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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매일 오후 백화산을 오르는 내 발걸음이 다소 무겁다. 여름철의 무더위 때문만이 아니다. 피서철의 갖가지 슬픈 사고 소식들을 자주 접해야 하는 아픔 때문이다.

거의 매일 백화산을 오르는 일은 당뇨병 환자인 나의 건강 관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서이기도 한데, 그러므로 나의 산행은 일석이조, 일거양득의 범주에 해당한다. 산을 오르면서 15단, 내려오면서 15단, 도합 30단의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이 묵주기도는 천주교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님과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이다.

백화산 정상에서 새로 시작하는 5단의 내 지향은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1998년 여름 지리산 계곡, 2003년 봄 서산시 음암저수지에서 가족을 모두 잃은 사람들을 비롯하여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가족 품을 떠나 이승을 하직한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이다. 그 지향의 기도를 할 때마다, 특히 요즘 같은 피서철에는 어디에서도 슬픈 사고들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더욱 간절히 비는 마음이 되곤 한다.

요즘엔 산을 내려오면서 바치는 마지막 5단의 지향이 바뀌었다. 원래의 지향은 '세상 떠난 이승에서의 나의 모든 인연지기들과 지금 이승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인연지기들의 가정을 위하여'인데, 한동안 지향을 바꾸기로 했다.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슬픈 죽음 때문이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깊은 생각들을 갖게 하는 고(故) 정몽헌 회장의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면서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게 된 것이다.

고 정몽헌 님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더욱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단순한 시각으로 보면 그는 기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하고, 또 그래서 더욱 열심히 기도한다.

나는 천주교 신자로서 평소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 하느님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음을 큰 다행으로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한다. 그런 차원이라면 고 정몽헌 님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정몽헌 님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천주교에서 자살은 대죄에 속한다. 살인죄에 해당한다. 사람의 목숨은 자기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하느님의 것이다. 그런 목숨을 스스로 끊었으니,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거스른 중죄가 되는 것이다.

자살을 한 사람에게는 구원의 문이 닫힌 상황이므로, 천주교 신자일 경우에도 그의 자살이 확인되면 그를 위한 공적인 기도와 예절은 모두 생략된다. '위령미사'도 지내지 않고, 신자들의 공식기도인 '연도'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하는 기도는 허용된다. 그가 비록 대죄에 속하는 자살을 결행했을지라도 그의 구원 문제는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달린 일이므로, 구원의 여지를 희구하는 마음으로 신자들은 자살을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도 개인적으로는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죽음을 결심하고 투신을 하거나 약물을 먹었을 때 그 행위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에는 '과정'이 있을 수 있다. 찰나도 과정일 수 있고, 특히 물로 뛰어든 사람의 경우에는 그 과정이 더욱 확실할 수 있다.

아무튼 찰나의 과정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칠 수 있고, 마지막 숨이 멎는 순간에 하느님을 부를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고, 그 가능성에 대한 생각은 내게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 된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꺼이 기도를 한다.

고 정몽헌 님이 세상을 하직한 날로부터 진심으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가 생전에 지녔던 '따뜻한 마음'을 많이 생각한다. 그는 따뜻한 마음을 안고 살았기에, 바로 그 마음 때문에 스스로 죽을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그런 따뜻한 마음을 하느님께서 어여삐 보시기를 믿고 비는 마음으로 그를 위해 기도한다.

그는 연세대 국문과를 나온 사람이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니 어느 정도는 문학의 세계도 접했을 것이다. 시와 소설을 읽으며 사유의 폭을 넓히고 생각하는 법을 터득하면서,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는 지성인의 품성을 희구하는 가운데서 삶의 옳은 가치에 대한 고뇌도 많이 했을 것이다.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일개 장사꾼인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1989년 1월 북한에 첫발을 딛고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개발 의정서'를 체결한 후 10년만인 1998년 소떼를 몰고 북한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업 활동이 '통일 사업'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도 가졌을 것이다.

