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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6일 서울시 교육감이 금연에 성공한 사람에게 상품으로 보냈다는 도서상품권 몇 장을 받았다. 동료들로부터 축하의 박수와 함께 2002년도 우리 학교 10대 뉴스 중에 하나로 넣을 만하다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지난 겨울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재학 중인 고교 동창의 주선으로 함께 일본 동남부 지방 역사탐방에 나섰다. 그는 나의 문경지교(刎頸之交)라고 할 만큼 좋은 친구다.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 날 배가 부산내항을 빠져나와 오륙도를 지날 때 친구와 갑판으로 나가 멀어져가는 부산항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추억 속에 잠겼다.
1920년대 송아지를 팔아서 그 돈을 여비로 할머니 몰래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가셨다던 할아버지, 도쿄 유학으로 수십 번은 더 오갔을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
그때 친구가 갑판에서 담배를 태우자 그 연기가 눅진한 바닷바람에 깔려 내 코에 스몄다. 순간 불길에 빨리듯 담배를 태우고픈 욕구를 강렬하게 느꼈다.
그런 낌새를 알아차린 친구가 담배 한 개비를 나에게 건넸다.
“야, 박도. 이럴 때는 한 대 피는 거야. 소설 쓴다는 놈이 담배 끊고 무슨 소설을 쓰냐 ?”
순간 내 손이 그에게로 가려다가 멈췄다. 다시 손대면 끝장이라고.
“그래, 나는 소설을 못 쓰더라도 담배는 끊어야해.”
나는 그를 외면하고 선실로 돌아왔다.
“자식, 보기보다는 독한 놈이야. 담배 끊은 친구와는 상종도 말라고 했는데….”
2003년 9월 2일은 내가 금연한 지 18개월이 되는 날이다. 앞으로도 나는 가능한 담배를 다시 태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자신 있느냐고 묻는다면 살아봐야 알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담배의 마력은 그만큼 무섭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금연이 쉬우면 흡연이 전혀 문제가 안 되었을 것이라고.
담배를 끊자 몇 가지 좋은 현상이 나타났다.
그 첫째는 담배 냄새의 공해에서 벗어난 점이다. 담배 냄새는 흡연자도 때로는 몹시 역겨울 정도로 아주 고약하다.
그 둘째는 가래가 멎었다. 담배를 오래 태우자 아침에 세수할 때 가래가 끓어올라 그 소리가 다른 이에게 공해가 되었다.
그 셋째는 공범 의식에서 해방이다. 담배를 태울 때는 길거리 바닥에 흩어진 꽁초를 볼 때마다 공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욱이 담배꽁초를 화단이나 화분에 몰래 꽂아두어서 많은 사람들이 흡연자들을 도매금으로 매도했다. 담배 태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는 함부로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담배꽁초는 누가 버렸을까?
그 넷째는 주머니 돈이 마디었다. 하루에 한 갑, 때로는 두 갑의 담배 돈도 수월찮았다.
그 다섯째는 주머니가 깨끗해졌다. 담배를 가지고 다니면 아무리 조심해도 담배부스러기기 주머니 안에 떨어졌다.
그러나 흡연의 좋은 점도 있다.
그 첫째는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 담배 한 대 태우면 담배 연기처럼 생각이 피어오르곤 한다.
그 둘째는 화가 났을 때나 인내가 필요할 때 담배를 태우면서 속으로 삭일 수 있다.
그 셋째는 사람이 산다는 것은 때로는 너무나 힘들고 고달프다.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심지어 부부간에도 부모자식간, 형제자매간에도 서로 풀어줄 수 없는 고뇌와 번민이 닥칠 때가 있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마저 버리는 이도 있지 않은가? 그럴 때 담배는 그 고뇌와 번민을 헤쳐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구요 위안일 수 있다.
37년간 나는 너무나 담배를 사랑해 왔다. 이제 1년 남짓 담배와 결별하고는 그동안의 정분은 팽개친 채, 너무 담배의 공보다 과를 일방으로 몬 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금연이 추세인 시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류사회에는 대부분 담배를 태우지 않는다. 그리고 흡연자의 영역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흡연을 하면 살아가는 데 매우 불편하고 건강에 백해무익하며 경제적 손실 또한 적지 않다.
이런 많은 단점에도 굳이 담배를 태우겠다면 다음의 조건을 갖추기를 바란다.
첫째 성년이 되고 자기가 번 돈으로 담배를 사서 태워라.
둘째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흡연을 하라.
셋째 뒤처리를 완벽하게 하라. 꽁초 처리는 물론 화재 위험까지 없게 하라.
넷째 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직업은 피하라.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내가 담배를 입에 무는, 내 의지로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는 불운이 닥치지 않기를 빌고 또 빈다. 내가 금연하도록 끊임없이 자극(스트레스)을 준 아내, 학교를 절대 금연지구로 선포한 유인종 교육감, 고 이주일 개그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내 건강을 염려해서 금연하도록 편지와 전화 등 자극을 준 수많은 제자들에게 감사와 그동안 그들에게 간접흡연 피해를 많이 끼친 점을 뒤늦게나마 진심으로 사죄한다.
"얘들아, 나 담배 끊은 지 18개월 됐는데 앞으로 안 태우도록 노력하겠다. 그동안 담배냄새로 공해를 일으킨 점을 깊이 사죄한다."
아무튼 담배는 아예 입에 안 대는 게 가장 좋다. 한 번 입에 대면 나처럼 37년간 담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하면, 심한 경우는 흡연이 원인이 돼 죽음에 이르기까지도 그 담배의 마굴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하기 십상이다. 애당초 담배는 입에 대지 않는 게 모두를 위해서 좋다.
현명한 사람은 먼저 산 사람의 진솔한 체험담에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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