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테로 가는 길
2003년 2월 8일 금. 지역에 따라 눈 또는 비
04: 30, 간밤에 숙면을 한 탓인지 몸이 가뿐했다. 온천탕을 열 시간이 되지 않아 다시 누워서 미적거리다가 05시 정각 시간에 맞춰 탕으로 갔다.
막 새 물로 가득 채운 듯 넓은 탕 안은 신선하고 뜨거운 온천수가 철철 넘쳤다. 혼자서 즐기다가 노천탕으로 나갔다. 거기서 멀리 바다가 보였다. 일본 측에서는 서해지만 우리나라서 볼 때는 동해 바다다.
05: 40, 객실로 돌아온 후 취재노트에다 간밤 세도마쓰리 축제를 정리했다. 기행문은 그때그때 기록해 두지 않으면 까마득히 다 잊어 먹는다. 아무리 기억력이 비상해도 기록에는 미치지 못한다.
취재와 사진 촬영은 순간 포착이 생명이다. 그 순간을 놓치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07: 10, 2층 식당으로 갔다. 아침은 뷔페식이었다. 사람들이 많았다. 어제 행사 탓인지 간밤에는 투숙객이 많았나 보다. 식판에다가 마련된 여러 음식들을 조금씩 담았다.
그런데 아이스크림 통 같은 데 담북장 같은 게 담기고 투명 셀로판으로 포장이 돼 있다. 문득 할머니한테 귀가 따갑도록 들은 ‘낫또(納豆)’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식판에 담아 식탁으로 갔다.
마침 구로다씨가 반갑게 아침인사를 하면서 내 옆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에게 포장을 벗기면서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낫또”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구로다씨가 영문을 물었다. 내가 휴대한 취재 노트 여백에다 한자를 써가면서 사연을 이야기하고 구로다 씨가 알아듣지 못할 때는 중간 중간 김자경씨가 통역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나라가 망한 후 선대 토지를 다 날리고 생활이 몹시 어려웠다. 어느 날 송아지를 선산 장에다 팔고는 할머니에게 알리지도 않고 그 돈을 가지고 몰래 일본으로 건너갔다.
할아버지는 몇 달 뒤에 도쿄 시나가와(品川)에다가 생계를 마련한 후 그제야 가족들을 불러들였다. 할아버지는 고물장사를 하시고 할머니와 고모들은 홀치기를 했다. 할머니는 일본사람들이 한국의 담북장과 비슷한 낫또를 좋아한 것을 알고 그걸 만들었다. 새벽마다 아버지가 낫또를 자전거에 싣고 도쿄 시내를 누비면서 ‘낫또’ ‘낫또’ 외치면서 팔러 다녔다.
일본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어느 정도 돈을 모으자 할아버지 할머니는 곧장 귀국했으나, 아버지는 학교 때문에 결혼한 고모댁에 남았다. 아버지가 신문배달을 하면서 중학교를 다니던 중 5학년 때 대동아 전쟁이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학병에 끌려갈 것을 염려해서 아들을 불러들여 우선 집안의 대를 잇는다고 곧장 결혼시켜서 나를 낳았다. 본토 공습이 심해지자 아버지는 일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고향에서 소학교 교사로 재직 중 해방을 맞았으나, 분단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직 당했다.
아버지는 만년에 군사정권을 반대하다가 투옥 당했다. 그때 2년여 감옥에서 고생하시다가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1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늘 한번 일본에 가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고, 출국 금지조치로 끝내 당신 추억이 담긴 동경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의 삶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생전에 불효를 많이 했다. 할머니는 그런 나에게 틈만 나면 아버지의 낫또 얘기를 해서 그게 무엇인지 모르다가 오늘에야 처음 보고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울컥했다. 불효자는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야 잘못을 뉘우치나 보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는 모두 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당신들이 젊은 날 일본 땅에서 살았을 때는 식민지 백성 ‘조센징’으로 얼마나 서럽게 사셨을까 생각하니 더욱 목이 메었다.
구로다는 내 이야기를 ‘하이, 하이’ 하면서 매우 진지하게 듣더니, “淚の 納豆(눈물의 낫또)”라고 하면서, 낫또를 소재로 글을 쓰면 알본인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곁에서 통역하던 김자경씨가 낫또에 대한 이야기를 보탰다.
일본인 중에서는 낫또를 무지하게 좋아는 사람과 그 반대로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 뚜렷하다. 끈끈한 낫또의 느낌과 쿠리한 냄새를 맡기도 싫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단백 영양식인 낫또를 너무나 좋아해서 매일 아침 따뜻한 밥위에 날달걀을 풀고 간장을 부어 비벼서 김에 싸먹는 사람들도 있다.
08: 00, 호텔 주인을 비롯한 종업원들의 90도 환송 절을 받으면서 버스는 다음 행선지로 달렸다. 일본 관리들은 첫날 전(全) 일정을 나눠주고도 매일 아침마다 그날의 세부 일정 프린트를 나누어 주었다. 오늘 오전은 고이와이(小岩井) 농장 견학이고, 오후는 모리노 카제(森の 風) 오오슈크(온천여관) 취재였다.
10: 00, 잠시 후면 아키타현을 벗어나서 이와테현으로 접어든다고 했다. 안내인 아이코씨가 마이크를 잡고 친절한 아침인사와 함께 조크를 했다. 간밤의 나마하게 비슷한 분이 이 버스 안에도 있는데, 바로 개그맨 김광회씨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11:00, 그 새 고이와이농장에 들어섰는지 언저리 경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달리는 버스 창문을 열어젖히고 두 개의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