기업 활동으로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고자 애쓰는 아버지를 보고 도우면서 그는 분단의 질곡 속에서 살아가는 겨레의 아픔도 다시 느꼈을 것이고, 당장의 이윤 추구와 상관없는 출혈 투자를 함께 시행하면서 그런 사업들이 민족의 통일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하서도 깊은 통찰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세상에 회자되고 있는 지난 2000년 현대그룹 '왕자의 난'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인 몽헌씨가 장남 몽필씨의 사망으로 장남 노릇을 하고 있는 차남 몽구씨와 대결을 벌여 현대그룹을 이어 받았던 것에 대해서도 나는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대북 사업'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헤아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의지를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존경심과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그 유지를 자신이 최대한 받들고 싶은 소망을 가졌을 것이다.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은 대북 사업과 관련해서는 5남인 몽헌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고, 그 대북 사업 문제를 논함에 있어 민족 분단의 참혹한 역사 속에서 통일 문제에 대한 깊은 고뇌도 가지고 있는 아들 몽헌을 보면서 그에 대한 신뢰를 키웠을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대북 사업에 대한 아들 몽헌의 생각을 확인해 가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신뢰가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이 결국 5남 몽헌의 손을 들어주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얼마든지 신빙성을 지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의 2001년 타계 이후 그룹 분리가 이루어지고, 재계 서열 10위 밖으로 밀려난 현대아산 그룹을 이끌면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대북 사업을 계속 시행해 가는 정몽헌 회장에게는 참으로 많은 심적 갈등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열 기업들의 경영 부진과 자금 압박을 겪으면서도 그는 대북 사업의 의지를 스스로 버리지 않았다. 비록 당장에는 적자를 각오해야 하고 장기 투자가 불가피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의 길에 기여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남북경협 사업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그는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도 변수가 많았고, 큰 숲을 보기보다는 나무 하나하나의 형태와 색채를 따지는 눈들이 무성하고도 자심했다. 일단 길을 만들고 나면 그 길을 너도나도 이용하며 덕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 길 하나로 말미암아 여러 갈래의 길이 생길 수도 있으련만, 자고로 길을 내고 넓히려는 일에는 온갖 시비와 방해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는 한나라당의 대북 송금 특검 요구를 수용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서 노 대통령의 세상과 역사를 넓게 보지 못하는 철학적 한계와 나약함을 읽었을 것이다. 민족의 통일 문제와 자주성·자존심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다르리라는 기대를 안고 출범한 노무현 정권의 종속적인 대미의존과 사대주의의 노출을 보면서 큰 우려와 절망감을 안았을 것이다.

대북 송금 특검에 시달리고, 현대 비자금 150억 원 조성 의혹으로 대검 중수부로부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그리고 수구 체질을 극복하지 못하는 야당과 보수 언론의 질타와 야유 속에서 그는 이상주의가 부딪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벽을 절감했을 것이다. 분단 현실 속에 가로놓여 있는 온갖 장벽들에 대한 절절한 체감은 그를 마침내 절망의 심연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늘의 난분분한 상황 속에서 한국인의 성마른 속성도, 필요 이상으로 할퀴고 헐뜯고 발목 잡기를 잘하며 그것만이 능사인 줄 아는 천박한 정쟁 제일주의 습성도, 역사를 능동적 창조적으로 만들어 가지 못하는 선의적인 사고력의 한계도 절감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 고뇌와 절망 속에서 마침내 죽음을 결심하면서, 오늘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죽음이 어떤 의미로 세상에 투영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자신의 죽음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메시지가 담겨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도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는 집무실 책상 위에 안경을 벗어놓고 하염없는 눈물 속에서 자신의 죽음과 결부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메시지를 선택하는 쪽으로 다시 결심을 하고, 마침내 죽음을 결행하였을 것이다.

그는 죽음 직전에 눈물을 흘리면서 1천만 이산 가족의 눈물도 떠올렸을 것이다. 2000년 여름 이산가족의 상봉이 빚어내는 눈물바다가 전국을 뒤덮었을 때 그 눈물바다를 보며 국민의 안보의식 실종을 개탄하는 <조선일보>의 황당한 사설도 떠올렸을 것이다.

그 사설 속의 "눈물이 통일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떠올리며 '눈물이 통일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눈물 없이는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국민 교육열이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지식과 정보가 넘치는 21세기 초엽의 이 시절에도 50년을 이어온 냉전사상과 그것에 기초한 가치관은 요지부동 더욱 난분분한 현실, 그리고 그것에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지역감정 문제를 보며 그는 눈물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48년 생으로 나와 동갑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좀더 정답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그는 정녕 따뜻한 가슴을 소유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믿는다. 따뜻한 가슴으로 민족의 분단 현실을 바라보고 통일 소망을 품으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선친과 자신의 기업 정신이 한껏 승화되기를 바란 사람이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런 가슴이 그로 하여금 자살의 길을 선택하였을 것으로 믿기에 나는 더욱 안타깝고 가슴이 절절히 아프다. 그를 위해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해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의 따뜻한 가슴을 익히 아시고 어여삐 보실 자비의 하느님께서는 그를 위한 내 기도에도 귀를 기울여 주실 것으로 믿는다.

온몸으로 이 시대의 진정한 메시지를 세상에 고한 고 정몽헌 님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삼가 기도로써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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