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엔 김천역 구내 한귀퉁에 자리잡고 있는 '대한통운' 김천지점을 찾은 일이 있습니다. 그 건물은 일부러 그 건물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면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아주 낡은 건물이기도 합니다.
그 겉모습과 내부구조를 보니 TV에서 보던 일제시대 면사무소나 1970년대 초반의 낡은 시골 초등학교의 교사(校舍)가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그 촌스러운 건물은 일단 천장이 높아 시야가 시원했습니다. 바깥은 후텁지근한 날씨인데도 내부는 썰렁할 정도로 시원하더군요.
아마도 그 건물의 벽내부는 황토로 가득차있을 겁니다. 이 건물도 명품의 반열에 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요즘 웬만한 시골에서도 보기드문 돌담도 세계건축사에 길이 남을 명 건축물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요즘엔 아파트 지은 지 20년만 지나면 여기 저기 고장나고 한마디로 고물 티가 절로 나잖아요?
우중충한 회색 벽돌로 쌓은 담은 수십 년만 지나면 위태위태하기 십상이지요. 하지만 쌓은 지 백년도 훨씬 더 된 고향동네의 돌담은 오히려 그 견고함이 조금도 변치 않고 오히려 멋스럽기만 합니다. 저는 명품의 조건이 값비싸지 않고, 기존에 있던 좋은 가치들을 파괴하지 않으며 유지하는데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쓰면 쓸수록 가치가 더해 가는 물건이면 좋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테니스 장비에도 명품은 있습니다.
가격으로만 따지자면 명품 테니스 라켓은 버트 캡 에 순금이 삽입되어 있고 한정수량만 75만원에 판매되는 윌슨의 '엑스칼리버' 나 라켓 프레임에 전달되는 기계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시켜주는 기능이 장착된 헤드의 70만원 짜리 i.s18이 명품이겠지만 이 라켓들을 명품이라고 부르는 테니스 마니아들은 거의 없습니다.
좋은 테니스 라켓이란 일단 가격이 싸면서 되도록 신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단순한 소재와 제조방식,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좋은 타구감, 손잡이보다는 헤드부분이 가벼워 부상의 위험도가 낮은 라켓입니다. 그러면서도 묵직한 타구를 구사할 수 있는 파워가 있어야겠지요.
위의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라켓이 바로 윌슨의 프로 스텝 6.0이지요. 이 라켓은 생산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고의 라켓으로 인정되는 '엽기적인' 라켓입니다. 아무런 신기술이 적용되지 않았고 생김새도 독일병정을 연상케하는 투박한 모습이지요.
이 라켓 중고로 구입한다면 상태가 아주 좋은 것이라도 7만원 내외면 충분히 구입할 수있지만 컨트롤, 파워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데다 부상위험도도 낮아서 여전히 최고의 라켓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명품은 가격이 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