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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 바라 본 송도쪽 풍경. 오른쪽 아래 큰 건물이 송도비치호텔이고 멀리 송도신도시 조성지가 보인다.
ⓒ 손영철
청량산이라 하면 대부분은 경북 봉화에 있는 청량산을 떠 올릴 것이다. 나 스스로도 인천에서 생활하기 전에는 청량산하면 봉화 청량산만을 생각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인천 하고도 연수구에 똑같은 이름의 청량산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산세가 수려하여 청량산이라고 지칭하였다는 이 산은 흥륜사, 호불사, 병풍바위, 범바위를 품고 있고 송도유원지가 지척에 있으며 문학산과 더불어 갈 곳 없는 인천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 등산로는 비교적 완만하여 산책로의 느낌을 준다.
ⓒ 손영철
높이는 172m 정도의 낮은 산이지만 급경사 암석 능선이 있어 짜릿한 맛도 느낄 수 있으며 정상에서의 서해 낙조가 장관이다. 하지만 몇 년 전 개발이 시작되면서 인천의 진산인 문학산이 고속도로로 허리가 잘리고 청량산도 주춤주춤 설 자리를 잃더니 지금은 도심 속의 녹색섬 처지가 된지 오래다.

청량산 자락에는 뱀사골이 있는데 약수터로 유명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에는 뱀들이 많이 살았음직한데 지금은 뱀꼬리도 구경하지 못한다.

그도 그렇듯이 청량산에서는 이즈음에 많이 들림직한 개구리 울음 소리가 없다. 개구리가 없으니 그걸 잡아 먹는 뱀이 없을 것은 당연지사고 뱀이 없으니 족제비나 너구리 같은 들짐승들도 자취를 감추었으리라.

그래도 청량산은 아직도 그 아담하고도 수려한 자태를 잃지 않고 있기에 연수구 사람들은 청량산을 많이 찾는다. 나도 1주일에 2~3번 정도는 가까운 청량산을 올라가는데 지난 며칠은 때 이른 장마비로 산에 오르질 못했다.

어제는 마음 먹고 운동화를 갈아 신고 연수성당에서 올라가는 코스로 청량산을 올랐다. 그 코스는 비교적 완만한 산책로 정도로 정상까지 올라갔다 오는데 대략 40-50분이 소요되는 쉬운 코스다.

연수성당을 돌아서 산을 오르는 초입에 누군가가 흙을 쌓아놓은 걸 보았다. 누가 공사를 하는 걸까? 가까이 가서 보니 이런 푯말이 눈에 띈다.

"흙 퍼나르기 운동에 동참합시다. 청량산을 사랑하는 여러분.

나날이 황폐화 되어가는 등산로변 수목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여기 쌓아놓은 흙을 마대(봉투)에 담아 산행을 하시면서 훼손된(뿌리 부분 제외) 곳에 덮고 밟아 보호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마대(봉투)는 재활용 하오니 하산시 제자리에 가져다 주십시오.

즐거운 산행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동춘2동 3.3.7 산악회(동춘2동 자생단체연합회 일동)"


지난 며칠 내린 비로 쓸리고 훼손된 산을 연수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복구하려는 움직임이었다. 하기야 산이 자기 스스로야 어떻게 쓸려 내려간 자기 몸뚱아리를 다시 쓸어 담을 수 있겠는가?

▲ 쌓아 놓은 흙더미에 삽과 마대(봉투)가 보인다.
ⓒ 손영철
▲ 등산객들이 유실된 부분을 흙으로 덮어 놓았다.
ⓒ 손영철






















사람들이야 산을 깎을 줄만 알았지 이렇게라도 다시 덮을 줄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벌써 많은 사람들이 퍼 담았는지 흙더미는 반 정도 남았다.

좋은 일이라 생각되어 마대 2개에 흙을 담아 들었다. 그리 무겁지 않아서 가뿐하게 산을 올랐다.

오르다 보니 여기 저기 먼저 온 사람들이 흙을 덮고 밟아 놓은 흔적들이 보인다. 나는 좀더 올라가서 덮어야지, 하는 욕심에 산 중턱까지 올랐더니 이거 장난이 아니다. 비가 그치고 내리 쬔 햇볕 탓인지 후텁지근하니 등줄기에선 벌써 땀이 티셔츠를 적신다.

마침 근처에 흙이 유실된 나무가 발견되어 일단 큰 구멍은 돌로 괴우고 흙을 부어서 다졌다. 부족한 나머지는 뒤에 오는 사람들이 마무리 할 것이라 생각하니 생전 보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묘한 동료의식까지 생긴다.

▲ 유실된 부분에 흙으로 덮고 밟아 다진다.
ⓒ 손영철
▲ 연수동에서 바라 본 청량산. 중간에 철탑이 솟은 부분이 정상이다.
ⓒ 손영철
정상에 올랐다가 뱀사골쪽으로 내려와서 약수물로 목을 축이니 왜 사람들이 청량산이라 하는지 알 것 같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던가?

나는 산을 좋아하기는 하나 어진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지만 청량산을 찾는 인천 연수구 사람들은 인자라 불릴만하다.

산을 자주 찾는다고 산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산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산을 아끼고 괸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 연수구 사람들은 산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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