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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바다구경을 했는데도 용수리 바다는 뭔가 특별함이 있는 것 같았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거센 풍랑을 만나 끝내 돌아오지 못한 한이 서려 있기 때문일까? 그 바다는 잔잔했다.

▲ 절부암 입구
ⓒ 김강임
바위를 찾기 위해서는 깊은 산 속으로 가야할 것 같은데, 아름다운 포구 어디에서 열녀바위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산새 높은 곳에 서 있는 기세 등등한 바위를 가슴에 담고 있는 나에게 '절부암'은 더욱 심한 오차를 느끼게 했다.

그래서 열녀 바위 '절부암'을 찾는데는 한바탕 숨바꼭질을 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용수리 해안을 몇 바퀴 돌아도 내가 찾는 바위가 없었으니 말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숨가쁘게 달려온 자동차의 열기도 식힐 겸, 용수리 포구에 차를 주차시켰다. 왜 이곳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단 말인가?

▲ 수줍은 듯 숨어있는 바위 '절부암 '
ⓒ 김강임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아름다운 '차귀도'는 용수리 포구에서는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포구에는 배를 손질하기 위해 나온 사람이 눈에 띄었다.

" 아저씨 절부암 가려면 어디로 가야죠"

싱겁게도 그 아저씨는 " 여기가 절부암 입주게!"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찾아봐도 바위는 없는데 어디에 바위가 있단 말인가? 이 정도 사투리는 알아들을 수 있어 다행이지만, 지척에 두고 헤메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절부암'은 조그만 어항 동백숲속에 꽁꽁 숨어 있었다. 행여 사람들의 발길이 너무 많이 닿을까 봐, 행여 너무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올까 봐, 수줍은 듯 꽁꽁 숨어 있었다. 마치 애틋한 절개를 세상에 알리는 게 부끄러운 듯.

속칭 '엉덕동산' 숲에는 사철나무·동백나무·후박나무·돈나무 등으로 난대식물이 우거졌다. 마치 산책로처럼 보였다. 돌계단이 있는 것으로 봐서 올라가면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우거진 난대식물 사이로 햇빛이 세어 나왔다. 그 숲 속에 굳어진 말없는 바위. 마치 학창시절 소풍갔을 때 선생님께서 숨겨 놓은 보물 쪽지를 찾은 기분이었다.

▲ 절개를 지켰던 고목나무
ⓒ 김강임
항상 그 보물은 친구들이 잘 가지 않는 으슥한 곳이나 나무가지, 수풀 우거진 곳에 꽁꽁 숨겨 놓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보물은 항상 눈치 빠르고 운이 좋은 사람들 차지였다. 바다가 보이는 숲 속에서 '절부암'을 찾은 것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절부암 바위 앞에서 손을 뻗으니 후박나무로 보이는 꽤 오래된 고목 한 그루가 서 있다. 그럼 이 나무에서 목을 메었단 말인가? 갑자기 자료에서 보았던 고씨 부인의 전설이 생각났다.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우거진 숲 사이에 한 줄기 햇빛이 내려 왔다. 장마에 보이는 햇빛은 언제나 반갑고 광명처럼 느껴졌다.

조선조 말엽 이 마을에 사는 강사철이라는 사내가 고씨 처녀와 결혼을 하였다. 어느 날 남편이 친구들과 함께 뗏목을 타고 죽도에서 죽세공품을 만들 나무를 베어 오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 조난 당하게 되었다. 남편의 친구들의 시체는 모두 떠올랐으나, 고씨 남편의 시신은 떠오르지 않았다. 시신을 찾아 헤메던 고씨 부인은 낙심하여 그 달 보름에 바위에 올라가 나무에 목메어 자살하였다.

▲ 열녀제를 지내는 제단
ⓒ 김강임
그러나 신기하게도 남편 강사철의 시체가 부인이 목을 매단 나무 바위 밑에 떠올랐다고 한다. 이를 신통히 여긴 조정에서 이 바위에 '절부암'이라 새겨 후세까지 절개를 기리고 있다. 지금도 이 마을에서는 3월 15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절부암은 제주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

계단을 내려오니 해마다 열녀제를 지내는 제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는 고씨 부인에 대한 절부암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새겨져 있었다.

▲ 제주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절부암'
ⓒ 김강임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천생연분 백년가약을 맺고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했다는 얘기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아주 짤막한 뉴스거리로 아니면 이웃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여겨지지나 아닐런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열녀바위와 제단, 절부암 비 앞에서 숙연함을 느꼈다.

▲ 용수리 포구
ⓒ 김강임
용수리 포구는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귀국 시 표류하여 닿은 포구로 우리나라 신부가 최초로 미사를 올린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1999년 9월 이곳을 천주교 성지로 선포, 김대건 신부 기념 박물관 건립 공사를 착공하기도 했다.

절부암은 북제주군 한경면 용수리에 있으며 찾아가는 길은 제주공항- 12번 국도-용수리 해안도로- 절부암으로 50분 정도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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