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눈이 떠졌다. 독도가는 날인데 어찌 더 눈을 감고 있을 수 있으랴. 새벽 6시,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드디어 배는 도동항을 벗어난다. 모두들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독도를 향한다.
독도를 향하는 마음
얼마나 가고 싶었던 곳인가? 얼마나 가슴에 품고 싶었던 곳인가? 10년 전 한라산을 가슴에 품었고, 8년 전 백두산에 올랐을 때 그 다음엔 꼭 독도를 가야겠다고 맹세했다. 바로 오늘이 8년 전의 소원을 푸는 날이다.
독도를 찾는 의미는 다양하다. 스님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지루한 망망대해일진대 스님은 무슨 생각을 그리 할까? 바다를 보며 넉넉한 심성을 배웠을까? 아니면 뱃길을 바라보며 구도의 길을 생각해냈을까? 검정고무신에 발바닥을 대고 두 시간을 꼬박 서 있는 스님의 모습이 힘겹게 보이기도 하고 한편 그 노력들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왜 스님이 독도를 찾았을까? '
해상의 고속도로
독도와 울릉도 사이 해로는 해상의 고속도로이기도 하다. 발해민이 일본을 건널 때도 이 뱃길을 이용했고, 장보고가 해상을 장악했을 때, 분명 이 바닷길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남과 북 모두는 이 뻥 뚫긴 바닷길로 만날 수 없다. 주로 러시아 선적이 이 길을 이용한다. 블라디보스토크을 출발하여 청진, 부산을 거쳐 남태평양으로 향할 것이다.
힘든 독도행
배멀미 환자가 발생했다. 의식까지 잃었다고 하니 상당히 심각하다. 선장은 어쩔 수 없이 배를 돌린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얼마나 어렵게 이곳을 찾았는데 단지 배멀미 때문에 보지 못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수 없다. 10여분이 지났을까? 다행히 환자는 의식을 회복하고 일어났다. 선장은 다시 뱃머리를 돌린다.
'독도 가기 참 힘들다.'
저 멀리 독도가 보인다.
두 시간을 달렸을까? 드디어 독도가 보인다. '아, 독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가깝게 보여도 두 시간을 더 가야만 독도 땅을 밟을 수 있다. 울릉도에서 총 4시간이 걸린다. 몇몇은 선창가에 '전세'를 내어 뚫어지게 독도를 바라본다. 혹시 한눈 팔면 섬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해심이 무려 2천미터가 넘는단다. 그 깊이로 우려내서 그런지 바다색깔이 진한 남보라색이다. 독도가 쏟아낸 눈물 때문은 아닐까?
검은 바위섬 독도
그 너른 동해바다의 작은 점이건만, 얼마나 혹독한 시련을 당했던가? 하늘까지 돕는다. 1년에 단 60여일만 맑은 날씨를 보여준다는 독도다. 그만큼 범인이 접하기 힘든 섬이다. 드디어 푸른 독도가 나타났다. 우뚝 솟은 서도와 동도 사이에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이 나온다. 촛대바위와 삼형제 바위가 오랜만에 나타난 뭍사람을 보고 환호한다.
독도가 국토의 동쪽이고, 그저 볼품없는 돌산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수만년을 동해를 지키느라 고생이 많았어. 우리를 환영해준 것은 비단 바위뿐만은 아니다. 늠름한 독도 경비대가 길게 사열을 하고 있다. 경례를 하면서 외치는 구호가 동해바다를 쩌렁 울리게 한다.
"충성!"
독도땅을 밟으며
가장 먼저 해를 맞이하는 내 나라, 내 땅 독도땅을 밟았다.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번지에 내가 선 것이다. 그 감격을 무슨 말로 표현할까? 동행인들은 내리자마자 태극기를 마음껏 흔들고 우리 땅임을 선포한다. 이렇게 태극기가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을 때가 또 있을까?
