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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 추기경
ⓒ 연합뉴스
저는 김수환 추기경님과 직접 대면한 일은 없으나 평소에 존경하여 마지 않았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교계의 지도자로서 인간 존엄성에 대한 깊은 신념을 바탕으로 나라와 나라 사이 남과 북 그리고 우리의 사회 구성원 사이의 화해와 사랑을 강조해오셨고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하시어 줄곧 큰 감동을 불러일으켜 오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지난 8월 28일 추기경님께서 인터넷신문 <업코리아> 창간에 즈음한 발행인과의 회견에서 보여주신 남북관계에 관한 견해는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무시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추기경님의 한 마디가 커다란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현실에서 이대로 지나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감히 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김정일 타도를 외치는 사람들을 흔히 우익 또는 극우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은 적절하지 않다고 평소에 주장해 왔습니다. 북진통일파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북진통일파의 한 사람은 최근 KBS 심야토론에서 추기경님이 그 기자회견에서 '햇볕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신 것을 마치 '실패'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확대·해석하면서 우리가 6·15선언으로 북한의 전술에 말려들었으니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내용의 말을 한 바 있습니다.

우선 이 점과 관련하여 저는 '햇볕정책'이란 말 자체가 온당치 않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습니다. 이 말에는 남에서 훈풍을 불어넣어 북을 무장해제시킨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데 6·15 공동선언의 내용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북이 현 체제를 서로 존중하고 상대방을 무너뜨릴 생각을 버리고, 같은 민족으로서 서로 형제 같이 교류 협력하여 공존공영하자는 것이 6·15 선언의 기본정신입니다. 그런데 햇볕정책이란 말은 궁극적으로 상대방을 무장해제시켜 무너뜨릴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햇볕정책'은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과는 배치되는 개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자세와 체제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이(6·15선언)를 계기로 민족공조를 앞세우며 남한에 '남남' 분열을 유발시키고 있다"고 비판하셨습니다. 또 "남북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고 화해와 협력의 길을 계속 모색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만 "여기에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이념과 국민적 공감이 함께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의 이런 발언은 남한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 이외에 어떤 통일방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북진통일파의 주장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런 주장은 북한에 대한 화해와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하신 점에서 김정일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북진통일파의 주장과는 약간 다른 것 같으면서도 그들의 주장과 거의 같은 이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 때문에 북진통일파들은 추기경님 말씀에 매우 고무되어 있는 것입니다.

추기경님께서는 북한 체제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을 문제삼고 계시는데 이는 분명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서 벗어나는 말씀이라는 점을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6·15 공동선언은 남북이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존중하고 공존공영할 것을 명문으로 약속하고 있기 때문에 6·15 선언의 정신을 존중한다면 북한에 대해 체제변화를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북한의 체제는 그들 스스로 알아서 결정할 문제임을 우리가 6·15 선언으로 약속을 한 이상 체제변화가 없다고 해서 이것을 문제삼는다는 것은 약속위반이 되는 것입니다.

위 문제와 관련하여 추기경님께서는 '어떤 통일'인가를 묻지 않는 '몰(沒)체제적' 통일론은 분명하게 반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통일은 반드시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우 위험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것만이 유일한 통일방안이라고 보는 사고방식, 즉 '북진통일파의 사고방식'이며 북한과의 공존공영을 전제로 하여 합의된 6·15선언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추기경님께서는 "햇볕정책으로 남북한 사이에 진정한 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졌는지 우리 모두 심각하게 성찰해 보아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그러나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반세기 이상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살아 온 남북관계가 6·15 선언 하나로 진정한 화해협력관계로 돌변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과욕입니다.

더욱이 남북간의 화해협력이 지지부진하게 된 데에는 남한의 실질적 지배세력인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최근에 미국 카터 전 대통령이 무조건 북한의 핵포기를 압박하는 부시 대통령의 정책이 잘못이라고 지적한 사실에 의해서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에 가세하여 6·15 선언 실현을 가로막아 온 한국 내의 극우 북진통일파의 방해공작 등이 남북의 교류협력을 가로막아 왔다고 보는 것이 공정한 평가라고 생각됩니다.

