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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선일인 12월 19일 이회창 후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후보는 결국 낙선했고, 그 주변에서 일어났던 '세풍'은 전모가 모두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대선일인 12월 19일 이회창 후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후보는 결국 낙선했고, 그 주변에서 일어났던 '세풍'은 전모가 모두 드러나고 있다. ⓒ 마이너
기록을 보고 온몸을 휘감는 전율감을 느꼈다. 이 '경(京)-경(慶) 야합'이 성공했더라면, 나라가 30년은 후퇴할 뻔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무려 5년여를 끌다가 최근 1심 재판에서 관련자 8명이 전부 유죄를 선고받은 이른바 '세풍(稅風)' 사건의 검찰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을 검토한 결과가 그랬다.

지난 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세청을 동원해 기업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모금한 세풍 사건은 한 마디로 말해 '경기고 출신들에 의한, 경기고 출신들을 위한, 경기고 출신들의' 국기문란(國基紊亂) 사건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고'로서 한국 사회를 주물러온 경기고 출신 정치인과 공무원, 그리고 기업인들은 경기고 동문인 이회창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부산-경남(PK)의 최고 명문고인 경남고 출신의 김영삼 대통령 고교 후배들이 주축이 된 권력기관의 PK 출신 인사들이 이들과 손잡고 적극 지원했다. 이른바 '경(京)-경(慶) 야합'이었다.

'세풍 3인방'은 경기고 동기·1년 선후배 관계

지난 8월 18일 사건 발생 5년여만에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서상목 전 의원이 법정구속 되는 등 관련자 8명이 전원 유죄판결을 받은 세풍 사건의 핵심 관계자들과 이들의 범죄혐의는 다음과 같다.

· 이회성 에너지경제연구원 고문(경기고): 이회창 총재를 대신해 대선자금 모금 총괄 (필요한 경우 기업인 직접 만나고 한나라당 위해 모금 도와준 국세청 관련자들 격려)
· 서상목 한나라당 의원(경기고): 이석희 차장에게 대선자금 모금 요청하고 수금 및 관리
· 이석희 국세청 차장(경기고): 서상목·이회성의 요청을 받고 국세청 동원해 모금 주도
· 배재욱 청와대 사정비서관(경남고): 국세청 동원한 대선자금 모금 묵인 및 국세청장 격려
· 임채주 국세청장(부산고): 이석희 차장의 권유로 기업에 연락해 정치자금 수금
· 주정중 국세청 조사국장(경남고): '100대 그룹 기본사항' 책자 작성 및 일부 기업에 직접 연락해 모금
· 권영해 안기부장(경주고): 공기업에게 한나라당에 대선자금 지원토록 강요
· 김태원 한나라당 재정국장(대전고): 서상목 의원과 함께 대선자금 수금 및 관리


97년 당시 '세풍 3인방'은 서상목 한나라당 의원과 이석희 국세청 차장, 그리고 이회성 에너지경제연구원 고문이다. 서상목·이석희 두 사람은 경기고 61회(65년 졸업) 동기동창이고, 이회성씨는 경기고 60회(64년 졸업)로 이들의 1년 선배이다.

동기인 서상목-이석희 두 사람은 60년대부터 친분을 유지한 가까운 사이였고, 서상목-이회성 두 사람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함께 근무할 때인 78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1년 선후배인 이석희 차장과 이회성 고문은 학창 시절에는 잘 모르다가 90년대 초반 경기고 공무원 모임에서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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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3인방' 중 한명으로 그중에서도 핵심인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 지난 3월 19일 서울지검에 출두하고 있고, 8월 18일 결국 실형이 선고됐다.
'세풍 3인방' 중 한명으로 그중에서도 핵심인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 지난 3월 19일 서울지검에 출두하고 있고, 8월 18일 결국 실형이 선고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석희는 92년 대선 때도 대선자금 모금

세풍 사건에서 '경기고 동문의식'이 어떤 메커니즘 안에서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인물은 이석희 차장이다.

유달리 동문의식이 강한 관가(官家)의 '마당발'로 소문난 이석희 차장이 없었다면 '동문 대통령 만들기'에서 출발한 세풍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석희 차장은 고향이 부산-경남이어서 경기고 출신과 PK 인사들을 연결시켜주는 데도 핵심 역할을 했다.

