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과 아산이 최근 3년간 대립하며 줄다리기를 해오던 경부고속철도 4-1공구(천안·아산지역) 역사 명칭이 결정됐다.
건설교통부는 지난 28일(목) 오전 역사 명칭에 괄호를 추가한 병기역명인 '천안아산역( )’으로 결정, 공식 발표했다.
괄호 안 명칭은 아산시에서 지역을 상징하는 명소나 사적지 명칭으로 건의하면 받아들여 오는 9월 말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건교부는 이번 결정에 대한 보도자료를 통해 ‘역명자문위원회 건의(4월 23일) 이후에도 아산시 반발 등의 지역갈등 해결을 위해 그동안 냉각조정기간을 뒀다. 이번 결정에서 건교부는 위원회 건의를 존중한다는 민주적 원칙을 지키면서도 아산시민 정서를 배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역사 표지 설치 등 고속철도 관련 사업이 빠른 진척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건교부의 이같은 결정은 앞서 지난 27일(수) 오후 아산시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식을 접한 강희복 아산시장은 28일 오전 건교부를 찾아 성명발표를 통해 속지주의의 기본원칙을 무시한 이번 결정의 부당함을 피력했다. 아울러 아산시가 그동안 주장하고 제시한 바 있는 아산시 지역명칭을 상징할 수 있는 명칭으로 결정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한편 이에 앞서 지난 26일(화)에는 아산시가 지난 4일 국무총리실 산하 조정기구인 행정협의조정위원회(주무부처 행정자치부·조정위)에 요청한 조정신청과 관련한 회의가 열렸으며, 조정위는 이날 각하 결정을 내렸다.
건교부는 이외 경부고속철도 기본계획상 남서울, 대구, 경주는 각각 ‘광명역’, ‘동대구역’, ‘신경주’역으로 확정했다.
“고속철도 역명 조정대상 아니다”
-행정협의조정위, 아산시가 요청한 조정신청 각하
| | | 천안아산역 결정 경과 | | | | ◇90년 6월 - 경부고속철도 사업계획 및 노선확정
◇2000년 10월 - 건설교통부, 공단·철도청·충남도에 의견 요청
◇2001년 3월 - 건설교통부, 고속철도공단에 명칭 재검토 요청. ‘장재역’은 리단위 명칭으로 인지도가 낮고 관련 지자체도 반대한다는 이유.
◇2003년 2월 - 공단, 건설교통부에 역명칭 조사결과 보고(전문기관 제시명칭:충의역, 천산역, 천아산역, 장자울역/ 지자체 의견:장재역(충남도), 아산역(아산시), 신천안역(천안)/ 공단 의견: 폭넓은 의견수렴을 위해 관계전문가, 지자체 등이 참여하는 임시자문기구를 설치, 역명을 선정하자고 제시)
◇2003년 2월 - 고속철도 역명칭 선정자문위원회 구성
◇2003년 4월23일 - 제3차 위원회에서 ‘천안아산역’으로 결정 건교부에 건의
◇2003년 7월25일 - 국무총리 주재로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 개최(자문위원회 건의안대로 역명을 조기 확정 시사)
◇2003년 8월4일 - 아산시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
◇2003년 8월26일 - 조정위원회 개최. 위원들, ‘조정대상될 수 없다’고 합의 각하 결정
◇2003년 8월28일 - 건교부 병기역명 ‘천안아산역( )’ 결정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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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건교부의 ‘천안아산역’ 명칭 확정은 사실상 지난 26일(화) 결정됐다.
건교부 자문기구인 역사명칭선정자문위원회의 천안아산역 명칭 결정(4월 23일)에 반발한 아산시의 조정요청(4월23일)으로 행정협의조정위원회(위원장 우병규·국제미래사회연구소 이사장·조정위)는 지난 26일(화) 오후 2시30분 정부중앙청사 회의실에서 심의를 가졌다.
이날 조정위는 약 1시간 30분 가량 아산과 천안의 의견을 청취한 뒤 1시간여의 자체논의를 거쳐 ‘국가사무는 행정협의조정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데 합의, 각하 결정을 내렸다.
조정위원은 우병규 위원장, 이재화(수원지검 소속 공증인), 이경숙(숙대 총장), 김흥래(지방행정연구원장) 등 민간인 위촉 조정위원 4명과 재경부, 행자부, 예산처, 국무조정실, 법제처 관계자 등 총 9명이 참석했으며, 아산시장과 천안시장, 건교부 관계자, 이명수 충남도 행정부지사가 자리했다.
아산과 천안에서는 각각 50여명의 시민 및 시의원들이 상경해 결과를 기다렸다. 양 지자체 시민들은 서로 껄끄러운 듯 마찰을 피하기 위해 정문(천안측-사헌부터)과 후문에 나누어 자리, 회의 결과를 기다렸다.
