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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라난 동해안 작은 마을에는 그 마을보다 더 작은 로타리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 로타리를 신작로라고 불렀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1리에서 10리까지의 경계선이 되는 그 곳은 그 지역 유일한 시장통이었다.

그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신작로의 이 작은 시장통은 일종의 생활터전이자 자연스럽게 사회의 규칙을 배우는 일종의 학습터였다.

좁은 건물 사이로 길게 양쪽길로 나 있는 조그만 시장 속에는 근처 촌에서 올라온 야채며 채소, 그리고 바다에서 갓 잡아 올라온 오만가지 해산물과 생선들이 널을 뛰듯 펄떡이고 있었고 그 생선들을 파는 아주머니들은 다 우리 엄마의 친구분들이었다.

ⓒ 최승희
엄마는 늘 시장에 계셨다. 당시 일수라고 하는 계를 모든 시장 상인들이 가입하고 있었고 엄마는 계주가 되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그 일수를 걷으러 시장통을 활보하며 다녔기 때문이다. 아직 내가 어려서 집에 따로 두지 못하고 시장통을 누빌 때 어머니는 늘 내 손을 잡고 다니셨기 때문에 나 역시도 하루도 빠짐없이 시장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자전거를 배우면서 일수를 찍는 일은 내가 주로 도맡아 하곤 했지만 작은 어촌마을의 시장통 속에 있었던 모든 풍경들은 후일 나를 살아있게 하는 추억 중 가장 큰 밑천이 되었던 것이다.

ⓒ 최승희
시장 속에서 본 것을 집안에 굴러다니던 형의 스케치북에 곧잘 옮겨 그리곤 했던 나는 사생대회에 나가면 아이들이 항상 그리는 산과 들 대신 어머니가 있는 그 조그만 시장을 대신 그려 넣곤 했다.담임 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고 집이 시장 한가운데인 줄 알았던 것은 우연히 아니었다.

그렇게 시장엔 늘 엄마가 있었다. 그건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늘 시장에서 만나는 아줌마들과 할머니들은 정겨웠다. 전농동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가끔 불현듯이 고향 생각이 나면 툭 하고 찾아오곤 했던 곳이 바로 청량리 경동시장이었다. 새벽부터 밤이 되기까지 사람들과 청과류와 한약재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경동시장엘 가면 난 늘 고향에 계신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 최승희
아주머니들의 수다소리, 요란한 상인들의 호객소리, 짐꾼들의 호루라기 소리까지 시장 속에서 넘쳐나는 소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소리였다. 흥정하고 계산을 통해 성공적인 상거래가 이루어진 손님과 상인의 웃음소리를 뒤로 또 다른 짐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시장은 밀물과 썰물이 언제나 교차하는 뻘 같은 그런 생존의 땅이었습니다.

며칠 전 그동안 바쁨을 핑계로 오랫동안 가보질 못했던 경동시장엘 가 보았다. 경기가 좋지 않다고 떠들썩한 요즘 그래도 경동시장엔 아직도 생기가 활짝 돌고 있었다. 하지만 예년만 못하고 일찍 장을 파하는 가게도 여전히 많이 보였다.

여름 과일을 사려고 장에 나온 사람들이 부쩍 많이 보였다. 자두를 파는 아주머니는 요즘 직접 경동시장에 나와 과일을 사가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과일 한 개라도 싸게 사려고 하는 어머니들의 알뜰함이 느껴지는 시장통이었다.

ⓒ 최승희
담배가게를 하는 어떤 어저씨는 간판에 네온을 달아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고, 자신만의 생존 노하우라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다들 살아가기 바쁜데 튀어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팍'하고 다가왔다. 그렇게 시장 속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며 오늘 하루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굴비를 파는 아주머니는 2천원을 갂아주었는데도 손가래를 치고 가는 손님을 보며 정말 '짠돌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저런 아줌마 많아요. 근데 쬐금 있다보면 다시 오죠. 여기가 그래도 젤로 싸거든. 그게 무슨 고생이여. 싸게 줄때 가져가야지. 다시 오면 안깎아줘."

ⓒ 최승희
흥정은 나름이다. 사실 사람사는 것도 나름이다. 하지만 시장엔 언제나 나의 어머니들이 있었다. 하루를 길 바닥에 주저앉아 허리에 무릎 다리까지 쑤시고 고생해도 아들 하나 번듯하게 키워 놓고 옆집 아주머니께 자랑하는 그런 우리네 어머니들이 있다.

시장엔 살아가는 활력과 이야기가 있었다. 경기가 나쁘고 경제가 어지러워지면 꼭 망하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다. 시장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네 어머니가 있는 그곳 오늘 내가 시장에서 본 것은 추억의 그 이상을 능가하는 우리네 살아가는 방식 그 현실의 한 장면이었다.

ⓒ 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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