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와 전쟁을 하다니 어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아이가 어떻게 어른의 상대가 되겠는가? 내가 아이와 싸우느라 힘들다고 불평을 하면 친정어머니는 서른 살이나 더 먹은 사람이 꼬맹이와 싸워 이기려고 하느냐고 핀잔을 하신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도력(道力)이 짧은 탓인지 내겐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들과 잘 지내시는 것은 어쩌면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에 답이 있는 게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위안 할 뿐이다.

나와 전쟁을 치르는 상대인 딸아이는 만 6살, 유치원의 상급반에 다닌다. 아기일 때부터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센 편이었다. 어떤 때는 조급하기 이를 데 없다가도 또 어떤 때는 그렇게 천하태평일 수가 없다. 너무 대담해서 깜짝 놀라게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너무 소심해서 부모를 조바심나게 만들 때도 있다. 영특함이 지나치다 싶다가도 돌아서보면 아직도 어리기 짝이 없고, 좀 못생긴 게 아닐까 고민을 할라치면 어느샌가 뽀얗게 피어올라 우리의 고민이 헛된 것이라는 양 예뻐지기도 한다.

▲ "제가 '여름방학 전쟁'의 주인공이랍니다"
ⓒ 장영미

전쟁에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거늘, 나의 전쟁상대는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니 작전을 세우기가 쉽지않다. ‘육아백과’ ‘아이들의 버릇 들이기’등의 전술서를 참고로 하여도 보지만 그런 ‘잘나가는 전술’이 먹히지 않을 때가 더 많으니….

옛말에 ‘미운 일곱 살’이라고 했던가? 이제 언어를 통한 의사표현력도 생기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조금 알게 되었다고 또박또박 반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쏘아올렸던 공포탄을 오히려 내게로 날리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아이의 훈육이 어려워지는 때가 온 것이다. 상대는 날이 갈수록 더욱 강력하게 진화하고 있어 대응이 만만치않다.

인도인의 수행방법인 요가에는 별 희한한 것들도 많다는데, 내게 있어 ‘육아’는 일종의 요가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고 있고, 그것을 조절하고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고 있다. 그리고 육아를 통해 나의 욕구를 조절하고 다스리고 있으니 이것이 수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길고 긴 여름방학은 최대의 격전이 벌어지는 시기임과 동시에 수행(修行)의 강도 또한 높아지는 시기이다. 하루종일 아이와 있다보면 쉴새없이 잔소리포를 쏘게 된다. 예절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잘못을 꾸짖는다는 이유로, 버릇을 고친다는 이름 아래, 때론 차분히, 가끔은 언성을 높여, 결국은 아이를 울리면서까지 잔소리가 이어진다. 그래서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엄마들은 녹초가 된다. 뿐만아니라 엄마의 잔소리포를 맞아 아이들 역시 녹초가 된다.

잔소리포 전술이 서로를 피로하게 할 뿐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쓸 수있는 전술 가운데엔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 소비시키기’가 있다. 예를 들면, 친척집에 가거나 캠프에 참가함으로써 부모와 떨어져 보는 경험하기, 박물관이나 과학관에 가서 탐구심 키우기, 자연 속으로 들어가 탐험과 관찰을 함으로써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에 대해 느껴보기, 여행을 통해 자신의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 보기, 체력 단련을 위한 운동 배우기, 어린이 도서관에 가기 등이 있다.

이러한 전술은 아이와의 ‘여름방학 전쟁’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전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와 같은 유치원생은 부모가 데리고 다녀야 하므로 부모의 에너지도 함께 소진된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여름방학과 같은 장기전을 치룰 때엔 건강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지난 20일간의 전쟁에서 아이의 에너지를 소비시키기 위해 내가 택한 전술은 여름방학 특집 프로그램으로 무장한 ‘과학관에 가기’와 ‘여름방학 집중 수영교실 참가’였다.

