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요즘 사람들은 정치적인가? 탈정치적인가? 갈수록 저조해지는 투표율은 우리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이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반면 광장과 온라인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양면적인 부분을 어떻게 봐야 할까?

Beck은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를 통해 이러한 정치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다. '자유의 아이들'이라는 말에는 대단히 심각하게 정치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실상은 자신들을 위한 어떤 것에 몰두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정치'를 고정적으로 이해하는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정치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제 사람들은 주어진 공론장에 의존하지 않는 자율성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자율성은 정당이나 정부 등 고정된 곳이 아닌 다른 곳, 즉 그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새로운 지점에서 정치를 찾는 작업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낳은 배경에는 '적이 사라진' 새로운 정치적 환경이 자리잡고 있다. 공동체의 명백한 적이 존재하는 환경에서는 그 적에 대항할 수 있는 조건을 조직하기 위한 작업이 필연적으로 진행되며 이 가운데 대중의 정치적 상상력은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남북간 동족 상잔의 피해를 철저하게 내면화하여 국가 안보와 체제 발전을 제 1의 과제로 삼았던, 그러면서 자유롭게 정치적 상상력이 전개되는 것에 엄청난 제약이 가해졌던 대한민국의 지난날 모습은 '북한'이라는 명백한 적이 없었더라면 도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Beck의 진단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냉전체제의 붕괴와 함께 새로운 정치적 환경이 등장했다. 그 가운데 '적 아니면 우군'식의 사고방식은 '너 그리고 나'식의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피아(彼我)의 구별이 혼미해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정치적 상상력은 '명백한 적'을 염두에 두었을 때와는 판이한 방식으로 달라질 수 있었다. 공동체의 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그 적에게 승리하기 위한 목적의 공동체 논리가 개인에 우선하였으나, 그러한 상황이 종결되고 오히려 '누구도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는 간극이 널려 있게 된' 지금은 더 이상 공동체 논리의 일방적인 우위가 정당성을 갖기 어렵게 된다.

그렇게 '적'에 대항하기 위해 조성된 거대 담론은 사라졌고 느슨한 사회적 연결망에 기초한 개인간의 자발적 연대가 그 자리를 채웠다. 여기저기서 등장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은 정치사회의 의지와는 반대로 시민들의 관심사(환경, 여성, 우익의 폭력, 性등)를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개인 중심의 하부 정치(sub-politics)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개인주의'라는 용어는 일차적으로 '이기적, 파편화' 따위의 부정적인 인상을 내포하나, 개인화의 가속화와 함께 타인과 공존하려는 의지가 점증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부정적 인상을 말소시킨다.

물론 Beck이 '적이 사라진' 정치적 환경을 장밋빛으로만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는 1차 근대의 종결과 함께 도래한 상황을 '위험사회'라는 언어로 먼저 표현했다. 국가적으로, 국방상으로 통합성을 부여하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긴급성과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 때 집행의 정당성을 방해하는 주체는 평화주의가 아니라 아노미이다.

즉 '주적'이 사라진 환경은 모든 이에게 평화가 도래하는 상황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주적'에 가려 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다수의 집단들이 새롭게 적으로 재등장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지구적 소요가 가능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현재 맹위를 떨치고 있는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임노동이라는 노동 사회의 핵심적 가치를 파괴하면서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복지국가-민주주의간의 동맹을 무너뜨렸다. 이렇게 상황이 절박한데도 상투적인 유형을 따르려 하지 않는 개인들을 단일한 계급적 요구로 묶어 정치세력화하는 작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므로 Beck의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는 이러한 양면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Beck의 주장은 새로운 형태의 '개인화', '하부 정치'가 지배적인 흐름으로 대두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1차 근대의 종결 이후 '적이 사라진'상황에서 등장한 각종 신호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며, 이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1차 근대의 종결이 담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인 '위험사회'적 징후들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Beck의 이러한 진단은 서두에 언급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정치적 국면을 설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아직 우리 사회의 '명백한 적'이 사라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남북간 화해의 국면에서 대중에게 적어도 예전과 동일한 수준의 위기감과 적대 감정을 발생시키지는 않고 있다. 또한 정치권력의 형식적 민주화가 완성되면서 시민사회로 하여금 정치사회 내부로 활발하게 개입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적 조건이 구비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노사모의 활동이나 대규모 촛불시위-반전평화운동은 자발적 개인의 연대가 어느 정도로 정치사회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지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하는 동기를 제공했다. Beck의 언어를 빌자면, '파편화, 보수화'되었다고 규정지을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개개인들이 '명백한 적'이 존재할 때는 완전히 발휘할 수 없었던 정치적 상상력을 자유롭게 전개함으로써 기존의 정치적 시각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새로운 정치의 형태를 창조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적 민주화만이 완료된 사회에서는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로 선거 등의 협소한 방법만을 제공하는데 반해, 대중의 정치적 사회화가 장려되며 사회적 자아의 개인적 삶에 민주주의라는 원리가 녹아드는 '성찰적 근대'의 사회에서는 개인을 중심으로 한 정치형태가 성립되고 그 각각의 형태가 시민사회라는 공간을 통해 연대하면서 궁극적으로 정치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통로가 생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운동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아노미, 폭력 따위로 대변되는 '위험사회'를 극복하게 하는 열쇠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

울리히 벡 지음, 정일준 옮김, 새물결(2000)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