이석희 차장은 92년 대선 당시 국세청 국장 시절에 김영삼·이종찬 의원 등이 나선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도 경기고 출신 기업인들을 상대로 경기고 선배인 이종찬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도록 지원한 바 있다. 본인 또한 "이종찬 후보를 지원했는데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바람에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고 얘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엄살'일 가능성이 크다. 공무원으로서 선거에 개입한 그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다행히' 김영삼 대통령과 같은 PK 출신이기 때문인지 그는 YS 정부에서 차장으로 승진해 국세청장보다 더 실세라는 평을 받았다.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측근인 서상목 의원이 본부장을 맡은 한나라당 대선기획단 기획본부는 여론조사, 선거전략, 각 본부간의 이견 및 역할 조정, 비서실과 연계한 후보에 대한 전략적 일정 조정 등을 도맡은 선임 본부였다. 서씨는 대선자금 모금과는 관계없는 기획본부장으로서 이석희 차장에게 대선자금 모금을 부탁하게 된 배경을 검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첫째로 저와 이석희는 친하고, 둘째로 이석희는 5년 전에도 대선자금을 거두는 데 관여를 하였고, 셋째는 이석희가 활동적이었으며, 넷째로는 이석희가 국세청에 근무를 하여 기업 사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석희와 대선자금 문제를 상의한 것입니다."

지난 4월 1일 서울지검에 출두하는 '세풍 3인방' 중 한명이 서상목 전 의원. 그는 결국 법정 구속됐다.
지난 4월 1일 서울지검에 출두하는 '세풍 3인방' 중 한명이 서상목 전 의원. 그는 결국 법정 구속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석희-이회성, 90년대 초반 경기고 동문 공무원 모임에서 인연

세풍을 주도한 이석희 차장과 이회성 고문이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도 90년대 초반 경기고 공무원 모임에서였다. 주로 재경직에 근무하는 경기고 공무원 모임을 통해 1년에 3∼4 차례 보직 이동이 있을 때마다 가끔 만나온 두 사람은 경기고 1년 선후배 사이여서 함께 고교를 다녔으나 서로 잘 아는 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이회창 후보가 한나라당의 대통령후보로 추대되면서부터 가까워졌다.

경기고 연극부장 출신으로 '마당발'인 이 차장은 대선자금을 모금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열성적으로 활동한 경기고 연극반인 연우회(演友會) 연말행사 때에 행사장을 방문한 이회창 후보를 안내해 참석자들에게 이 후보 지지를 요청할 정도로 '동문 대통령 만들기'에 열성이었다. 서상목 의원도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이석희가 경기고 동문 중 열심히 뛰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고 말했었다.

이석희 차장은 97년 9월 대선을 앞두고 임채주 국세청장(부산고. 서울대 졸업)에게 "경기고 동기생인 한나라당 서상목 의원으로부터 '대선자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국세청에서 대기업을 독려해 대선자금을 지원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얘기하면서 한나라당이 요청해 이미 자발적으로 자금을 낸 기업을 제외한 '특정기업' 명단을 제시했다.

그 뒤 두 사람은 100여개의 기업명단을 토대로 해서 △주력기업이 많은 5대그룹에는 10억원 △30대 그룹에는 5억원 △그룹이지만 주력기업이 사실상 1개뿐인 기업에게는 2억원 정도를 협조요청 액수로 정해 기업을 분담했다. 그러나 임 청장은 처음에는 대선자금 모금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회성과 서상목이 핵심 멤버로 활동한 이회창 후보 비선조직인 이른바 '부국팀'이 세풍을 기획한 것은 97년 9월경이다. 부국팀은 이 후보 아들 이정연씨 병역문제로 지지율이 떨어져 대선자금이 잘 걷히지 않자, 국세청을 동원해 대선자금을 거두어야 한다는 취지의 특단의 보고서를 작성해 이회창 총재에게 보고하게 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회창 후보가 97년 9월 27일 대통령(YS)을 독대할 때 당의 자금사정에 대해 말씀드리고 국세청과 안기부로 하여금 신한국당에 협조토록 하여달라는 말씀을 꼭 드려야 한다고 돼 있다.

이회성씨는 검찰에서 부국팀 보고서에 대한 검사의 신문에 진술을 거부했다.

문 "이회창 후보는 97년 9월 27일 대통령 독대시 대통령께 국세청과 안기부의 협조를 부탁드렸는가요."
답 "진술을 거부합니다."

