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들아! 오늘은 얼마 전 다녀 온 블라디보스톡 이야기를 해주마.
6월 16일, 이 날은 남북공동선언3주년 기념 국제 학술회의가 하루 내내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서 진행되는 날이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외국의 석학들과 국내 학자들이 모여 첫째, 미국의 세계 전략과 유럽, 아시아, 한반도. 둘째,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셋째,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 연대 등 이런 세 가지 주제를 놓고 발제와 토론을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벌인다.
시작할 때 참석해서 첫 주제 토론이 진행될 때인 11시에 행사장을 빠져 나왔다. 바로 이날 블라디보스톡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1주일 전 북한에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급하게 왔다. 사스 때문에 남북 민간 교류와 관련한 모든 만남이 4월 중순 이후 막혀있던 터라 남쪽에서는 가기로 결정하고 통일부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러시아로 가기 위해서는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초청장 없이 비자 받는 일이 매우 어려워서 오늘까지도 출국이 가능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마침 인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 좌석이 없어 부산 김해공항에서 오후 3시 비행기를 예약했다.
오늘 출발 못하면 이번 만남은 또 무산되어야 한다. 북쪽 사람들이 19일에는 평양에 돌아가야 하고, 남쪽에는 18일 까지 비행기 표가 없다. 우여곡절 끝에 12시가 넘어서야 러시아대사관에서 비자허가를 받고, 140㎞ 가까운 속력을 내어 김포공항에 12시 45분 도착, 1시 비행기로 부산에 도착하니 마침 민방위 훈련이 진행중이다.
2시 40분이 돼서야 국제선 출구를 나서 3시 출발하는 비행기에 가까스로 오를 수 있었다. 한 시간 40분만에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수속 마치고 공항을 나서니 5시다.
북쪽 사람들 세 분이 미리 마중 나와 있었다. 그 분들도 이곳엔 처음이라며 "우라지에서 만나니 더 반갑구만요"하고 인사한다. 북에서는 이곳을 '우라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평양, 금강산, 북경, 서울 등에서 만났던 백 선생과 처음 보는 두 분이 반갑게 맞아준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자동차로 40분 정도 가야 된다.
가면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얘기 해 보면 첫째, 이 곳 날씨가 맑은 늦가을 날씨 같이 서늘하다. 30도 안팎의 찌는 남쪽 날씨를 몇 시간 전에 겪고 온 터라 시원함이 가장 먼저 느껴진다.
둘째, 숲이 우거진 끝없이 넓은 들판 풍경이 마치 중국 연변지방 풍경과 같다. 북한의 백두산 근처 풍경과도 닮았다. 풍경은 우리나라의 북쪽이나 중국과 비슷한데 가끔 길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이 전혀 낯선 서양계란 점이 오히려 신기하다. 선이 분명하고, 하얀 피부색에 금발이나 은발의 머리색 가진 러시아인이 낯설다.
셋째,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시외뿐만 아니라 시내에도 신호등이 없다. 사람이 건너가는 건널목에만 신호가 있을 뿐 네거리나 오거리 어디에도 차량만을 위한 신호등 없이도 차들이 잘도 빠져나간다. 먼저 도착한 차가 먼저 가는 원칙이 신호등보다 더 잘 지켜진다니 그것도 신기하다.
넷째, 한글로 차체에 'OO운수'라고 버스회사 이름이 써 있거나, 앞에 '마산에서 부산' '광화문에서 서대문' 하는 식으로 한국의 시내외 버스였음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붙은 버스가 많다. 뒤에 들으니 한국에서 수명이 다해 폐차 처분된 낡은 버스를 이곳에서 사들여 대중 교통에 사용하고 있단다.
비록 이곳이 아직은 공기가 맑다하나 저 낡은 버스의 공해를 어찌하나 가난해서 저런 버스를 도입해 사용할 수밖에 없는 러시아 사람들도 안됐지만 사용해서는 안될 차를 이곳에 돈 받고 판 우리나라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마음이 어두웠다. 경도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시간은 우리보다 두 시간이 빠르다. 원래 1시간 빠른데 여름이라 썸머 타임이 한 시간 적용돼서 그렇단다.
블라디보스톡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현대 호텔에 짐을 풀었다. 현대 건설에서 97년 8월 15일 완공해서 직영하는 호텔이란다. 1억 달러를 들여 지었다니 그 공사비가 보통보다 두 배는 더 든 셈인데 거기에는 독특한 사정이 또 있더구나. 어쨌든 옛 소련 시절(지금 러시아도 마찬가지겠지.) 유일한 부동항이라던 이곳 항구와 바다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방에 짐을 풀었다. 호텔 로비에서 지배인인 현대 직원을 만나서 여러 가지 얘기 듣고, 내일 통역이나 안내 맡아줄 사람 알아보고….
민화협 상임의장이신 선배 한 분과 후배 경제교류담당국장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일행도 셋이고 북쪽도 세 명이라서 모두 여섯 명인데 돌아올 때까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여섯이서 함께 지냈다. 그러는 사이에 이야기도 많이 했거니와 인간적으로도 많이 가까워졌다는 느낌이다. 사업 얘기말고 가족이나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살아가는 얘기를 나눈 시간도 많았다는 얘기지.
경제적으로 어려울 텐데 먼저 와 있었다고 저녁은 북쪽에서 사겠다고 제의해서 얻어먹었다. 호텔 근처 민가에서 중국 사람이 경영하는 한국음식점에 갔다. 삼겹살을 굽고 이곳에서 많이 나오는 명태 알탕을 먹으면서 북에서 가져온 술을 함께 나눠 마시고 첫날은 서로를 소개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냈다.
대전에서 모셨던 북송 장기수 선생님 가운데 김명수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들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북쪽에서 얼마나 신경을 쓰고 고심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남쪽에서 민족 전체의 경제를 생각하며 도와줄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하다.
헤어져 호텔 방에 돌아오니 12시. 하지만 한국시간으로는 10시다. TV를 틀어보니 한국의 방송도 볼 수 있다. 엉터리 역사극 <야인시대>를 러시아에서 보니 느낌이 묘하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본거지 '해삼위' (블라디보스톡의 옛 한국식 이름)에서 역사를 왜곡한 한국 TV 연속극을 보는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이렇게 첫날밤이 지나간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북쪽 분들도 이 연속극을 보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다음날 물어보았는데 봤다면서 평은 안하고 웃고 말더구나.)
아이들아, 세상은 넓고, 우리가 보고 배울 것은 참으로 많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