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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촉촉한 비가 내리는 소담풀 사이로 달팽이가 고개를 내미는 상상을 해본다. 암흑세계와 같은 껍질 속에서 꼭꼭 숨어 있다가 흙에 묻힌 풀 냄새와 세잎 클로바 위에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릴 때쯤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달팽이를 말이다.

한 때 '감옥'이라는 암흑 속에서 칠흙 같은 시간들을 보냈고, 지금은 나무와 풀들의 미세한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세상의 진리를 알아 가는 달팽이 같은 사람이 있다. 바로 고집쟁이 농사꾼 전우익 할아버지씨이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에서는 자연에 더부살이로 살아가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2% 부족한 듯

늘 가지려고만 하고, 자연을 '늘 그 자리에 있는 것' 이라고 치부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전우익씨는 "그렇게 살아서 뭐 할려고?"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지만, 자연보다 못한 것 또한 인간이 아닙니껴? 벌거벗은 겨울나무와 조금 추워졌다고 한층 움츠러드는 겨울 인간의 모습만 보더라도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도 미안해 집니더." 라고 말하는 듯 하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 속에 떠올랐던 단어가 '무소유'였다. 하지만 전우익씨가 '인간도 한낮 쓰레기에 불과할 뿐이다'라는 말을 할 땐 다소 시대착오주의자가 아닌가, 검소한 생활이 때론 불편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혼자만..> 속에서 전우익씨의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불편함과 편함의 기준이 뭡니꺼? 요일마다 무지개색깔로 옷을 갈아입으면 편한겁니꺼?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방안에서 TV를 보면 편한겁니꺼? 소유한 사람들은 버릴것이 없고 하나만 없어져도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것처럼 호들갑이지만 버릴 줄 아는 사람들은 진정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들을 압니더. 몸 가릴 옷가지와 배고프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있으면 나머지는 군더더기 아니겠는겨? 텔레비전 보니까 2% 부족한 음료수도 나왔던데, 인생에 있어서 소유하는 것들에 대해 2% 부족한 마음만 갖어도 쓰레기는 줄어들 겁니더."

그 만의 검소하지만 칼날같은 예리한 지적들이 들리는 듯 했다.

깨달음의 소리

전우익씨를 혹자는 진정한 농사꾼이라고 칭송하지만 혹자는 시대착오주의자가 아니냐고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뭐라고 평가하건 전우익씨는 부족한듯한 자신의 평범한 삶이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인생(人生)과 목생(木生)은 닮았다고 한다. 딱딱한 겨울 땅을 뚫고 나오는 새 싹과 봄이 되어도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하는 가엾은 나무와 가을마다 거추장스러운 나뭇가지를 털어버리는 나무들. 모두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만나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사랑면허증

전우익씨는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속에서 인간이 자연의 예속물 혹은 지배자가 아니라 동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인간이 좀더 지능적이고 활동적이기 때문에 나무와 풀들을 비롯한 자연을 보살펴주는 것 뿐이라고 명쾌하게 대답한다.

인간과 자연은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쌍방적인 사랑을 해야한다. 아마 세상에 '자연 면허증'이 있다면 꼭 따고 말았을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전우익씨는 인간 자체가 쓰레기라느니, 나무보다 못하다느니 라는 얘기를 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그는 나무를 보며 자신이 지니지 못한 강인함을 부러워하는 것 뿐이다. 작은 씨앗을 통해 민족해방, 인간 해방을 말하고 싶었고, 도랑물을 통해 인간의 멈춰있는 생각들을 꼬집어보고 싶었던 것 뿐이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 사는 이야기

전우익 지음, 현암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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