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살리고 봐야하는 것 아닙니까. LG그룹이 '헐값매각에 의한 국부유출'을 이유로 외자유치를 반대하는 것은 하나로통신의 가치를 최대한 떨어뜨려 '날'로 먹으려는 의도입니다."
지난 6월 2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하나로통신 인터넷데이터센터 1층 로비에 이상한 영정사진이 걸렸다. LG그룹의 통신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데이콤 박운서 회장과 LG그룹 쪽 대표로 이날 열린 하나로통신 이사회에 참석한 한국인터넷데이터센터(KIDC) 남영우 사장이 그 주인공.
이날은 하나로통신 경영진이 지난 4월부터 추진해온 4억5000만 달러(약 5357억원) 규모의 외자유치 및 투자 계약 건을 이사회로부터 최종 승인 받기로 한 날이지만, 하나로통신의 최대주주인 LG그룹의 반대로 결과가 불투명해지자 하나로통신 노조가 발벗고 나선 것이다.
노조는 "하나로통신의 회생을 위해서는 외자유치와 같은 대규모 자금조달이 절실하다"며 "통신업계의 '하이닉스'가 되어 끝도 없는 나락의 길로 빠지길 원하지 않는다면 외자유치를 승인해 달라"고 사외이사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4일 하나로통신 이사회는 9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7월 3일로 결론을 미뤘다. '헐값 논란이 있으니 일주일간 투자자 쪽과 주식 값을 재협상을 해 보라'는 것이 이날 회의에 참석한 10명의 이사들이 내놓은 요구 내용이다.
실제로 이날 하나로통신 경영진은 기명식 보통주 1억7859만 주를 주당 3000원에 AIG와 뉴브리지가 주도하는 외국인 투자자 컨소시엄에 배정하는 외자유치안을 보고했다. 하지만 4월 협상 때만 하더라도 하나로통신의 주당 가격은 3600원에서 4000원 수준이었고, 주식 값이 급격히 하락한 6월초에도 3200원에서 3600원 수준이었다. 따라서 사외이사들은 적어도 3600원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부 유출 논리는 LG그룹의 통신시장 지배력 강화 위한 '꼼수'"
특히 이와 관련 그 동안 외자유치 반대에 앞장선 LG측은 "액면가(5000원)의 60%밖에 안 되는 주당 3000원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다른 방법으로 더 좋은 조건으로 외자를 유치할 수도 있는데 턱없이 싼 가격에 매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로통신에 대해 좀 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거나, 구 주주들이 합심해 회사가치를 높인 후 좀 더 좋은 조건으로 외자를 유치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LG그룹이 통신시장 지배력의 유지·강화를 위해 하나로통신에 대한 외자유치를 막고 있다고 보고 있다. LG그룹은 앞으로 초고속인터넷 2위 업체인 하나로통신을 계열사로 편입시킴으로써 데이콤, 파워콤, LG텔레콤 등과 연계해 KT, SKT 등과 함께 3강 구도를 정착시킬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홍식 전 정보통신부 차관을 ㈜LG의 통신부문 총괄 사장에 영입한 것도 이러한 계획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하나로통신 외자유치 성공시 대주주 지분율 변화] | - 발행주식수 : 보통주 178,590,000주 (3,000원/주 기준) - 신주 발행후 회사의 총발행주식수 : 457,912,680주 |
구분 | 해외투자자 | LG | 삼성 | SK | 기타 | 투자전 | 0.0% | 13.0% | 8.5% | 5.5% | 73.0% | 투자후 | 39.0% | 8.0% | 5.2% | 3.4% | 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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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의 경우, LG화재 포함시 투자후 9.7% * 6.9일자 주주 명부상 주식수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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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4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외자가 들어 올 경우 하나로통신의 최대 주주는 LG그룹(13%)에서 AIG-뉴브리지 컨소시엄(39%)으로 바뀌게 된다. 게다가 LG그룹의 지분율도 13%에서 8%로 낮아지게 된다.
또한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은 11명인 하나로 이사회의 과반수 지명권과 재무담당이사(CFO) 선임권도 갖는 등 실질적인 경영권도 행사하게 된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헐값매각에 의한 국부유출' 논리로 외자 유치를 반대하는 것은 'LG의 꼼수'일 뿐"이라면서 "LG그룹의 주장은 외자 유치를 통해 침체된 통신시장의 활성화와 통신시장의 구조조정 촉진이라는 정부정책과도 위배가 된다"고 지적했다.
"주당 3000원 헐값 아니지만 재협상 할 것"
외자 유치에 대한 하나로통신 경영진의 입장은 확고하다. 심지어는 일반적으로 외국 자본 유입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노조 쪽의 입장도 경영진과 일반 다르지 않다.
현재 하나로통신의 총 부채는 약 2조2000억 원으로 부채비율이 162%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외자 유치가 성공적으로 완료될 경우 부채비율은 100% 이하로 줄어들어 사업 경쟁을 위한 재무 구조 개선 및 안정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경영진의 설명이다. 또 연간 약 1500억~2000억 원의 이자비용 중 연 500억 원 이상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로통신의 한 관계자는 "현재 주식의 주당 내재가치는 2250원으로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게 3000원이기 때문에 절대로 헐값이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사외이사들이 주식이 저평가 됐다며 경영진의 협상력 부재를 지적한 만큼 최대한 높은 값을 받기 위해 재협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VDSL 초고속인터넷, VoIP(음성데이터통합망) 등 기존 서비스 유지·확대 및 하나로통신의 미래 수익원인 2.3㎓ 무선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위한 투자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외자 유치는 이루어져야 한다"며 "그러나 액면가 이하로 신주를 발행하려면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쉬운 문제는 아니다"고 밝혔다.
하나로통신 김영록 노조위원장도 "전 최고경영자의 독단적인 사업추진과 온정적 경영방식에 따른 문제점이 많았다"면서도 "SK글로벌 사태 등으로 국내 자금 시장이 경색되어 추가적인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는 외자유치와 같은 대규모 자금 조달이 수반되어야 현재와 같은 차입금 위주의 취약한 재무구조를 근본적으로 탈피할 수 있다"며 경영진 선택을 지지했다.
김 위원장은 또 "LG그룹의 반대에 의해 외자유치가 실패된다면 당장 신용등급이 하락하여 회사채 발행이 불가능할 것이며, 단기 차입금 상환압력이 증가하여 또 다시 유동성 위기가 재발할 것"이라며 "금번 외자 유치는 IMF이후 단일기업으로서는 최대규모의 외자유치로서, 외국인 투자여건 개선 및 침체된 국내통신시장의 활로를 여는 선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LG그룹은 아직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를 꺼리고 있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LG의 통신부문 총괄 사장으로 영입된 정홍식 전 정보통신부 차관이 오시면 그때부터 LG그룹의 통신산업 전체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겠냐"면서 "아직까지 하나로통신쪽에서 반응하는 것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현재 하나로통신은 지난 5월 산업은행 자금 1500억원을 조달하고 회사채 500억원을 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반기에 상환해야 할 부채가 약 3700억원으로 단기 유동성 위기가 재발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