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손님맞이 방이나 다실이라고 할 '활래정(活來亭)' 한쪽 방의 창문입니다. 우리가 보통 '창문'이라고 하듯이 문 같은 창입니다. '활래정'은 연못과 뭍 양쪽에 걸쳐 지어진 정자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안쪽의 한지창문 밖으로 연못이 펼쳐져 있습니다. 둘레에 좁은 들마루가 있으니 창문을 열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되기도 하겠으나 뭍으로 향하는 쪽은 반대쪽이므로 창 성격에 가까운 창문입니다.
살대 사이로 많은 빛이 들어옵니다. 따가움이 걸려진 은은한 빛은, 신을 벗고 들어가고 높은 가구가 별로 없는 우리네 옛날 가구방식에 어울려 녹아듭니다. 벽면을 다 차지하는 창은 앉은뱅이 책상 위에 그대로 비칩니다. 의자와 그 의자에 어울리는 높은 책상이 있었다면 이렇게 넓은 창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책을 읽고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일이 낮은 높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이고 보면, 더욱이 조명기구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서는 이런 넓은 창이 적절합니다. 한지로 들어온 빛이, 무게 중심이 낮게 깔려 있는 방바닥 부분의 기운을 북돋습니다. 강렬하거나 어둡지 않은 색이 자연의 주된 색이고 보면, 자연을 닮아 지은 우리네 한옥의 여러 색도 그런 자연의 빛깔을 닮은 은은한 것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선교장에서 서고에 해당하는 곳의 사진입니다. 서별당이 그 곳인데 서고 겸 공부방 겸 할머니 거처였다고 합니다. 사진은 서별당 중 서고에 해당하는 부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통 서고는 습기 차지 않도록 땅바닥보다 높은 곳에 둡니다.
도산서원의 '동 광명실', '서 광명실'은 특히 그런 배려를 많이 했습니다. 주인의 거처인 '열화당'의 오른쪽 누각마루와 마주 보고 있는 이 서고는 특히 열화당과 서별당의 지붕 처마가 서로 엇갈려 겹치도록 하는 거리로 떨어져 있어서 비바람의 영향을 덜 받게 했습니다.
그리고 서고는 담장 안에 온전하게 보호되어 있지 않고 벽과 벽 사이에 툭 튀어나온 상태로, 그래서 담장과 같은 선상에서 지어져 있습니다. 모름지기 학문이라 함은, 서책이라 함은 이렇게 '걸쳐 있는 정신'을 나타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서로 다른 사상과 가치관이 책 속에서 엮어집니다. 도서관을 우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도서관의 모든 책은 서로 생명력을 가지고 연결되어 있다고 한 이도 있습니다. 서별당의 이 서고 위치도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서고의 기다란 띠살창도 한 집안의 정신을 보관하는 역할에 뿌듯해하지 않을런지요.
세 번째 창은 유심히 보아야 합니다. 너무 작아서요. 세 번째 사진의 창은 안채 부엌 출입문 위에 있습니다. 안채는 안살림을 맡는 부인들의 거처입니다. 그러니 자잘한 물건을 둘 곳이 많이 필요하겠지요. 고방과 다락은 이미 쓸모가 많은 곳이라 한 곳을 차지하는데 여기 이 작은 창이 달린 곳 안은 다락이라 하기에는 너무 비좁습니다.
이곳을 '받침'이라 하는데 소품들을 넣어두는 곳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특이한 것은 문고리가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비좁은 공간이고, 밖에서 열고 물건을 넣고 잠가놓았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니 비록 작지만 이 창은 바로 입구가 되어버린 중요한 곳이 되었습니다.
또한 장난꾸러기들이 숨어 있기에도 참 적절한 곳이기도 합니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 부엌에서 나오는 말들, 구수한 음식 냄새가 다 이 창 사이의 비좁은 틈 사이로 또는 구멍 뚫린 한지 사이로 들어올 것입니다. 어느 새 그런 장난을 할 나이는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유년 시절을 보낸 이들은 은밀함과 스릴과 모험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해리포터와 같은 아이들은 그런 틈 사이로 숨겨진 비밀을 들여다볼 줄 아는 이들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