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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편지
아이들 편지 ⓒ 안준철
'선생님, 저 선연이예요. 못난 고구마랍니다. 오늘 선생님께서 안 오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맘 속으로 힘들어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너무나도 철이 없었나봐요. 선생님, 정말로 죄송해요. 못난 제자를 용서해주세요. 어서 기운 차리시고 저희들 곁에 항상 웃은 얼굴로 있어 주세요. 선생님, 어서 돌아오세요.'

'선생님 다시 웃으시는 모습 보고 싶어요. 다시 아침 자습시간이고, 종례 시간이고 오셔서 웃는 모습 보여주세요. 저흰 선생님의 딸인데 선생님 지도 아래 지낼 선생님의 자식들인데 어떻게 부담임 선생님께 학급을 맡기세요? 선생님 죄송해요. 다시 기운 내시고 저희들 믿어주세요. 그럼 이만 줄일께요.'

'휴.. 선생님 어제 선생님 말씀하셨잖아요. 잘하자구요. 근데 이젠 선생님이 그러세요? 그러지 마세요. 괜히 저희 때문에 다른 애들까지..다시 선생님의 자리로 돌아오세요. 잘할 거예요. 담임을 그만 두긴 왜 그만둬요? 누구 맘대로요..선생님이 그래버리면 선생님도 책임감이 없으세요. 이렇게 끝내버리면 다 되는 건가요? 선생님 혼자 끝내버리면 다인가요? 저는 그렇게 되면 진짜 선생님 미워할 거예요. 저희가 잘못했으니깐 그러지 마세요. 다시 오세요. 우리 딸 보러...'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여태까지 제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정신 차릴게요. 엄마하고..선생님께 뭐라고 드릴 말이 없네요. 학교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약속 드릴께요. 다시 오세요. 그런 모습 이제 보여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번 약속은 절대 어기지 않겠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선생님 죄송해요.'

'사랑하는 선생님, 지금 모(뭐)하시는 행동이세요!! 모아는 선생님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저 버린 신 거 아니죠? 요 근래 많이 힘들어하시는데 저까지 신경 쓰게 해드리고, 제자로서 못된 짓만 한 것 같아, 한없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노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 보여드릴께요. 선생님 힘드셔도 이렇게 옆에 든든한 딸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세요. 반 친구들도 반성하고, 노력하고있으니깐 저처럼 오셔서 서로 사랑했으며 좋겠습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가슴이 찡하네요. 선생님 자리 비우지 마세요. 잘 할게요. 선생님께서 말로만 그러시지 가슴속까지 담아두고 아파한지는 몰랐습니다. 앞으로 더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반 애들 모든 느낀 것 한 가지씩은 있을 거예요. 선생님 기다릴게요. 제가 선생님 얼마나 생각하는지 모르실 거예요.'

집으로 메일을 보내온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주영이와 미라.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주영이에요!^ ^ 진짜 오랜만에 멜(메일)을 쓰네요! 이번에 진짜로 애들이 학교도 잘 안나오고, 특기적성두 많이 빠지고, 혼자 힘 많이 드셨죠? 그 동안 제가 생각해도 우리 반 애들이.. 아니 저도 참 내 생각만 한 것 같아요. 학급을 운영하는 사람은 선생님이 아닌, 우리들인데, 괜히 선생님만 힘들게 하고.. 그래도 이제는 우리 반 애들 모두 열심히 잘 할 것 같아요, 저도 이제부터는 특기적성 안 빼먹고 하도록 열심히 노력할게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배푸신 만큼 저도 열심히 베풀게요!^^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저 미라예요..오늘 특기적성 시간 때 선생님께서..일부러 우리 들으라고 말씀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는다고.. 마음에 와 닿았어요.. 진짜.. 오늘 선생님께서 진짜로.. 우리 담임을 안 하시면 어쩌나.. 우리를 많이 사랑해주시는 담임이.. 바뀌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많이 불안했어요.. 근데 선생님께서 넓으신 마음으로.. 반에 다시 돌아와서 너무 기뻐요^^ 선생님.. 이제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 반에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언젠가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 중에서 추악한 장면만을 편집하여 영화를 만든다면 아마도 여러분들은 저를 다시는 보지 않으려 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지금까지 살아온 삶 중에서 착하고 위대한 모습만을 담은 영화를 본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요.'

저를 아프게 했던 이기적인 아이들이 쓴 편지글은 결코 이기적인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가짜일까요? 아니면 여학생 특유의 감상이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추악할 수도 있고 위대할 수도 있는 그들 내면의 한 풍경이겠지요. 저는 오늘 아이들의 위대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만, 그런 장면을 연출한 것이 교사인 저의 몫이었을 뿐이지요.

어서 날이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싶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유행가 가사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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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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