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혼례가 있는 날, 신방의 창문의 창호지는 호기심 많은 동네 아낙네들에게 수난을 당합니다. 여름날에는 아예 대청을 향해 문을 들어 올려 열기도 합니다. '들어열개 창호'라고 합니다.
한옥 창문의 창호지 즉 한지는 햇빛이 풍부한 우리 나라에는 아주 효율적입니다. 안의 모습을 가릴 수도 있으면서 햇빛이 잘 들어오게 합니다. 해가 지면 활동을 멈추고 해가 뜨면 활동하던 시대에 창호지로 스며드는 햇빛은 자연스레 자명종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지난해 5월 안동의 하회마을에 느즈막한 시간에 들어가 한 한옥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물건이 쌓인 마루에 앉아 덕담을 나누고, 창호지를 바른 띠살문을 열고 문턱을 넘어 들어가, 장작불로 뜨끈해진 아랫목에서 잠을 잤습니다. 역시 창호지로 된 띠살창에서 아침 햇빛을 받았습니다.
산책을 돌고 돌아와 방에 들어가기 전 내가 잔 방의 창을 바라보았습니다. 밖에 돌쩌귀가 달린 밖여닫이창입니다. 살대가 부러져 나가고 창틀 나무 부분에는 더께가 앉았으며 창호지는 바래졌습니다.창호지가 틈으로 삐죽 나온 것은 살바람을 막기 위해서이겠지요.
이 주인집 내외는 벌써 일하러 나가고, 한가로운 사람은 아침의 게으름에 빠졌습니다.
지난해 12월 다녀온 강화도에 있는 성공회 성당은 대궐 목수가 대궐 모양을 본따 만든 유서 깊은 한옥 성당입니다. 팔작지붕과 단청, 양반 고택 같은 마당, 사찰의 종과 흡사한 범종 등 우리 나라 한옥의 고유 양식을 그대로 도입했고, 실내도 과거의 정취를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의 창도 한지 창입니다.
어린 시절 시골 외가에 가서 지내면서 맡은 한옥의 체취가 그리워집니다. 한옥의 오래된 집에서 나는 구수함에 이 창의 한지도 한몫을 했을 것입니다. 습기 조절과 통풍을 알맞게 조절했을 것이고 주인의 체취를 잘 간직해 주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 성당 신자들이 이 창을 열고 닫으며 한옥 성당에 자신의 체취를 성스러운 터전에 보탤 것입니다. 높게 솟은 천장의 유리창들도 안의 정기를 돋우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재작년 8월 순천 선암사에서 아주 유명한 화장실을 봤습니다. 뒤간이라고 해야 되겠네요.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은 남자용, 오른쪽은 여자용인데, 특별히 벽을 세워놓지 않고 개별 사용처마다 낮은 칸막이를 해놓았을 뿐입니다.
키가 큰 사람은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더라도 옆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남녀가 같이 들어가면 왼쪽의 남자와 오른쪽의 여자가 볼일을 보면서 멀찌감치 서로의 얼굴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아래 세상은 얼마나 넓고 깊은지…. 그래도 고약한 냄새가 안 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살창을 통한 환기 덕분이겠지요. 자연 속의 초록 내음이 뒤간 내의 '자연스런' 내음과 섞이게 되겠지요. 소설가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분의 도저한 해석을 읽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