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몰라 한평생 고통받았던 어머니들을 위한 공간. 서울 어머니 학교가 10번째 생일을 맞이하였다. 시민산악회 길벗과 사회개혁운동연합의 대중 교육 운동으로 시작한 서울 어머니 학교는 지난 93년에 개교해 무려 2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서울 어머니 학교는 1년이 한 기로 국어, 수학, 영어, 한문반으로 구성되고 11명의 자원 교사들이 운영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 여성들은 교육에서 많이 소외돼 왔다. 남아선호 사상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빼앗긴 어머니들이 많았다.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린 어머니들에게 서울 어머니 학교는 문자 해독 능력 뿐 아니라 더불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공동체 생활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또 교사들은 어머니들을 가르치며 동시에 그 분들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교사가 지킬 일','학생이 지킬 일', '교가' 가 붙어있는 작은 교실에 낯익은 책걸상이 놓여 있다. 세 개의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는 교실 한 곳엔 초등학생이 보는 '쓰기', '읽기', '말하기 듣기' 교과서가 빼곡히 꽂혀 있다.
개교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20명가량의 어머니 학생들이 모였다. 앞에 앉기 싫어 뒤에 앉아 계시는 모습이나 지각을 해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모습이 영락없는 학생이다.
내외빈 소개 인사와 교장 선생님의 축사, 어머니 대표 인사말로 이어진 개교기념 행사는 교가 '상록수'를 제창하며 한 시간 만에 종료됐다.
최창우(47) 교장 선생님은 "글을 모르는 많은 어머님들이 뉴스를 보려 하지 않는다. 말이 너무 빠르고 어려운 용어들로 인해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며 "이는 곧 단순한 문자 문맹이 아닌 생활 문맹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고 안타까워 했다.
또 그는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건 어머님들의 인권을 침해당한 것과 다름 없다" 며 "이젠 정부에서도 이미 다 배운 사람을 더 배우게 만드는 평생 교육이 아닌 배움에서 소외된 분들이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진정한 평생 교육 정책을 펼쳤으면 한다" 고 당부했다.
서울 어머니 학교는 만성 적자다. 이에 선생님들은 무료로 자원봉사를 하고 기타 운영비는 지인의 후원이나 사회개혁운동연합의 보조금을 통해 자생적으로 견뎌내고 있다. 지난 8년간 매달 3~5만 원씩 꾸준히 후원해 온 사람이 있다. 가내수공업을 하며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장애인 허금(43)씨가 그 주인공이다.
"할머니가 예전에 글을 몰라 고생했던 걸 봤다" 는 허씨는 "우리 사회엔 생각보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처음엔 어렵지만 용기를 내어 배움의 길을 포기 하지 않았으면 한다" 고 짧게 의의를 전했다.
어머니 학교에서 8년째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현주(50) 선생님은 "99년에 공식적으로 등록돼 허가를 받기까지 그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며 "시초가 사회개혁운동연합인 만큼 요주의 기관으로 찍혀 여러 번 폐교 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고 감회를 밝혔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김씨는 "바쁜 마음에 비해 학습 효과가 오르지 않아 애태우는 어머님들을 볼 때 안타까웠다" 며 "어머님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종교인으로서 긍지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그간 무보수로 일하며 현실과 동떨어져 사는 자신의 삶을 이해해주고 함께 해온 아내에게 정말 감사하다" 고 덧붙였다.
4년째 서울 어머니 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명숙(56)씨는 "처음엔 A,B,C도 몰랐는데 이젠 간단한 동화 정도는 읽을 수 있다" 며 "시작 할 때만 해도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는데 지금은 스스로가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김씨는 "어머니 학교는 단순히 문자만 배우는 곳이 아니다"며 "그간 사회에서 소외된 어머니들이 남들과 더불어 사는 다양한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고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나도 처음엔 무조건 나를 숨기고 싶었다, 그러나 배움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며 "망설이는 다른 분들이 어머니 학교를 통해 당당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어머니들의 꿈과 같이 성장한 서울 어머니 학교는 배움에 갈증을 느끼고 상처를 가진 어머니들에게 앞으로도 항상 열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