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
ⓒ 오마이뉴스 유창재
"멋진 법원에서 멋진 판사를 하고 싶었다."

지난 8월 13일 '연공서열 대법관 인선'에 이의를 제기하고 항의성 사표를 제출하면서 '사법파동'의 불씨를 당겼던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의 고별사다. 대법원은 1일 박 부장판사의 사표를 공식 수리했다.

대법원은 수차례 박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했었지만 박 부장판사의 의사는 확고했다. 그만큼 '사법개혁'을 바라는 간절한 의지를 담고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박 부장판사는 대법원의 사표수리 소식에 "담담하다"면서 사법개혁에 대해 "이제부터 출발"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아있는 다른 판사나 후배 판사들에게 좀더 마음속의 목소리를 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아울러 국민들에게 애정과 이해를 갖고 법원이 개혁하는데 함께 머리를 맞대달라고 간절한 부탁의 말을 남겼다.

다음은 박시환 부장판사와의 일문일답.

- 오늘 사표가 수리됐는데, 소감이라 말하기가 적절치 않지만 느낌이 어떠한가.
"사표 수리가 된 것에 대해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는 것과 다른 것 같다. 어찌보면 그런 느낌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뭐가 뭔지 담담하다."

- 사표를 제출하고 그동안 무슨 일을 했나.
"사표를 제출한 이후에 재판을 맡아 판결을 내리는 것은 부적절하기에 재판을 맡지는 않았다. 별다른 일은 없었다. 기록을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처럼 기자들에게 연락이 오면 답하면서….(웃음)"

- '사법개혁' 파문이 현재로선 일단락 된 것 같다. 이번 사법개혁 파동이 어땠다고 보나. 마무리 된 것인가.
"이제부터 출발이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사법개혁에 대해 논의하고 실제적인 일들에 대해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제 생각대로 느끼는 것에 대해 해온 것이기에 그 이상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다."

- 다른 판사나 후배 판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부분 다른) 판사들과 마찬가지로 아쉬웠던 것들이 재판제도나 운영 등에 대해서다. 이에 대해 (다른 판사들도) 관심이 많고 문제의식과 나름대로 생각들을 갖고있다. 하지만 이들은 개인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는 하는데, 좀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이야기를 잘 못한다. 그것을 좀더 공식적으로 이야기했으면 한다.

(법원) 내부에서 좀더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많이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래야 위(대법원)에서 그것을 듣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나. 부담이 되고 조심스러울지 몰라도 말을 하지 않으니까 판사들의 생각을 모르는 것이다."

- 사법파동을 지켜본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나가는 입장에서 무슨 말을 올리겠나. 단지 국민들도 법관의 문제점을 보고 논의하는데 있어 (이번 일이)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법원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는데 (이번처럼) 충격과 무리, 파장 없이 할 수 없었던 점에서 아쉽다. 법원을 아껴주신 분들에게 여러 파장을 남긴 것이 아쉽다.

대법원에서 (사법개혁의) 장을 열어준다니까 쉽게 쉽게 (개혁에) 이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좀더 법원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보아주셨으면 하고, 법원의 속사정과 주어진 실정 등을 충분한 이해하는 바탕에서 (해결책을) 같이 찾는 입장을 취해주셨으면 한다.

사실 (법원의) 실정을 잘 모르고 비판을 하거나, 실정에 안맞는 제안과 비판으로 문제의 핵심을 잘 못잡아 개혁을 요구할 수도 있다. 좀더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다소 아쉽고 제 기능을 못하는 점이 있더라도 미워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법원은)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할 기관이다. 애정과 이해를 갖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주셨으면 한다."

- 앞으로의 '사법개혁'을 어떻게 생각하나.
"아직은 '미지수'다. 이번 (대법원 파동이) 마무리 되면서 대법원장님이 보낸 메일을 보면, (대법원장이) 진위를 가지고 마음속에 가진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사법개혁을) 기대해 볼만하다.

하지만 막상 진행되는 과정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세력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대법원의 의지가 약화되고 흐지부지될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앞으로 두고 보면서 대법관과 법관, 국민 모두가 법원의 변화에 대해 진지한 생각과 마음으로 인내를 가지고 진행해야 할 것이다. 너무 다급하게 (변화를) 요구하지 말고, 진지한 열의가 식어버리지 않도록 긴 호흡으로 노력해야 한다. 사법개혁은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어떤 모양으로 결론이 날지는 미정인 것이다."

"원칙과 소신 뚜렷한 인권판사"
박시환 판사는 누구인가

53년 생인 박시환 판사는 서울지방법원 사시 21회로 18년간 판사로 근무해왔다. 헌법재판관·대법관 임명 제청을 앞두고, 그동안 '대법관·헌법재판관 시민추천운동'을 전개해 온 '시민추천위원회'는 지난 8월 1일 시민추천후보 6명을 발표하면서 박시환 판사를 그중 1명으로 추천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박 판사는 인신보호에 관한 일련의 판결에서 볼 수 있듯이 원칙에 입각한 뚜렷한 소신이 돋보인다. 특히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권리를 박탈당한 피고인을 직권으로 석방하는 등 인권의식이 투철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종교를 이유로 한 병역거부'문제에서도 현행 병역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하여 종교적 소수자의 입장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법원 인사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다수의 현직 판사들과 함께 건의문을 작성하여 대법원장에게 제출하는 등 법원개혁에 관한 소신도 남다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 개인적인 앞으로의 계획은?
"특별한 계획은 아직 없다. 주위에서 법원개혁을 위해 공적인 역할을 해주고 목소리를 내달라고 하는데, 그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내가 가진) 생각을 다 이야기했고, 어찌보면 분수 이상으로 과도한 방식으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또 법원 안팎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나가는 마당에 또 나가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도 도리가 아니기에 조용히 물러나있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니까 돈을 벌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는데, 활발히 활동해서 '돈버는 변호사'를 하는 것도 맞지 않다. 조용히 얌전히 있어야 하지 않겠나."

'멋진 판사'의 꿈을 접은 박시환 부장판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나는 '돈 버는 변호사'는 못될 것이기에 앞으로의 생계를 걱정해야죠"란 말은 이번 '대법원 파동'의 하나의 상처로써 여운처럼 전해졌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