문 "이 후보가 위와 같은 부탁을 하였으나 대통령이 엄정중립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에 청와대 사정비서관인 배재욱으로 하여금 임채주 청장에게 신한국당의 대선자금 모금에 협조할 것을 당부하도록 한 것이 아닌가요."
답 "진술을 거부하겠습니다."


경기고·PK 출신 이석희가 '경기고-경남고 야합' 다리 역할

'세풍3인방' 중 한명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동생 이회성씨. 그에게도 실형이 선고됐다.
'세풍3인방' 중 한명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동생 이회성씨. 그에게도 실형이 선고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YS는 이회창 후보의 대선자금 모금 지원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안기부 등 권력기관에 포진해 있으면서 한나라당측과 선을 대고서 'DJ 비자금 의혹' 폭로, DJ를 음해하는 오익제 편지 공개 등으로 이미 선거에 한쪽 발을 깊숙이 담근 YS의 경남고 직계후배들과 범PK 인사들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특히 YS 경남고 직계 후배들인 배재욱 사정비서관·박일룡 안기부 차장·정형근 한나라당 의원 3인은 대선기간에 조찬모임을 갖고 선거판세를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면서, 노골적으로 여당 편을 들어 선거에 개입했다. 이들 '경남고 3인방'을 경기고 인맥과 연결시킨 사람은 경기고·PK출신의 마당발 이석희 차장이었다.

우선 이석희 차장은 같은 PK 출신으로 대통령의 직계 후배인 배재욱 청와대 사정비서관(경남고. 서울대 졸업)이 임 청장을 만나게 했다. 이 자리에서 임 청장은 배재욱 비서관이 "대통령(YS)이 어떻게 하였든지간에 이회창 후보가 여당후보이니 그를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 말을 듣고서, 이를 대선자금 모금에 협조하여 달라고 부탁하는 취지로 받아들이게 된다. 임 청장은 배재욱 사정비서관을 만나기 전까지는 SK그룹에 대해서만 자금 지원을 요청할 만큼 소극적이었다.

이석희 차장은 또 97년 10월경에 임 청장에게 박일룡 안기부 차장(경남고. 서울대 졸업) 이야기를 하면서 "안기부가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건네, 안기부도 이회창 후보를 위해 활동을 시작했으니 임 청장도 모금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한때 '세풍 배후는 YS 진영'이라는 설도 있었으나, 이는 YS의 엄정중립 지시를 어긴 PK 인사들의 '권력 의지'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97년 11월 임채주 청장은 이석희 차장의 소개로 이회성씨를 서울 시청앞 P호텔 객실에서 만나 "수고한다"는 격려를 받게 된다. 또 임 청장은 97년 12월 초순경에 이회창 후보로부터 "안녕하십니까, 수고하십니다, 계속 열심히 해주십시오"라는 격려전화를 받게 된다. 임 청장은 격려전화라고 생각한 이유를 검찰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회창 후보로부터 전화가 오기 전 어느 날 이석희가 저에게 이 후보가 한번쯤 격려를 해줄 만도 한데 참 차가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고, 이석희는 한나라당 대선캠프에 적극 참여하여 활동하는 입장이어서 이석희가 어떤 방법으로든 이회창 총재에게 저를 격려해주도록 건의하여 위와 같은 격려전화가 온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경기고 동문이 무료제공한 호텔 스위트룸에서 동문 기업인들 만나 수금

이석희 차장은 97년 10월부터 12월까지 중간벽에 문이 설치된 특수한 구조인 롯데호텔 본관 1510호와 1512호를 이회성씨와 함께 사용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선자금 모금활동을 벌였다. 선거일이 가까이 올수록 이씨는 국세청에는 출근 도장만 찍고 호텔에서 '본업'인 모금활동에 몰두했다. 물론 방값은 공짜였다. 당시 롯데호텔에는 이회창 후보의 공식 캠프도 차려져 있었다.

이밖에도 국세청에서 가까운 시청 부근의 플라자호텔과 뉴서울호텔이 이석희 차장이 공짜로 사용한 대선자금 모금 및 수금 캠프였다. 특히 이 차장은 97년 10월부터 12월 말까지 대선 기간 내내 거의 매주 토요일 오후마다 뉴서울호텔의 최고급 객실인 스위트룸을 제공받아 휴식 취하거나 은밀하게 사람을 만났다.