추기경님도 지적하셨습니다만, 확실히 북한의 대응은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만 6·15 공동선언에서 약속한 민족공조원칙에는 나름대로 성의를 가지고 대해 왔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한은 말만이라도 계속 6·15 선언의 이행을 강조해 왔는데 남쪽에서는 이를 무효화하고 김정일 타도를 외치는 북진통일파의 영향력 아래 있는 거대 야당이 줄곧 정부의 발목을 잡아 왔습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6·15 선언의 이행을 가로막아 온 것이 남쪽인지 북쪽인지를 편견 없이 공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추기경님은 불만을 토로하셨지만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6·15 선언 이후 실로 엄청난 변화와 진전을 이룩했습니다. 금강산 육로관광 길이 열렸고, 경의선 철로의 연결이라는 감격적인 일이 57년만에 실현되었습니다. 개성공단이 착공되었고 남북으로 흩어져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수많은 가족들이 상봉하였습니다. 우리가 꿈에서나 기대했던 기적적인 일들이 연달아 실현되어 왔습니다. 미국과 남한의 북진통일파들이 걸림돌을 놓지 않았다면, 남북의 교류협력은 현재보다 훨씬 급물살을 타고 실현되었을 것입니다.

추기경님께서는 6·15 공동선언의 부정적 측면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셨습니다만,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면서 항시 전쟁위협 속에 시달려 온 6·15 공동선언 이전에 비하면, 남북간의 전쟁위험이 크게 감소된 것만으로도 크나큰 성과가 아니겠습니까? 남북의 대립 상극을 이용하여 주변 강대국들이 자기들의 이익 챙기기에 골몰해 온 이제까지의 현실을 극복하고 6·15 선언으로 다른 나라들의 비웃음을 면하게 된 것만도 큰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추기경님이 `햇볕정책'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시자 이 땅의 극우적 호전적 북진통일파들은 그것 보라는 듯이 추기경님의 말씀을 아전인수식으로 인용하고 나섰습니다. 이 땅의 북진통일파들은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마저도 빨갱이로 몰면서 정권을 타도해야 한다고 소리높이 외치고 있습니다. 쿠데타에 맛을 붙여 온 이들인지라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판국입니다. 이들은 또 다시 헌정파괴조차 공공연히 떠들고 있습니다. 추기경님의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 본의 아니게 이들 극우 북진통일파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북한이 6·15 공동선언과 민족공조를 앞세우며 '남남'분열을 유발"시키고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만, 분열을 유발시키고 있는 것은 남한의 극우적 북진통일파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모처럼 이룩한 6·15 선언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김정일정권 타도를 외치면서 미국의 성조기를 앞세우는 사대주의 근성을 노골적으로 들어내고, 북한 인공기의 화형식을 막으려고 한 젊은 경관의 머리를 구타하여 피로 물들게 한 폭력행위들,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몰지각한 언론기관들이 있었기 때문에, 남남 갈등이 이처럼 증폭되었다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남남' 갈등은 사실 북이 아니라 남쪽의 이들 극우 성향의 북진통일파들이 키우고 있다고 보는 것이 공정한 판단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헌법 전문에는 분명히 평화통일과 자유민주주체제 수호가 국시임을 못박아 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헌정파괴를 주장하고 자기 의견에 따르지 않는다고 심지어 경찰관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북진통일파들의 폭거는 법으로 엄단해야 할 대상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맨 주먹으로 자기의 의사표시를 한 한총련 학생들에게보다는 바로 이들 극우적 폭력배에 대해서 적용되는 것이 공정한 일이 아니냐고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북진통일파들은 흔히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북한 인민을 김정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들을 수수방관해온 사람들입니다. 자기 처를 죽인 살인범을 북한간첩 잡아낸 애국자로 치장한 '수지 김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이 크다면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북한 인민의 생존을 위해 우선 식량원조에 발벗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북진통일파들은 '퍼주기' 운운하면서 이를 가로막아 왔습니다. 북을 무력으로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또 다시 전쟁의 먹구름을 몰아오고자 하는 북진통일파들에게 인권을 운운할 자격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북한은 지난 달 말에 북경 6자회담에서 체제를 보장하고 핵으로 위협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손실보전을 하면,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런 북한에 대해 미국은 무조건 핵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종전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구체적 대응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아무 보장도 받지 않고 우선 핵을 포기할 나라는 이 세상에는 없을 것입니다. 이라크와 같은 운명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당에 무조건 북한 핵을 제거하라고 억지 주장을 펴면서 핵전쟁조차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태도는 아무리 보아도 합리성을 인정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시에 반대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이 우리 민족이 사는 방도입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우리 민족은 사실상 멸망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진통일파들은 미국 성조기를 흔들면서 무조건 북한 핵의 포기를 주장하고 은근히 미국이 북을 핵으로 공격할 것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민족의 생존은 아랑곳하지 않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 옛날의 군사독재시대만을 그리워하는 북진통일파들에게 어찌 인권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애국애족과 참다운 인간애에서 우러나온 추기경님의 충정이 본의 아니게 이들 무지막지한 북진통일파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현실이 몹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부디 사태를 정확하게 편견 없이 바라보고 분석하시어 엉뚱하게 몰지각한 북진통일파들에게 이용당하시는 일이 없도록 발언에 신중을 기해 주시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인터뷰 전문
<업코리아> 창간 기념 인터뷰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격동의 한국 현대사의 고비 고비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는데 큰 몫을 해 왔다. 그 동안 그는 한결같이 인간 존엄성에 대한 깊은 신념을 바탕으로, 나라와 나라간에, 남과 북의 우리 민족간에, 그리고 이 땅의 사회구성원간의 화해와 협력을 강조해 왔다.

