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떠나는 여행은 폐 속 깊이 스미는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 좋다. 자동차의 창문을 활짝 열어본다. 에어컨으로만 더위를 쫓았던 지나간 여름이 길게만 느껴진다.
제주시내를 벗어나 동부산업도로에 접어들자 붉은 해가 이제 막 진통을 시작한다. 돌, 바람, 나무, 풀 한 포기마저도 자원인 제주의 자연은 언제 보아도 가슴이 설렌다.
절물자연휴양림을 가는 길에 '명도암'에서 차를 세웠다. 이슬에 젖은 해바라기 꽃이 이제 막 눈을 뜨고 있었다. 벌써 이곳엔 가을이 와 있었다. 다시 오르막길을 타고 힘껏 페달을 밟아본다.
'혼저옵서'.
절물자연휴양림 입구에 적힌 인사말이 왠지 가슴에 와 닿는다. 숲에서 내뿜는 피톤치드가 전신을 감싸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오랫만에 남편과 함께 하는 휴일 데이트. 쭉쭉 뻗은 삼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선 숲길을 걸으니 천국에 와 있는 기분이다.
정교하게 깔아 놓은 하얀 자갈길은 아스팔트 위로만 걸었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한다. 남편은 통나무 숲길 바닥을 걷고 있다. 아마 향수를 느끼고 싶은가보다. 곧게 뻗은 삼나무 끝에 아침 햇살이 걸쳐 있다.
아직은 이른가? 휴양림의 아침은 고요하다. 다만 산새들의 지저귐과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가 계절을 알릴 뿐.
숲과 마음이 머무는 곳. 이어지는 숲길을 끄트머리엔 늦게 떠나온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마 이들은 밤잠을 설치고 아침을 기다렸을 게다.
저만치 앞서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건강해 보인다.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행복은 먼저 찾아오는 것.
삼나무 숲 속에는 '숲속의 궁전'이 있었다. 비록 울타리도 없고 대문도 없는 집이지만 이들이 지은 집은 마치 숲 속에 궁전 같았다. 텐트 속 주인이 눈을 비비며 물을 길러 나간다. 상쾌한 공기를 마신 탓인지, 밤새 잠을 잘 잔 듯 얼굴 표정이 무척 밝다.
어디 그것뿐이랴! 주소도 없고 문패도 없이 숲 속에 즐비하게 지어진 궁전은 바람만 불어도 금방 날아갈 것만 같다. 기초공사도 없이 집을 지었건만 이곳에서는 부실공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살림살이를 훔쳐본다. 텐트 속 주인장은 나그네가 기웃거리는 것도 모르고 단잠에 빠져 있다.
길을 따라 금붕어가 살고 있다는 연못으로 발길을 돌렸다. 10리 밖에서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하얀 연꽃이 연못에 가득 피어있다.
신선놀음을 한다는 연못 속 금붕어는 피안의 세계로 휴가 떠났는지 보이지 않는다. 꽃을 바라보며 피안의 세계를 동경하는 중생들의 마음을 아는지 까마귀 한 마리가 주위를 맴돌고 있다.
산책로를 타고 약수터로 향했다. '제주시 제 1호 약수터'인 절물휴양림의 약수터는 유명세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약수물을 아이들은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마신다. 한 모금의 약수가 꿀물처럼 느껴진다.
절물휴양림은 정서함양과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산림휴양지이다. 또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해발 650m의 기생화산인 절물오름정상에 '말발굽형분화구'를 만날 수 있다.
또한 휴양림 내에는 다래실, 머루실, 산딸기실, 오미자실, 국화실, 벚나무실 등의 통나무집이 있어 민박을 즐길 수도 있다. 특히 전망대에 오르면 동쪽으로 성산일출봉, 서쪽으로는 무수천, 북쪽으로는 제주시가 한눈에 보인다.
특히 휴양림 내에는 삼나무 외에도 소나무, 다래, 산뽕나무 등과 더덕, 두릅 등의 나물 종류도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숲과 마음이 하나 되는 곳. 맨발로 숲 속 길을 내려오면서 김유진님의 '한적한 숲속 길을 걷노라면' 이란 시를 떠올렸다.
한적한 숲길을 걷노라면
어딘가 에서
나무타는 향내와 짙어 가는 녹음에
푸근한 공기 속으로 스며들고 싶어진다
기분 좋게 불어오는 미풍은 옷깃을 날리게 하고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어루만지는 산들거림은
감감소식인 친구가 부르는 손짓 같았다.
제주시에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절물자연휴양림은 맑은 물과 새소리. 벌레들의 울음소리를 가슴속에 담아올 수 있는 곳으로, 도심의 번잡함을 피해 잠시 쉬어 가면 좋을 곳이다.
주변 관광지로는 만장굴과 산굼부리. 고수목마, 비자림, 명도암관광휴양목장, 성판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