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더운지 집에서 한숨만 푹푹 쉴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바다를 찾아가기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아 일찌감치 포기하고 서울근교의 계곡을 찾기로 했습니다. 자주 여행을 떠나다보니 마음만 먹으면 일사천리 준비를 끝냅니다.
차 안에서 아내에게 입에 발린 아부를 합니다.
"우리 오분대기조 훌륭했어."
가평포도
마지막 피서차량을 헤집고 포도가 유명하다는 가평에 도착했습니다. 도로 한 켠에 차를 세우고 주렁주렁 달린 포도를 봅니다.
"아빠. 포도가 위에 내려 오네."
사과처럼 열매를 맺는 줄 알았던 제 딸 정수가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아빠. 왜 포도가 옷을 입었어?"
포도송이를 싸고 있는 봉투를 본 모양입니다.
"그건, 포도가 추워서…."
조종천
현리를 지나면 조종천을 만납니다. 조종천은 명지산에서 발원하여 현리-청평-북한강까지 무려 40여킬로미터나 흐른답니다. 곳곳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겁니다. 다리에서 다이빙하는 아이도 보이네요. 보기만 해도 시원합니다. 강은 버들치, 피라미도 살아갈 정도로 깨끗하지요. 상류쪽으로 더 올라가면 반딧불이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운악산 올라가는 입구에 넓은 주차장이 있답니다. 주차비는 무료랍니다. 물론 이 곳에 차를 대고 조종천에서 물놀이를 해도 좋습니다. 뙤약볕이 내리 쬐지만 수영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답니다. 어른들은 다리 밑에서 발을 담그고 햇볕을 피하고 있어요. 저녁엔 이곳에서 텐트치고 야영도 할 수 있답니다.
운악산
거의 3년만에 운악산을 찾았습니다. 해발 935미터로 기암괴석과 연이은 봉우리로 소금강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서울근교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요.
그런데 많이 변했답니다. 입구에는 식당도 많이 늘었고 펜션을 지으려고 여기저기 파헤쳐 놓았어요. 처음 운악산을 찾았을 때 산 허리춤까지 올라온 골프장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갈수록 심합니다. 더구나 요새는 현등사까지 도로공사가 한창입니다. 길가에 각종 자재가 널려 있어 좋아 보이지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악산을 찾는 이유는 아름다운 폭포와 맑은 계곡 그리고 천년 고찰 현등사가 있기 때문이지요.
운악산 계곡
하늘을 수놓는 폭포와 계곡을 만나려면 어느 정도 발품을 팔아야합니다. 그것이 힘들면 아래쪽에 있는 조종천에서 물놀이하는 것이 낫지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20여 분쯤 올라가면 시원스런 물소리가 더위를 쓸어냅니다. 이곳은 그나마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한적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이지요. 계곡을 따라가면 곳곳에 폭포가 있어 보기만 해도 시원합니다. 맘에 드는 곳에서 짐을 풀면 그만입니다.
아빠는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독서삼매경에 빠집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 삼국지를 읽는 맛이 그만이지요. 하도 열중하다보니 제 아들이 물에 빠지는 것도 몰랐습니다. 배가 고파 준비한 만두를 먹었습니다. 아이들 약병을 씻어 거기다 간장을 넣어 가지고 왔습니다. 간장을 뿌려먹는 만두 맛이 그만입니다.
얼마나 뛰어 놀았는지 정수가 바위에 누워 잠을 잡니다. 나뭇잎 사이로 파란 하늘이 살포시 뚫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파랗게 보이네요. 세상에 이런 신선이 어디 있나요?
뙤약볕이 저만치 지나가고 짐을 정리하고 산을 올랐습니다. 현등사가 우리를 애타게 부르고 있기 때문이지요. 상당히 먼 거리지만 3살배기 성수도 걷게 했습니다. 힘들면 주저앉아 안아달라고 보채지만 걷게 했습니다. 나중에 크면 아빠의 마음을 알겠지요.
스님이 아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올라갑니다. 라면 한 상자 들고 올라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불공을 드리면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요. 맛있게 드십시오.
나중에 현등사에서 주지스님이 산책 갔다가 '가레'라는 산과일을 꺾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 딸에게 선물하셨답니다. 너무 좋아 펄쩍뛰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흐뭇해 하는 스님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답니다. 아무쪼록 이런 기쁨을 뭇중생에게 많이 베풀어주세요.
산에 오르면서 잠자리도 잡아주었답니다. 표정만 봐도 아이의 기쁨을 알겠지요?
"다음엔 독수리도 잡아줄게."
제 딸은 그걸 믿습니다. 왜냐하면 아빠가 하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무우폭포
한참을 오르면 큼직한 바위가 길을 막습니다. 바위를 타고 높이 20미터, 폭 2미터 폭포를 만들어 냅니다. 일명 '민영환 바위'라는 하는데 '민영환'이란 글씨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답니다. 민영환은 이 곳 현리에 은둔하여 빼앗긴 나라에 대해 탄식했다고 합니다. "이름을 더럽히지 말자"는 각오를 했겠지요. 글자를 통해 선생의 기개를 엿봅니다.