독도에서 만난 무궁화꽃과 독도의용수비대
독도경비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만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감사한다. 생각 외로 급한 경사다.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저 멀리 촛대바위, 엄지바위 그리고 삼형제 바위를 보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난간이 없었다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무궁화 꽃이다. 누가 일부러 심었겠지. 온갖 풍랑을 이겨내고 꽃을 피어낸 무궁화가 참으로 대견하고 고맙다. 더 많이 피어내길 바랄 뿐이다. 50년대 '독도의용수비대'가 이 땅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사꾸라 꽃이 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도는 6·25 사변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소홀한 틈을 탄 일본은 이곳에 상륙하여 위령비를 파괴하고 일본영토 표식을 하고 돌아갔다.
이를 보고 분개한 홍순칠씨는 우리나라 마지막 의병인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한다. 울릉도 경찰서장으로부터 지원 받은 박격포, 기관총, M1소총 등으로 무장하여 일본 함대를 격퇴시킨 것이다. 3년 동안 무려 50여 차례의 전투를 치렀다니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독도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일본 경비정의 화력에 밀려 독도를 지키기가 어렵게 되자 진지 공사 때 쓰다 남은 소나무 원목을 검게 칠해 나무 대포로 만들고 이를 동도 꼭대기에 세운 것이다. 일본 경비정이 나타나면 포신을 경비정으로 향하게 한다. 그걸 본 경비정은 나 살려라 내뺐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어렵게 지켜낸 것이 바로 오늘날의 독도땅이다.
우편번호 799-805
독도경비대 막사 옆에는 빨간 우체통이 서 있다. 799-805 독도 고유 우편번호다. 우체통은 눈,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을 감안하여 기존 것 보다 1.5배나 두꺼운 철판을 사용했고, 무게 180kg인 대리석을 받침돌로 놓아 태풍에도 절대 쓰러지지 않도록 했다.
대리석 앞면에 태극기 문양과 대한민국의 글자가 선명하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싸고 소중한 우체통이 아닐까? 작은 것이지만 전국토의 하나라는 것을 대외에 공포하는 효과가 있다. 이 우체통을 통해 전 국토에 우편물 서비스를 하게 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바닷물을 시원스레 한 잔 마셨다. 실은 경비대원을 위해 바닷물을 정수한 물이다. 시원한 동해의 물이 폐부를 찌른다. 그리고 서울집에 전화를 했다.
"정수야, 지금 독도야."
독도는 우리 땅
나는 독도가 울릉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줄 알았다. 울릉도에서 무려 90여km나 떨어져 있다. 4시간 동안 계속 내달려야만 독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오키섬에서는 160km가 떨어져 있다. 이것만 봐도 우리 땅임이 분명하다.
'獨島'는 원래 외로운 섬이 아니다. 원래 돌섬인데 초기 이주민이 남해출신이라 '독섬'으로 발음되면서 독도를 굳혀진 것이다. 지금은 작은 섬이지만 애국가의 표현대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는다면 독도는 2천여km의 거대한 산꼭대기인 것이다. 그 해저산의 최고봉이 독도인 것이다. 가끔 예언서를 보면 일본이 침하하고, 동해쪽이 융기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백두산처럼 독도가 가장 높은 봉우리가 되지 않을까?
일본이 독도에 터무니 없이 영유권 주장을 하는 데에는 숨은 저의가 있다. 최근 독도 주변에서 막대한 가스층이 발견되었고, 석유가 매장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밖에 한난류가 교차하기 때문에 어족 자원이 풍부하여 고기가 많이 잡힌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빼앗고 싶은 심정이겠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독도는 반드시 내가 지킨다.