서대권 뉴서울호텔 사장은 이 차장의 경기고 1년 후배(62회)였다. 서 사장은 객실 2개를 비워놓고 종업원들에게 '백병원 이 박사가 방을 달라고 한다'는 연락이 오면 늘 방을 제공토록 지시해 이 차장이 비밀리에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방값은 '공짜'였다. 다음은 서 사장의 검찰 진술이다.

"당시 국세청 차장이면서 저의 고교 1년 선배로서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계산을 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석희 차장은 경기고 동문이 무료로 제공한 아늑한 스위트룸에서, 역시 어느 대기업이든 오너가 아니더라도 오너와 바로 통하는 주요 포스트에 포진해 있는 동문 기업인들에게 전화를 해, 이들과 객실에서 만나 '상담'하거나 호텔 지하 주차장 같은 데서 은밀히 돈을 수금했다. 주정중 국세청 조사국장이 작성한 '100대 그룹 기본사항'과 경기고 출신 경제인 모임인 '경경회'(京經會)의 회원록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치부책'이었다.

이회성, 경기고 동기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에게서 경기고 정문 앞에서 30억원 수금

지난 8월 13일 국회 긴급현안질의를 하고 있는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 정 의원은 97년 당시 배재욱 청와대 사정비서관, 박일룡 안기부 차장과 선거전략 3인 조찬회동을 가진 '경남고 3인방'중 한명이었다.
지난 8월 13일 국회 긴급현안질의를 하고 있는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 정 의원은 97년 당시 배재욱 청와대 사정비서관, 박일룡 안기부 차장과 선거전략 3인 조찬회동을 가진 '경남고 3인방'중 한명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기고 동기동창인 최상순 한화유통 사장, 경기고 1년 선배인 김상응 삼양사 회장, 경기고 2년 선배인 이익치 현대증권 사장 등이 다 그런 과정을 거쳐 선거자금을 제공했다. 이석희-서상목씨는 동문 기업인들에게는 대체로 "고등학교 대선배이신 이회창 선배를 우리 동문들이 도와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면서 평균 10억원 가량을 요구했다.

오너 대신에 정치자금을 주무른 동문 전문경영인 이익치 현대증권 사장은 영수증 없는 돈 10억원과 영수증 있는 돈 20억 등 총 30억원을, 김우중 동문이 오너인 대우그룹은 역시 동문인 윤영석 총괄회장을 통해 후원금 20억원을, 김승연 동문이 오너인 한화는 역시 동문인 최상순 한화유통 사장을 통해 18억원을 '쾌척'했다. 이들 기업들로부터 모금한 정치자금 액수는 아래 표와 같다.

이회성씨와 동기동창인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경기고 60회) 등에게는 이석희 차장뿐만 아니라 이회성씨도 직접 전화를 해 "선거자금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회창 후보와 경기고 1년 선후배이지만 대학은 동기동창인 조남욱 삼부토건 회장은 한나라당의 요청을 받고 12월 초순 서울 R호텔에서 이회성씨에게 10만원권 수표로 1억원이 든 쇼핑백을 전달했다.

동부그룹의 경우 김 회장의 동생 김택기 동부화재 사장(현 민주당 의원)이 한나라당 재정위원이어서 동생 명의로 공식후원금 5억원을 낸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김준기 회장은 추가로 정홍용 동부그룹 전무(경기고 59회)를 시켜 이회성 동문에게 비밀리에 현금 30억원을 제공했다.

두 차례에 걸쳐 2억원이 든 가방 15개를 이회성씨 승용차에 건넨 범행 장소는 공교롭게도 삼성동 경기고 정문 앞이었다. 동문 관계인 정치자금 공여자와 전달자, 그리고 수령자 3인이 모두 모교 정문 앞에서 '검은 돈' 30억원을 주고받은 것은 해외토픽 감이다. 다음은 정홍용 전무의 검찰 진술이다.

"97년 12월 초순경 김준기 회장께서 회장실로 저를 불러 갔더니 삼성동 연락사무소에 가면 김 회장의 외가친척으로 사무소 관리를 맡고 있는 김00가 돈가방 5개를 준비해 두고 있으니, 이회성이 저녁 6시쯤 연락이 오면 경기고 정문으로 가서 함께 차 트렁크에 실어주도록 지시를 하여 실어준 사실이 있고, 97년 12월 중순 경에도 위 같은 방법으로 김준기 회장의 지시를 받아 돈 가방 10개를 실어준 사실이 있습니다."