이 시대의 원로로서 김수환 추기경은 upkorea 창간을 크게 반기며, upkorea의 안병영 대표를 만나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주요 쟁점에 대해 폭넓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의 말씀에는 절실한 인간사랑, 나라사랑과 구도자의 심오한 사색과 고뇌가 담겨 있었다.

1. 양극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서 바른 공론을 세우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upkorea.net이 창간되었습니다. 저희들에게 한마디 격려의 말씀을 주십시오.

- 새 인터넷 신문 upkorea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이념적 양극화와 지역간, 세대간, 계층간 의 갈등 등으로 온통 핵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여러분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뜻을 모으고 힘을 합친 것은 실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사회에 대한 upkorea의 자정(自淨) 역할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저는 앞장을 선 여러분의 면면을 보면서, 이 분들은 이 나라, 이 겨레가 진리와 정의, 사랑과 자유의 나라로 발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같이 고매한 애국, 애족심, 자유와 평화정신에 감사하며 하느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하느님이 당신 빛을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2.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 국론의 분열이 매우 심각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이 바로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가장 치열하게 표출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햇볕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시는 지요.

- 남북의 긴장대치 내지 적대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변경시켜 한반도의 평화의 기틀을 놓겠다는 취지로 이해할 때, 원론적으로 그것을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햇볕정책으로 남북한 사이에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우리 모두 이 시점에서 심각하게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자세와 체제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히려 북한은 이를 계기로 민족공조를 앞세우며, 남한에 친북, 반북의 분열, 즉 ‘남남’분열을 유발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히 지적되어야 할 문제점입니다.

분명 우리는 남북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고 이를 위해 화해와 협력의 길을 계속 모색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 이념과 국민적 공감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통일지상주의를 경계하며, ‘어떤 통일’인가를 묻지 않는 ‘몰(沒)체제적’ 통일론은 분명하게 반대합니다.

남북화해의 가장 큰 열쇠는 신뢰형성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쪽에서도 북을 믿을 수 있도록 진실성을 보여야 합니다. 따라서 남북의 만남의 마당을 북의 선전장, 북의 입지 강화의 자리로 삼는 것을 지양해야 합니다. 진실이 바탕이 될 때, 상호간의 신뢰가 구축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세계화를 둘러 싼 논쟁도 만만치 않습니다. 세계화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또 세계화와 민족적 정체성이 어떻게 조화를 해야 할까요.

