없냐"는 특검팀 관계자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특검팀은 박지원 전 장관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허물을 뒤집어쓴 장세동 전 국정원장의 역할을 해주길 고대하고 있다. 특검팀 스스로도 DJ를 사법처리하기는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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