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족간의 소외감, 냉대, 무관심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사랑이 있는 집은 치매환자가 별로 없거든요. 집에선 초코파이랑 두유만 주고 먹는지, 안 먹는지 관심도 없이 다들 나가버리는 거예요.”
박애재가노인복지원의 간병인 모옥자(62)씨가 치매의 원인으로‘사랑부족’을 꼽습니다. 모씨는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들을 돌보는 간병인입니다. 오늘은 야간근무가 있는 날. 할머니들의 편안함 밤을 책임집니다.
이곳은 치매를 앓거나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모시기 힘든 가족들을 대신해 3개월간 한시적으로 돌봐드리는 시설기관입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홉 분의 할머니와 중풍을 앓고 있는 한 분의 할머니가 계십니다. 그중 현재 입원치료 중인 할머니 한 분을 빼고 모두 아홉 분의 할머니가 머물고 있습니다.
오후 8시에 출근한 모씨가 할머니들이 잠자리에 들기까지 한바탕 전쟁을 치른 뒤 조용해지는 시간은 밤 10시, 11시입니다. 그러나 모씨는 마냥 편안히 잠들 순 없습니다. 언제 할머니들이 방을 나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잠에서 깬 할머니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때문에 다칠 위험이 큽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화장실을 가다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모씨는 새우잠을 자기 일쑤입니다. 덕분에 모씨는 소리 하나에도 예민합니다.
한밤중에 방에서 나온 할머니가 거실에서 주무시자 모씨가 감기를 걱정해 방으로 다시 모십니다. 할머니 한 분이 잠에서 깨자 그 방의 다른 분들도 모두 잠에서 깹니다. 때문에 오늘도 모씨는 겨우 한 두시간만을 잘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은 날씨가 궂은 날은 더욱 예민해집니다. 그런 날은 모씨가 꼼짝없이 밤을 꼬박 새는 날이기도 합니다. 서울에 많은 비가 내린 요 며칠이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일주일 전에는 할머니 한 분이 창문으로 나가려고 해 한바탕 난리가 났었습니다. 예전엔 방안 가득 용변을 묻혀 놓은 적도 있습니다. 또 모씨를 향해 한바탕 욕을 퍼부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모씨도 사람인지라 화도 나고 속상합니다. 하지만 모씨는 이분들이 가끔씩 모씨의 손을 붙잡고 “미안하다”며 그리고“고맙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들이란 것을 압니다.
모씨는 8년 전 가정봉사원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돌봐드릴 사람이 없는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하여 도시락도 배달하고 집안 일도 도왔습니다. 그러다 아는 분의 부탁으로 이곳에 온 지 4개월 째입니다.
“처음엔 진짜 못하겠더라고요. 할머니들 돌봐드리고 있다가 틀니가 빠지면 뒤로 놀라 자빠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틀니를 받으러) 손부터 가요.”
날이 밝자, 가장 먼저 잠에서 깬 모씨가 아침에 출근한 다른 사회복지사 한 명과 함께 할머니들의 아침단장을 돕습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할머니들의 기저귀를 가는 일입니다.
할머니들께 “다 주무셨어? 착해라”고 아침인사를 건넨 그녀가 용변이 가득 묻은 기저귀를 들고나옵니다. 이제 손에 익을 대로 익었는지 “자고나서 돈이 이렇게 생긴다면 얼마나 좋겠어요?”라며 싱긋 웃습니다.
기저귀를 다 갈고 난 후 이번엔 모씨가 세수를 시켜드리기 위해 할머니들을 일일이 찾아다닙니다. 이때만큼은 할머니들도 모씨 앞에선 얌전한 새색시입니다. 모씨가 세수 후 로션을 바르고, 안경을 씌워 드립니다. 그리고 머리를 곱게 빗겨 드리는 것으로 할머니들의 아침준비는 마무리 지어집니다.
“제가 돈벌이를 하려고 했다면 간병인 자격증을 가지고 병원에 갔겠죠. 전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할 일이 있다는 게 행복해요. 그래서 가끔 회식 때 농담 삼아 말해요. '제발 할머니 그만 두세요'라고 말할 때까지 일할 거라고.”
모씨는 아침에 눈을 떠 갈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지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모씨가 간병인으로서 갖춰야 할 1순위로‘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전문적인 지식보다 마음이에요. 그분들도 느끼고 다 알아요. 사랑이거든요. 그래서 전 실습 나온 학생에게 이렇게 말해요. 마음의 문이 가장 중요하다. 마음의 문이 열려서 통해야 된다고요.”
6시 훨씬 전부터 시작한 아침준비는 7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나고 이제 할머니들이 밥상 앞에 앉습니다. 오늘도 식사할 마음이 없는 할머니와 한 숟가락이라도 더 잡숫게 하려는 모씨가 한바탕 씨름을 벌입니다.
하루 종일 걸레질을 한다는 할머니는 일어나자마자 방바닥이며 소파, 식탁을 구석구석 걸레질하더니 식사시간에도 멈출 줄을 모릅니다. 모씨가 할머니 앞에 숟가락을 들고 나섭니다. 어르고달래 겨우 한 수저 입에 뜬 할머니는 다시 걸레질을 시작합니다. 모씨는 식사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녀가 식사를 하는 시간은 할머니들의 식사가 다 끝나고 설거지까지 마친 8시 반입니다.
“애기 돌보는 거랑 똑같죠? 한순간도 눈을 떼면 안돼요. 조금만 서운해도 막 우세요. 이 할머니는 걸레가 더러워지면 다른 걸레로 바꿔드리고 해요. 어떤 할머니는 항상 바느질을 하세요. 원래 예전에 그쪽 일을 하셨대요. 할머니들은 일거리를 주면 좋아하세요. 그래서 어쩔 땐 수건 같은 것도 일부러 드리곤 해요.”
“제 친구는 친엄마가 치매에 걸린 거예요. 너무 힘드니까 매일 밤마다 왜 안 죽냐고 그랬대요. 그런데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때 그 말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면서 후회하더라고요. 안 겪어 본 사람은 몰라요. 그저 '옆 집 할머니가 치매래, 안됐어' 이러면서 우리는 흘러가잖아요. 치매환자가 있는 가족들은 전쟁을 치르는 거랑 같아요.”
현재 국내의 치매환자는 28-30만명 정도로 추정합니다. 65세 노인 중 5% 가량이 치매를 앓고 있으며 나이가 들수록 그 비율은 높아진다고 합니다. 치매에 관한 다양한 원인과 치료방법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씨는 이러한 의학적 설명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말합니다.
"사랑이겠죠. 마음의 손길이요. 탁 하고 치는 거랑 어루만지는 거랑 다르잖아요. 그분들도 다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