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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다듬기' 제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어(상) 교과서 159쪽
ⓒ 김영진
"아버님, 올해도 건강하세요."

제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어(상) 교과서 159쪽에 적혀 있는 문장이다. 대한민국의 국정 교과서는 제시한 이 문장을 어법에 맞게 고쳐 보라고 요구한다.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고쳐 쓰라고 할까?

'건강하세요'는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다. 형용사 어간에는 명령형 어미나 청유형 어미를 붙일 수 없다. 형용사인 '건강하다'의 명령형 '건강하세요'나 청유형 '건강합시다'는 쓸 수 없는 말이다. '아름다우세요'나 '예쁘십시오' 따위의 명령형 표현이나 '아름다웁시다', '예쁩시다' 같은 청유형 표현이 어색한 것도 이들 낱말의 품사가 형용사이기 때문이다. '행복하세요'나 '행복합시다' 따위의 말도 잘못된 표현이다. '행복하다'도 형용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건강하세요'를 어떻게 고쳐 써야 할까.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하면 된다. '건강하게 지내세요' 또는 '건강하게 사세요'라는 표현도 자연스럽다.

지난 8월 23일치 <한겨레>에 '"건강하세요" 캠페인'이라는 글이 실렸다. 동신대 겸임교수 정웅림씨가 쓴 '독자 칼럼'이었다. 만나는 사람들과 "건강하세요" 하면서 인사를 나누자고 제안하는 글이다. 이 분은 등산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건강하세요"하는 인사말을 나누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이 캠페인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정웅림씨는 <한겨레>에 실었던 자신의 글과 같은 글을 '산에 오르며 "건강하세요"'로 제목만 바꾸어 <조선일보>(8. 29)에도 싣고 있다. <한겨레>에서 <조선일보>까지 넘나들며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안창호 선생이 펼치려던 '빙그레 웃는 스마일 운동'이 일제에 의해 무산되었다는 말까지 해가며 "건강하세요" 인사말 나누기 캠페인을 하려는 정웅림씨의 선의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 인사말이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라는 사실을 정웅림씨가 모르고서 이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아 이 글을 통해 알려 드린다. 정웅림씨의 글을 실은 두 신문의 교열부 기자들도 '건강하세요'가 잘못된 말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정웅림씨의 '선의'만을 생각하고 글을 실은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쓰고 있는 말이라고 해서 잘못된 말을 퍼뜨리는 운동까지 펼칠 일은 아니다. '쓰레기 분리 수거'라는 말, 관(官)이 나서서 캠페인을 벌여서 이제 흔하게 쓰는 말이 되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에게 그 쓰레기를 '수거'하라고 강요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외치는 일이 흔해졌다고 이런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써대면 안 되잖겠는가.

정웅림씨께 부탁한다. "건강하세요" 캠페인 대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인사 나누기 운동을 해 보시기 바란다. "아버님, 올해도 건강하세요"라는 문장을 바르게 고치라는 교과서의 물음에 답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이 정웅림씨의 "건강하세요"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한겨레(8월 23일)>에 실린 정웅림 씨의 글]
[독자 칼럼]“건강하세요” 캠페인

“건강하세요.” 나는 등산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 인사에 각양각색의 답례를 해준다. 단순하게 “예” 하는 사람도 있고,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함께 건강합시다”며 화답하는 이들도 있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아무런 답례가 없는 사람도 있지만 서운하지 않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46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올해 3월부터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한 끝에 건강을 위해 별다른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집 근처에 있는 당산봉이나 낙지봉을 오른다.

그렇게 높지 않은 평범한 산이다. 소나무가 우거진 등산로를 따라 각종 운동기구를 이용하면서 매일 오전과 오후 각각 두시간 정도씩 오르고 있다. 일요일에는 무등산에 오르기도 한다. 생각보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다섯명 중 한명은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비중이 60% 정도는 될 것 같다.

옛날에는 취미가 무어냐고 물으면 50% 이상이 ‘독서’라고 답했는데, 이제는 ‘등산’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모두가 건강을 위해 노력한 덕에 우리나라 남녀 평균수명이 70살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등산이 건강에 좋은 보약이 되는 것 같다.

등산을 하면서 캠페인을 벌이듯 “건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지만 교육은 역시 쉬운 것이 아닌 것 같다.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착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듯 하다. 그래도 이젠 많은 사람들한테서 먼저 인사를 받기도 한다.

19세기 후반에 태어난 민족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우리 민족은 “숨은 정은 많은데 표현이 없는 민족이 되어버렸다”고 하면서 ‘빙그레 웃는 스마일 운동’을 전개했지만, 일본의 압력으로 무산되어 버렸다.

지난 제헌절에는 서울 북한산 백운대를 초등학교 동기생 3명과 함께 오르면서 수많은 등산객들에게 “건강하세요” 인사하기 캠페인을 벌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몸무게가 81㎏ 나가던 나는 5개월 동안 등산하면서 “건강하세요” 인사하기 캠페인을 벌여 체중을 76㎏으로 줄였다. 나에게 좋은 시간들이 된 것이다. 매곡 뒷산, 무등산, 북한산 등 그 어느 산을 오를 때라도 나의 “건강하세요” 인사하기 캠페인은 계속될 것이다. / 정웅림/동신대 겸임교수

[<조선일보(8월 29일)>에 실린 정웅림 씨의 글]
[내생각은] 산에 오르며 "건강하세요"

“건강하세요” “건강들 하세요”라는 인사말은 내가 등산할 때 사람들에게 하는 캠페인성 인사말이다. 나의 이러한 인사말에 사람들은 단순 대답인 “예”를 비롯,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함께 건강합시다” 등 각양각색으로 답례한다.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런 답례가 없어도 서운할 이유가 없다. 애당초 반대급부는 생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에서 46년간의 교직생활을 끝낸 나는 올해 3월부터 시간이 많아졌다.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건강을 위해 매일 집 근처 매곡동 뒷산의 당산봉 또는 낙지봉을 오르기로 했다. 그렇게 높지 않은 평범한 산이지만 많은 소나무숲으로 우거진 등산로를 따라 각종 운동기구도 설치돼 있어 매일 오전과 오후 각각 2시간씩 오르고, 일요일에는 무등산을 오르기로 했다.

요즘 등산인구가 생각보다 많이 늘어났다. 5명 중 1명은 등산을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취미를 물으면 50% 이상이 독서였는데, 이제는 등산으로 바뀐 듯하다. 이 모두가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고, 등산이 건강에 좋은 보약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산 인사말을 “건강하세요”로 마음 먹고 캠페인을 펼쳐오고 있지만, 교육은 역시 쉬운 게 아니다.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정착되려면 아직도 요원하다. 그래도 이젠 많은 사람들로부터 먼저 인사를 받기도 한다. 민족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은 우리 민족은 숨은 정은 많은데 표현이 없다며 ‘빙그레 웃는 스마일운동’을 전개했지만, 일본의 압력으로 무산돼 버렸다.

지난 제헌절에는 서울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면서 수많은 등산객에게 “건강하세요” 캠페인을 벌여 좋은 이미지를 북한산에 남기기도 했다. 81㎏이었던 몸무게가 5개월 동안 “건강하세요” 캠페인 결과 76㎏으로 줄어 정년퇴임이 정말 좋은 기회였구나 생각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정년퇴임을 가리켜 ‘Retire(타이어를 교체)’라고 하는 참뜻을 알게 됐다. 매곡 뒷산, 무등산, 북한산 등 그 어느 산을 오를 때라도 나의 “건강하세요” 캠페인은 지속될 것이다. / 정웅림/동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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