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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인돌
19세기 초에 발표된 그림형제의 동화 백설공주 이야기는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동화이다. 공주와 이를 시기하는 계모 사이의 갈등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 백설공주 이야기는 요술거울, 독사과, 일곱 난장이 등의 상상적 요소들이 첨가되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괴롭혀서는 안된다는 교훈까지 담고있어 더없이 좋은 동화로 인정받아 왔다.

바바라 G. 워커는 이같은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진다. 왜 백설공주는 하얀 피부와 앵두같은 입술을 가지고 있을까? 계모는 왜 공주를 시기할까? 또 공주는 왜 난장이와 왕자의 도움을 받을까?

비단 백설공주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계모와 이복 언니들의 구박을 받는 재투성이 아가씨 신데렐라 이야기에도, 인간이 되어 왕자의 사랑을 얻고자 하지만 결국 물거품으로 바뀌어버리는 인어공주 이야기에도 그는 똑같은 물음을 가진다.

워커는 동화 속에서 여성들은 착하고 예쁜 여성 아니면 나쁘고 못생긴 여성으로 이분된다는 점, 여성을 괴롭히는 것은 또 다른 여성이라는 점, 여성은 남성의 도움을 받고 위기를 극복한다는 점 등을 발견한다.

"남성의 성적 반응은 시각적 요소에 따라 상당히 좌우되기 때문에 여성의 미추는 사실 여자들보다 남자들에게 더 큰 관심거리였을 것이다. 따라서 한 여성을 미의 등급을 매긴 잣대의 눈금 어딘가에 놓는 일은 아무래도 남성들의 아이디어인 듯 싶다. 여성들 스스로는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수천가지 다양한 유형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여성은 가치있는 사랑을 위해 고통을 인내해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은 단지 근육덩어리 남자들의 생각일 뿐이다. 인어공주가 사랑한 왕자는 무엇을 견디어냈는가. 그는 단지 자유를 택했을 뿐이다."

바바라 G. 워커의 <흑설공주 이야기(Feminist Fairy Tale)>(뜨인돌 2002)는 이러한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기존의 동화를 새롭게 쓴 페미니즘 동화책이다. 그는 기존 동화 속의 여성을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비판하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성격과 특징들을 부여한다. '알라딘과 신기한 램프'의 여성 알라딘은 자신의 부귀영화만을 비는 남성 알라딘과는 달리 귀족과 평민 할 것없이 모두가 평등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흑설공주 이야기'에서는 계모가 흑설공주를 위험에 빠뜨리는 대신 무례하고 비열한 헌터 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일곱 난장이들을 불러 흑설공주를 지키도록 부탁하는 것도 계모이다.

그런가하면 '미녀와 야수'의 미녀는 "곱사등에다 다리가 구부러지고 엄지발가락은 툭 튀어나왔으며 몸은 뚱뚱한데다 곰보에 머릿결도 뻣뻣"한 못난이 막내딸로 바뀐다(그러나 다른 동화에서와는 달리 막내딸은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져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미녀의 사랑을 얻은 야수가 마법이 풀려 잘 생긴 왕자로 변하는 대신 그대로 야수로 남는다. 야수의 말처럼 "아름다움이란 보는 이의 눈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며 살아가는 데에는 외모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막내 인어공주 이야기'는 왕자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물거품으로 변하는 기존의 인어공주 대신 당당히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왕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인어공주를 주인공으로 한다.

[저자소개] 바바라 G. 워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성학자 바바라 G. 워커는 1993년 미국 휴머니즘협회에서 '올해의 여성 휴머니스트'로 선정되었고 1995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부터 '역사를 만든 여성들 상'을 수상한 바 있다. <흑설공주 이야기> 외에도 <여자를 위한 신화와 거짓말 백과사전 The Woman’s Encyclopedia of Myths and Secrets>, <냉소적인 페미니스트 The Skeptical Feminist>, <아마존 Amazon> 등 많은 저서가 있다.
워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은 이처럼 당당하고 씩씩하다. 외모와 상관없이 밝고 명랑하며 당돌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보다 더 나은 여성을 도와주고 격려해준다. 그리고 말한다. 남성들에게 의지하지 말고 제 발로 꿋꿋이 땅을 딛고 서라고, 사회가 제시하는 외적인 미의 기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 속에 담겨있는 용기와 사랑이라고.

이러한 긍정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각 동화들이 완벽하게 페미니즘적으로 재해석되지 못한 것(이를테면 '막내 인어공주 이야기'에서 인어공주는 왕자의 잘 생긴 외모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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