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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반, 부시시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에 꽃과 풀을 몇가지 가꾸게 된 후로 생긴 습관이다. 7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어, 이 시간이면 햇살이 온 세상을 감싸안고 있다. 이르다고 하기엔 부끄러운 그 시간에 잠이 덜 깬 채로 거실 창문을 열었다.

▲ 저는 2003년 7월 11일 새벽에 태어났습니다.
ⓒ 장영미
“와아아!”

순간 잠이 싹 달아났다. 어제 저녁까지도 꼭꼭 숨은 채로 있던 나팔꽃 아가씨가 환한 얼굴로 부시시한 모습의 나를 반기고 있는 게 아닌가! “아아 이런 얼굴이었구나. 아아 이런 색이었구나” 어찌나 신선하고 여리고 아름다운지, 꽃잎은 마치 아가의 투명한 볼살과도 같았다.

요리 보고 조리 보다가 이 감동을 오마이뉴스의 독자들과도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났다. 부리나케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요즘 새로 생긴 버릇이다. 함께 나눌만하겠다 싶으면 찍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아이를 찍는 게 전부였는데 요즘은 찍는 대상이 다양해졌다. 어딜가도 꼭 가지고 다닌다. 전지의 충전에도 신경을 쓰고, 평소에 전혀 정리할 줄 모르던 메모리스틱도 깨끗이 비워두었다.

▲ 아가의 볼살처럼 여리고 투명한 꽃잎을 보세요
ⓒ 장영미
작년 이곳 분지(盆地)의 무더운 더위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을 즈음, 아파트의 경계로 친 철책 위로 뻗은 나팔꽃에서 꽃씨를 3개 채취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땐 소심하게도 3개만 채취했다. 마땅히 심을만한 곳이 없었던 것이다.

올해 5월, 베란다에 새로 꽃모종을 몇그루 심으면서 고이 모셔놨던 나팔꽃씨 3개를 작은 화분에 심었다. 새싹이 나면 큰 화분으로 옮겨줄 요량으로 담쟁이 가지를 잘라 꽂아두었던 작은 화분 한 곁에 살짝 묻어두었다. 싹이 돋으리란 기대는 접어둔 채였다.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자 두군데서 싹이 나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알갱이 속에 생명의 에너지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흙을 밀쳐내며 비집고 나오는 떡잎 두장이 얼마나 대견스럽든지 딸아이를 불러내었다.

“이것봐, 우리 딸이랑 똑같네. 우리 딸처럼 씩씩하게 잘 자라거라.”
“나처럼 잘 자라거라.”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작은 부주의로 한그루 새싹의 떡잎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래도 자라지 않을까’하고 기대를 버리지 못했는데 그 싹은 더이상 자라지 못했다. 떡잎으로 에너지를 얻지 못한 탓인 모양이었다. 마치 사람의 아이가 발달단계마다 각기 다른 자극과 에너지를 필요로하듯 새싹도 떡잎이 나기시작하면 땅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떡잎을 통해 얻는 하늘의 에너지가 필수인 모양이었다.

▲ 저는 줄타기 선수예요.
ⓒ 장영미
그렇게해서 겨우 한그루의 나팔꽃 줄기가 우리 집 베란다를 타고 오르게 된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녀석을 위해 줄기가 잘 기어오를 수 있도록 높이 망을 쳐주었다. 망에 줄기 끝이 이르자마자 녀석은 줄타기 선수라도 된 양 비비 꼬면서 하늘을 향해 기어 올랐다. 그러는 사이에 녀석은 줄기 곳곳에 꽃망울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드디어 첫번째 아가씨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세상에 태어났다. 무엇이든 ‘처음’이 주는 감동은 남다른 것 같다. 첫사랑, 첫직장, 첫아이, 첫집, 첫친구, 첫키스… 첫아이인 우리 딸을 닮아 환하고 밝은 꽃이었다. 얼른 딸아이를 깨워 불러냈다. 아이도 정말 예쁘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이렇게 찬란하기만한 꽃잎이 한낮이 되면 시들어 버리고 다시 피지 않는다니 안타까운 마음 가눌 길 없다. 날마다 새꽃을 보게된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겠나보다.

오늘은 첫번째로 핀 나팔꽃 덕에 하루 온 종일 즐거울 것 같다. 여린 꽃잎에서 받은 감동이 오늘 하루를 채워줄 것 같다. 벌써부터 햇살이 심상치않게 이글거리기 시작했는데 오늘은 나팔꽃에게서 받은 기쁨으로 이겨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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