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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는 앞쪽으로는 울타리가 없는 집들이 많다.
뉴질랜드에는 앞쪽으로는 울타리가 없는 집들이 많다. ⓒ 정철용
이처럼 울타리는 너와 나의 경계를 분명하게 해주지만 너와 나를 단절시키지는 않습니다. 울타리 너머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울타리 너머의 잔디밭과 정원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2. 벽

담이 경계의 표시에서 더 나아가 차단의 수단이 될 때, 담은 벽(wall)이 됩니다. 도둑의 침입과 낯선 이의 시선을 막기 위하여 더 높아지고 더 두꺼워질 때 담은 벽이 되는 것입니다.

키를 훌쩍 넘는 높은 콘크리트 벽과 그것도 모자라 날카로운 쇠창살과 깨진 유리조각들을 심어 놓은 무시무시한 벽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요. 그런 담장을 사이에 둔 이웃들은 서로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골목길에서 서로 마주쳐도 인사는커녕 미소 한 번 나누지 않습니다.

아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좌우로 그리고 상하로까지 이웃을 거느리고 있음에도 나는 한국에서 살 때 그 많은 이웃들과 따뜻한 인사 한번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경비원 아저씨에게는 매일 인사를 하면서도 말입니다. 아파트는 벽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입니다.

이처럼 철옹성처럼 높고 단단한 벽에는 소통이 없습니다. 너와 나는 벽을 사이에 두고 단절되고 벽 안쪽의 공간에서 서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냅니다.

3. 벽을 울타리로

위 시에서 프로스트의 이웃집 남자는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되지요(Good fences make good neighbours)”라고 말하고 있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가 쌓는 것은 울타리(fence)가 아니라 벽(wall)입니다. 프로스트가 위 시의 제목을 ‘담장 수리(Mending Wall)’라고 이름 붙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프로스트가 원했던 것은 벽이 아니라 울타리였을 겁니다. 그래서 울타리를 쌓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벽을 쌓고 있는 옆 집 사내가 ‘구석기 시대의 야만인처럼’ 보이고 그의 움직임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진 것이지요.

그의 마음은 “뭔가 담을 싫어하는 게 있어서 그게 담을 무너뜨리고 싶어합니다”라고 그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담을 벽에서 울타리로 바꾸기 위해서는 이웃집 남자가 스스로 알게 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는 그만둡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저만 알던 거인>이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거인처럼 스스로 깨닫지 않고서는 높은 벽을 부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울타리 너머로는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다.
울타리 너머로는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다. ⓒ 정철용
사실 가장 깨기 어려운 것은 우리 마음 속에 높이 솟아있는 불신과 오만과 아집의 벽일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의 그 높은 벽을 깨고 그 자리에, 자신은 지키면서도 남들과 소통하고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낮은 울타리를 세우는 일의 소중함을 프로스트의 시를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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