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C 후반의 정조 시절. 하찮은 소품문으로 취급받던 이른바 '연암 류'의 글은 정조의 문체반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연암은 끝끝내 정조의 문체정책에 포섭 당하지 않고 현실정치를 피해 기행을 시작한다. 바로 이때 쓴 글을 엮은 것이 '열하일기'이다.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은 열하일기 속에 숨어 있는 연암의 참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열하일기를 '웃음과 역설'이라는 코드를 통해 들여다보는 일은 이제 진부한 일이 되어 버렸지만, 고미숙은 열하일기의 뒷 얘기와 연암 사상을 독특한 시선으로 관통하며 독자의 허를 찌른다.
때로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문장과 '고미숙 표' 웃음이 열하일기와 '충돌'을 일으키면서 어느 것이 연암의 생각이고, 어느 것이 고미숙의 생각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롭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연암은 살아 생전에 포복절도(抱腹絶倒)라는 말을 자주 썼다고 한다. 시대와 끊임없이 불화를 겪으면서도 연암은 웃음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또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연암이 '웃음'을 글의 으뜸 소재로 꼽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연암은 중국 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재미있는 글 하나를 발견한다. 무더위로 인해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면서 열심히 그 글을 베끼고 있던 연암에게 그 옆을 지나던 사람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글을 베끼고 있소?"라고 물었다. 연암은 천역덕스럽게 "이 글을 베껴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그들도 포복절도하지 않겠소?"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연암은 그만큼 타인과 함께 공감하며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글과 글 쓰기'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물론 연암의 글에 단순한 폭소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비꼬고 흔들기까지 하는 해학과 풍자, 또 풍자의 소재가 되는 '인간'이 없었다면 연암의 문학은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로 연암이 당시의 주류 문학과 사회에 합류할 수 없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에게 주류라는 것은 단지 풍자와 비판의 대상일 뿐이었다. 저자는 이런 연암 문학의 특징을, 동물을 등장시켜 인간사를 비꼰 <호질>을 예로 들며 한 문장으로 간추린다.
"흔히 '호질'은 타락하고 위선적인 사대부에 대한 풍자가 핵심이라고 이해되지만, 더 중요한 포커스는 범의 시점으로 인간 일반을 바라보는데 있다. 인간외부의 시선으로 인간보기, '호질'의 진짜 문제설정은 바로 이것이다."
이처럼 연암 문학은 비록 인간들(정치세력)로부터 소외되긴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깊이 품고 있다. 그래서일까. 연암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시대로부터 소외된 비주류 인생의 쓴웃음이 아닌 '유쾌한 웃음'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