- 세계화는 우리 시대의 불가항력적 물결입니다. 우리는 이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이를 거스른다는 것은 다시금 우리 자신이 나라를 조선조 말에 쇄국주의에 빠뜨렸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쇄국적 의미의 민족주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북핵문제를 두고 이른바 민족공조를 지나치게 앞세우는 데도 이런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개방사회요, 개방사회는 세계를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 자신들 모두가 세계 속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닦고, 키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존엄성 존중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민족, 인종, 색깔 등의 차별을 넘어 모든 인간을 인간으로 소중이 여길 줄 알아야 하며, 이웃 나라들과 친분을 맺고 교류. 협력하며, 세계 어느 나라와도 넓고 트인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는 이 땅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 외국 노동자들을 우리 형제처럼 사랑하고 보살펴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세계화 속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더 발견하고 더 빛낼 수 있을 것이며, 경제적으로도 더욱 힘차게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계화는 빛과 더불어 그림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화, 특히 경제적 세계화는 자칫 세계를 무한경쟁의 싸움터로 만들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화의 성과가 소수에게 독점되지 않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질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아울러 세계화 과정에서 뒤쳐진 사람들에게 국제적으로, 국가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보다 따듯한 도움과 보살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4. 추기경님께서는 다음 세대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특히 깊은 관심을 가져 오셨습니다. 항상 이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셨고, 때로는 우려를 하셨고, 그리고 때로는 준열하게 꾸짖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요즈음 젊은 세대와 그들이 연출하는 세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젊은이들은 연령적으로 그들이 내일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요, 희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인간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의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리의 인간, 정의의 인간, 사랑의 인간이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넓고 민족과 국가를 위할 줄 알고 온 세계를 품을 줄 알기를 빕니다.그런데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자유와 의무에 대한 책임의식이 희박하고 쾌락주의에 빠져있지 않나 염려됩니다. 인터넷 게임이나 음란물에 중독 된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 걱정이 됩니다.

소수라고 믿으나 배타적 민족주의에서인지, 일부 젊은이들이 극단적으로 반미, 친북 경향을 보이는 것은 저의 마음을 아주 어둡게 만듭니다. 특히 며칠 전 한총련 일부 학생들이 미군 사격훈련장 기습 진입한 것은 크게 잘못한 일입니다. 정부도 이들에게 유화책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분명한 선을 그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5. 노무현정부가 출범한기 다섯 달이 넘었습니다. 실제로 노무현정부가 처음 출범할 때, 우리는 기대 반(半), 우려 반(半)이었데 게 사실입니다. 요즈음 추기경님께서는 노무현정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잘 한다고 보십니까? 그냥 안도하시는 심경이십니까? 아니면 우려가 더 느셨습니까?

- 노무현 정부에 대하여 저는 아직도 불안한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는데 그 기대가 자꾸만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대통령 자신 그 특유의 소신이 확고하고 자기가 옳다고 믿고, 바로 그런 확신에서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차차 더 느끼게 되어서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개선의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제발 그의 소신이 이 나라와 민족을 그릇된 길로 이끌어 가지 않기를 빌고 있습니다. 그분이 세례를 받았는데 성당에 다니지 않는다고 제게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분이 대통령이란 막중한 짐, 나라의 운명을 지고 있는 그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분 자신도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빕니다.

6. 얼마 전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척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우리 주변에는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꽤 늘고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들에게 한마디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 남북경협에 투신하여 햇볕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너무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줍니다. 제가 햇볕정책을 성찰적 입장에서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도 그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가족도 있고 형제도 많고 친지들도 적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자신의 마음 답답함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없었는지.... 마지막 순간에 그분이 얼마나 외롭고 참담했을까를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정회장 죽음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자살의 길을 택하고 있어 정말 마음 아픕니다. 이들 모두에게 사회는 너무나 각박하고 어디도 하소연할 곳이 없을 만큼 핵분열 속에 모두가 자신만 생각하고 남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세상이 되었나 봅니다.

우리 자신 종교인들 역시 그들에게 의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이런 죽음이 결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 자신부터 여기에 책임이 없는지를 깊이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진실로 이웃을 생각할 줄 알고 이웃과 근심걱정까지도 나눌 줄 아는 마음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태어남은 우리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7. 추기경님의 요즘 근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무척 궁금할 것 같습니다. 요즈음 추기경님의 삶의 주제가 무엇인지, 또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인지 감히 여쭤보고 싶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삶의 주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 요즈음 저 자신이 이미 구세대에 속한 존재임을 하루하루 절감합니다. 이웃과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내 마음으로는 무언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하다가 가고 싶은데 말입니다.

저는 이제 참으로 기도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존재와 삶의 근원이 되시는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빛을 받아 그분과 일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만 참된 인간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함께 소외감을 날로 더 느끼는 노장세대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살며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사랑하십시오.

우리 이웃, 우리 사회, 우리 민족, 우리 나라, 세상 모든 이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자신도 삶의 기쁨을 얻어 밝아지며 우리 사회와 나라도 새롭게 활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인터넷 신문 <업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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