독도 땅에 뿌리 박은 식물
그 가파른 벼랑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식물이 눈물겹도록 고맙다. 비바람을 이기기 위해 두꺼운 잎에 털이 따뜻하게 덮여 있다. 푸른 독도가 된 것은 사회단체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여러 단체에서 10000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500여그루의 나무를 살리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절벽에 자일을 타고 흙을 품에 안고 나무를 심은 것이다. 이런 노력은 비단 섬을 예쁘게 꾸미려고만 한 것이 아니다. 해양법상 섬은 암초와 인공섬, 자연섬으로 구분된다. 영토의 경계가 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연섬뿐이다. 자연섬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식수가 있어야 하고 나무가 자라야 하고 한 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
독도 민간인 1호 최종덕씨
암초로 규정된 독도를 최종덕씨는 호적을 독도로 옮기고, 70도의 가파른 바위섬 꼭대기에 식수가 나오는 것을 알고 시멘트 계단을 설치하는 등은 모두 후대인의 편의를 위해 싸워 얻은 것이다. 아쉽게도 최씨는 이미 1987년 생을 마쳤다. 그 분의 희생을 생각하니 독도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독도경비대
늠름한 독도경비대가 있으니 안심이 된다. 캄캄한 밤에도, 비바람과 태풍이 몰아쳐도 경비대는 이 땅을 지킨다. 그들이 이 땅을 지키기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가끔 애인이라도 보고 싶으면 바다에다 실컷 외치며 외로움을 달랜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우리의 소원'을 목청껏 불렀다. 그리고 만세 삼창을 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우리 순수 혈통인 삽살개 역시 독도를 지키고 있다. 계급은 일경이다. 다른 독도 경비대원 2개월에 한 번씩 울릉도대원과 교체되는데, 강아지는 죽을 때까지 독도를 지킬 것이다.
선착장에 앉아 그저 돌산을 바라볼 뿐이다. 왠지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다.
독도를 떠나며
이제 독도를 떠나야 한다. 비록 3시간여 짧은 만남이지만 경비대원들과 정이 들었다. 캄캄한 밤에는 별을 친구 삼아 얘기하고 외로울 때는 우체통에 속내를 털어놓지만 아무래도 민간인이 찾아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경비대들의 절도 있는 경례를 보니 안심이 든다. 독도를 바라본다. 그리운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젠 하염없이 별과 바다를 보고 살아야 한다. 어떤 군인은 손으로 하트까지 만들어 보낸다. 어쩔 수 없는 대한의 젊은이다. 점점 섬이 멀어진다.
독도 잘 지켜주세요.
동해 잘 지켜주세요.
독도를 한 바퀴 돌았다. 천혜의 비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한다. 뻥 뚫린 동굴이 독도가 살아 있음을 말해준다. 큰 생명체의 숨구멍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독도가 큰 동물원이었다면 이곳은 바로 코끼리였을 거야. 저 뒤에 분화구가 있다. 직접 독도 땅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확인할 수 없으리라. 독도의 생명력은 바로 그 곳에서 분출되고 있음을.
독도가 우리 땅이란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바위다. 저 바위 사이의 공간을 보라. 우리나라 지도가 보이는가?
물개바위
멀리서 볼 때는 어선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가보니 바위다. 일명 물개바위다. 한때 물개가 떼를 지어 이곳에 휴식을 취했다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이 하도 남획을 해서 거의 남아 남지 않다고 한다. 통일되는 날, 물개가 다시 나타나 덩실덩실 춤을 추겠지.
1948년에는 B29 폭격기가 이 바위를 어선으로 착각하고 폭탄을 떨어뜨려 어민 20명이 죽은 기록도 있다. 그만큼 독도는 슬픔을 지닌 섬이다.
독도와 헤어지며
소중한 피붙이를 이곳에 떼어놓고 가는 기분이다. 독도는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독도 역시 대한민국 자식이다. 고아처럼 떠돌아다니게 하지 말고 어머님 품에 편안히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몫은 역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울기만 하는 동해여
통곡하는 외딴섬 독도여
어느 때 가면
어느 때 되면
그 통곡 딱 그치고
노래하고 춤추겠는가?
부러진 팔을 무릅쓰고
어제 성인봉 올랐을 때 미끄러져 팔이 부러진 회원, 의사가 아침 첫배로 뭍에 가서 수술하라고 했지만 피식 웃으며 답변을 대신한다. 그리고 포항행 배가 아닌 독도행 배에 올랐다. 부러진 팔로 밥을 먹고, 사진까지 찍었다. 몸은 피곤하고 지쳤어도 태극기가 그 고통을 덜어 주었으리라고 확신한다.
독도가 무엇이길래 이다지도 사람을 미치게 만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