오후 5시 5분경 회의결과가 발표된 후 성무용 천안시장은 정문을 통해 정부중앙청사를 곧바로 나와 발길을 돌렸다. 강희복 시장은 성 시장보다 약 10분여 늦게 아산 상경단이 자리하고 있는 후문으로 나와 5분여간에 걸쳐 결과 발표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강 시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각하됐다’는 내용을 전하며 “좋지 못한 결과를 전하게돼 모두에게 죄송하다”고 전제한 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매듭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건교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열린 자리라고 볼 수 있다”며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국가사무인지 지방자치단체 사무인지는 해석에 따라 달리할 수 있다고 본다. 이후 지방자치학회, 지방자치법 운영 단체 등에 자문을 의뢰해 문제해결에 노력할 것이며, 행정 소송·심판 등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해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피력.
강 시장 통한의 눈물 ‘펑펑’
-시민들 분노 표출… 저지경찰과 짧은 시간 몸싸움
상경 시민들에게 결과를 전하고 난 뒤 차에 오른 강 시장은 비통한 마음을 더 이상 가누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쏟아 이를 본 시민들의 가슴을 쓰리게 했다.
이를 지켜본 시민들은 “강 시장이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린다”며 “그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나 단편적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한 마디.
혹시나 하며 억눌렀던 감정이 터진 시민들은 정부중앙청사에 계란 투척을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로 실패한 뒤 청사주변을 경계하던 경찰들과 짧은 시간 몸싸움을 벌이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천원희 아산시 재향군인회장은 “원칙과 기본이 사라진 지 오래인 이 나라에서 행정 심판과 소송에 무슨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냐”고 분노를 표출하며 경찰들과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다 발걸음을 돌렸다.
아산학생 등교거부 움직임
-아산역 투쟁 계층 갈수록 확대
아산역 관철을 위한 투쟁 계층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이번에는 학생들까지 등교거부 움직임을 보이는 등 투쟁에 참여, 심각한 후유증과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아산시 학교운영위원회 협의회(학운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9월 초 아산지역 학생 2만8000여명이 등교거부 및 촛불시위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지난 14일 모임을 갖고 촛불시위 및 등교거부를 결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23일 오후 2시에는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에서 초·중·고 운영위원장 및 자모회장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석회의를 갖고 일정 조정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운위 관계자들은 오는 9월 2일 다시 회의를 갖고 투쟁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 | [기자 주장] ‘천안아산역’으로 모든 걸 덮지 말자 | | | 역명 중요한 문제지만 전부는 아니다...더욱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시민을 찾는 일 | | | | 수년간의 지역간 대립, 4개월여간의 투쟁과 상처, 그리고 패배감으로 인한 피해의식 유발 우려….
행정협의조정 실패에 이어 지난 28일(목) 건교부가 경부고속철도 역명칭을 ‘천안아산역( )’으로 결정한 뒤 아산시에 남은 것은…. 상처뿐인 싸움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마치 ‘천안아산역’이 아산시의 모든 것처럼 느껴진다. 시민들 대부분은 역사명칭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소위 지역의 ‘리더 뉴스메이커(상류 여론주도층)’들이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
장시간의 투쟁으로 잃은 것들은 생각지도 논하지도 않고 있다. 일부(시·투쟁위·지역투쟁 주도계층)의 실수, 실패 또는 시행착오를 덮으려 하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대안도 없이 무조건 강경 투쟁만을 외친다. 지난 시간 그래왔듯이 시민들은 또 지켜보고만 있을 것이다. ‘양치기 소년’처럼 이제 시와 투쟁위를 신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실망이 극에 달했다는 표현은 지역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뭘까. 혼자 나서고 패하면 ‘우리’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쓰기 때문이다. 자율참여가 이뤄지지 않고 동원된 인원으로 만들어진 투쟁세력이 20만 아산시민의 목소리와 힘은 아니라는 것을 느껴야 한다.
역명과 관련해 투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극히 일부다. 만약 공청회 또는 설명회 등을 통해 시민단합을 이끌어냈다면 강 시장의 눈물은 20만 아산시민 모두에게서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남의 눈물 흘린 것’으로 들어 넘기는 시민들이 많다는 것은 투쟁위와 시가 그동안 수없이 외쳤던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시민들에게 정보를 차단하는 등 눈과 귀를 가린 결과가 오늘의 몇 배 되는 짙은 패배의식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겪지 말자. 실패를 깨끗이 시인하고 우선 잃어버린 시민을 되찾는데 전력을 기하자. 역명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큰 시민과 시민들의 신뢰를 먼저 되찾자.
앞으로 도청 유치, 신행정수도 유치 등 더 크고 중요한 사안들이 많다. 그 사안들에 대해 오늘날 역명 관철 실패를 재연하지 않으려면 내 목소리를 시민들의 목소리로 치장하지 말고, 진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전해야 한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