이곳의 과학관은 어린이들이 직접 만져보고, 여러 가지 과학적 현상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그래서 관내는 마치 어린이 놀이터를 방불케 한다. 우주, 지구, 자연현상, 인체, 소리, 진동, 힘의 크기, 가상현실, 착시, 비눗방울 놀이, 컴퓨터, 악기, 공작, 실험, 관찰 등 모든 것이 직접 해 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그외에도 여름방학을 맞아 ‘산 속의 벌레 탐험’이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고, 여러가지 실험 및 공작 교실, 플라네타리움(planetarium)이라는 성좌투영기를 통해 ‘화성 대접근’ ‘놀라운 곤충의 세게’ ‘제인 구달 선생과 침팬지들’이라는 영상자료가 상영되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실험실에서 ‘젤리 만들기’를 해보았고, 곤충을 확대해 보기와 플라네타리움으로 요즘 우리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에 대해 배웠다. 벌레 탐험 특별전시회 내부에는 살아있는 장수풍뎅이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꾸며 놓은 방이 있었는데 딸아이도 이곳에서 커다란 풍뎅이들과 한참동안 놀았다.

▲ 장수풍뎅이(?), '곤충 탐험 특별전시회' 내부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어린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 장영미

▲ 곤충 탐험 전시회의 작은 방에서 딸아이가 사슴벌레를 발견했다.
ⓒ 장영미

▲ '젤리 만들기', 전자 저울로 재료의 분량을 재고 있다.
ⓒ 장영미


관내엔 원형경기장 모양의 실험코너가 있었고 마침 ‘공기’에 관한 몇 가지 실험을 하고 있었다. 수퍼마켓의 비닐 봉지에 열을 쬐어 날려 보냄으로써 열기구의 원리가 설명되었다. 보통의 공기와 헬륨을 넣은 비눗방울도 비교해 보았다. 그리고 동그랗게 구멍을 뚫은 커다란 상자에 연기를 가득 채운 후 상자를 툭 치자 도너츠 모양의 연기가 소용돌이 치며 발사되었다. 도너츠 연기가 저쪽 편의 바람개비를 돌리자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그밖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데워져 빈 캔을 찌그러뜨리고, 빈 맥주병의 주둥이에 올려 놓은 1엔짜리 동전을 들어 올리는 실험도 보았다.

▲ 과학관의 원형 실험실, 모두 천정으로 떠오른 '비닐봉지 열기구'를 보고 있다.
ⓒ 장영미


상설 전시실과 공작실을 돌고 나니 어느 덧 폐관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과학관에서의 전쟁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아이는 몹시 즐거웠던 모양으로 별자리 관람을 하고 있는 동안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제일 좋아요. 힘드신데도 저를 위해서 과학관에 데려와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 기분이 좋으면 말솜씨도 의젓해진다. 그러나 이런 의젓함도 잠시, 집으로 향하면서 벌써 우리는 또다시 전쟁에 돌입했다.

여름철에 물과 친해지는 것은 건강에도 좋고, 여러가지 운동능력과 함께 인내심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어서 좋다.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데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래서 작년 여름에 이어 올해에도 5일간의 집중 수영교실에 보냈다. 작년엔 물에 얼굴을 담그는 것조차 겁을 내더니 올해엔 잠수는 물론 보조판을 잡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전진하는 것까지 하게 되었다. 매일 오전에 자전거를 타고 20분 남짓한 거리를 오갔더니 내게도 운동이 된 것 같다. 서로 체력을 키워두는 것은 앞으로의 전투(?)를 위해서도 필요하니까.

▲ 여름방학 수영교실에서
ⓒ 장영미

이번 주는 유치원에서 오전시간에 특별보육을 해준다. 5주가 넘는 여름방학 기간 중에 불규칙한 생활로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생활리듬을 살려주기 위한 배려이다. 비록 오전 중이지만 휴전기간을 가질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숨을 고르면서 다음 주의 전략 및 전술에 대해 곰곰이 생각 중이다.

먼저 돌아오는 일요일엔 ‘그림자 인형극’에 데려가고 (공짜라니까 꼭 가려고 한다), 주중에 2-3일은 도서관에서 피서하고, 병원에도 하루 다녀와야하고, 다음 주 일요일 저녁엔 자치회의 ‘여름축제’에 가서 실컷 춤추고…

오늘도 난 아이와 전쟁을 치르면서 더불어 수행을 하고 있다. 이번 여름방학의 전쟁 속에서 부쩍 자랄 아이와 함께 '육아수행(育兒修行)’을 하는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