천년고찰 현등사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때 인도에서 온 마라야미 스님이 창건했다고 합니다. 그 후 수백년 동안 폐허로 있다가 보조국사 지눌이 우연히 운악산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산 중턱쯤에 환한 불빛이 보였답니다. 찾아가 보았더니 그곳에 관음전이 있더랍니다. 그 석대 위에는 옥등이 하나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그 후에 지눌은 절을 재건, '현등사'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현등사는 많은 아픔을 지닌 절입니다. 외적이 침입할 때마다 절은 파괴되었지요. 6·25때도 큰 피해를 입어 총탄자국도 찾을 수 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년을 견디어 온 것이 바로 이 3단의 축대랍니다. 자세히 보면 어긋남이 없이 견고하게 돌을 쌓았습니다. 천년 전 석공의 땀방울이 어렸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 번 어루만지게 됩니다. 축대 중간에는 조그만 텃밭을 만들었더군요. 고추가 탐스럽게 열렸답니다. 스님의 정성이 탐스런 결실을 맺은 겁니다.
현등사석탑
5층도 아니고 4층입니다. 지붕돌 하나가 파손되었나 봅니다. 비례를 보니 2층 지붕돌이 보이지 않네요. 날렵한 비례감은 보이지 않고 돌쇠처럼 우직하게 땅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하대석의 조각이 일품입니다.
사각에 안상무늬를 새겨놓았고, 연꽃이 화려하게 둘러 있어요. 특히 중간돌은 여인네의 허리처럼 잘록하게 들어갔는데, 그곳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았습니다. 석탑난간에 기대 바라본 풍광이 일품이랍니다. 삼면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고, 앞으로는 확 트인 눈맛을 보여줍니다. 고개를 들면 기암괴석이 16나한상처럼 절을 살포시 감싸안고 있답니다. 아주 절묘한 곳에 절집이 자리잡고 있답니다.
지진탑
보조국사가 현등사 재건할 때 경내의 지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파손이 심해 탑의 모습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자세히 보면 면석에 4방불이 새겨져 있답니다. 지붕돌이 산세의 곡선처럼 아름답습니다.
해우소
해우소에서 일을 보며 바라본 경치가 일품입니다. 왠지 쉬도 잘 나온답니다. 해우소 옆에는 텃밭이 정성스레 가꾸어져 있답니다. 아마 해우소에서 나온 분뇨를 거름으로 쓰겠네요.
"스님. 제 것도 쓰십시오."
현등사 동종 (유형문화재 168호)
영조 때 조성된 극락전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어요. 근래 보수하려고 자재를 뜯고 있습니다. 자연스런 민홀림 기둥이 우직하게 보입니다. 축대도 꾸밈 없고 순박합니다. 법당에는 영조 때 조성된 아미타삼존불과 오래됨직한 후불탱화가 걸려 있답니다. 극락전 안에는 멋진 동종이 있답니다. 봉선사대종을 모본삼아 광해군 때 봉선사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종소리가 맑고 청량하다고 들었습니다. 쌍용이 포효하는 조각이 인상적입니다. 띠 안에 둘러 있는 연꽃 문양 그리고 파도가 일렁일 듯한 문양들이 생동감이 넘친답니다.
근래 새로 지은 응진전이 볼만합니다. 워낙 절터가 좁아 절묘하게 산 기슭에 얹었습니다. 응진전에 오르려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지붕에는 잡초들이 자라고 있답니다. 저것도 생명이기에 그냥 자라게 놔둡니다. 왠지 더욱 운치 있게 보입니다.
하산
정수가 스님께 선물을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운악산의 선한 기운을 받았는지 모르겠어요. 친구에게 실컷 자랑하겠다고 잡은 잠자리를 다시 놓아주겠다고 합니다.
"잠자리야. 엄마한테 가야 돼."
그리고 올챙이도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냅니다. 오늘따라 제 딸이 대견해 보입니다. 자연은 이렇게 따뜻한 마음씀씀이를 가르칩니다. 내려올 때는 성수를 배낭에 넣고 왔어요. 아주 곯아 떨어졌습니다. 머리가 한쪽으로 치우칠 때마다 걸음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아이고 허리야."
현등사 두부집
현등사 입구에 두부집만 10곳이 넘습니다. 가평군에서 '공식두부촌'으로 지정까지 해놓았으니 그 명성이 자자합니다. 매번 현등사 갈 때마다 들르는 집이 있지요.
'샬롬의 집'. 이 자리에서 15년동안 두부집을 운영했답니다. 지금은 아들, 며느리가 가업을 잇고 있지요. 너른 대청마당에서 담백한 두부 한 점 음미하는 것도 또다른 여행의 즐거움이랍니다.
손두부(4천 원)도 맛이 진하답니다. 취나물을 싸서 먹는 맛이 일품이지요. 두부전골(6천 원)은 새우와 조개로 국물 맛을 내더군요. 거기에 버섯과 두부가 어우러져 절묘한 맛을 우려냅니다. 가평은 포도말고도 잣이 유명합니다. 잣 막걸리(3천 원) 한 잔 들이키면 잣내음이 오랫동안 입안에 머문답니다. 운악산의 감동과 함께….
| | 여행메모 | | | | 1)직행버스
상봉터미널-청평-현등사(1시간 50분, 1일 8회 운행)
상봉터미널-청평-현리(1시간 20분, 배차간격 30분)
2)시내버스:
현리-현등사, 상판리행 시내버스 이용(15분, 1일 10회 운행)
청평-상판리(하루 3회 운행, 현등사 입구 하차)
3)자가용
서울-47번국도-진접-신팔사거리-37번국도-양지마을-현리-삼거리-새말-하판리
4)입장료
어른 1천원/어린이 5백원/주차비 무료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