<표> 기업들로부터 모금한 정치자금 액수
<표> 기업들로부터 모금한 정치자금 액수

세풍 자금 차명 관리도 금융계 경기고 동문들 몫

이석희·서상목씨는 짝을 이뤄 모금한 대선자금을 김인주 한국종합금융 사장과 권오기 부장에게 맡겨 차명으로 관리토록 했다. 김인주 사장은 두 사람의 경기고 동기동창이고, 권오기 부장은 경기고 후배이다. 김인주 사장과 권오기 부장은 서상목 의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4차례에 걸쳐 현금 30억원을 호텔 지하주차장 등에서 '007식 수법'으로 전달받아 차명으로 관리했다.

당시는 IMF 외환위기 직전의 상황으로 모든 금융기관들이 예금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때였다. 그러니 김인주 사장은 동기생 이석희 차장과 서상목 의원의 자금관리 부탁을 마다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점점 그 액수가 늘어 차명으로 관리하기가 어렵게 되자 김 사장은 "이제 더이상 실명이 아닌 돈은 못받겠다"고 거부하게 된다.

그러자 이석희 차장은 이 돈을 다시 경기고 동기인 임00 제일은행 S지점 출장소장에게 맡긴다. 임00 소장은 금융실명거래를 위반하면서 세풍 자금 11억원을 관리해준 경위를 이렇게 진술했다.

"97년 10월 초순경 경기고등학교 출신들의 모임인 경기산우회(京畿山友會)에 참석하여 북한산에 등산하면서 당시 국세청 차장이던 이석희를 만나, 제가 '경기고 출신이면서도 아직도 지점장이 되지 못하고 출장소장으로 있으니 쫄병 좀 도와달라'고 하였더니 자기를 한번 찾아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97년 11월 초순경 이석희의 사무실로 갔더니 이석희가 '5억 정도를 입금할 수 있는 차명계좌를 몇 개 만들어봐라' 하기에 11월 하순경 저의 처 이00, 여동생 임00, 임00 명의로 계좌를 만들어 통장과 도장을 건네주었습니다."

S지점 출장소는 현금 보유고가 1억원 정도에 불과한데 11억원을 예치했으니 큰돈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석희 차장이 도피할 수 있도록 자신의 검찰 소환 사실을 귀띔해준 것도 임00 소장이었다. 나름대로 동문으로서 '의리'를 지킨 셈이다.

이석희 차장이 도피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대검 중수부에서 수사한 세풍 사건이 아니라 서울지검 공안부가 수사한 안기부가 개입해 공기업으로부터 한나라당 선거자금을 불법모금한 사건이었다. 서울지검 공안2부 박철준 검사는 계좌추적을 통해 이석희 차장의 경기고 동기인 임00 소장이 차명계좌를 개설해 대선자금을 관리한 사실이 드러나자 임씨를 소환했다.

그런데 임 소장은 98년 8월 20일 밤늦게 집에 귀가해 아내로부터 검찰로부터 내일(8월 21일) 아침에 출석하라는 통보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겁이 나서 곧바로 이석희 차장에게 연락해 이씨가 8월 22일 도피 출국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이회창 후보, 4억원 건넨 경기고 동문 이준용 회장에게 "고맙다" 인사

그래도 가장 믿을 사람은 동문이었던 모양이다. 서상목 의원과 함께 세풍 자금을 수금·관리한 김태원 한나라당 재정국장 또한 수금한 돈 17억3000만원을 대전고 47회 동기동창인 강순각 제일은행 강동역지점장에게 맡겨 차명으로 관리했다.

이석희 차장은 이밖에도 99년 9월 △경기고 1년 선배인 민경상 국민은행 쌍문동지점장 △경기고 3년 선배인 이인희 외환은행 중부지점장 등을 통해 각각 차명계좌를 개설해 십수억원을 별도로 관리했다. 이씨는 이처럼 차명으로 통장을 개설한 뒤에 경기고 선배인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 등에게 전화를 해 서울 P호텔에서 만나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4억원을 직접 온라인 입금토록 하기도 했다.

이준용 회장은 검찰에서 "처음에는 알려준 계좌에 2억원만 입금했으나 이회창 총재와의 관계를 생각하니 돈이 적은 기분이 들어 추가로 2억원을 더 지원했다"고 진술했다. 이 회장은 이회창 후보의 경기고 3년 후배로 20∼30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다.

그렇다면 세풍 자금의 '최종 수요자'인 이회창 후보는 과연 그런 사실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다음은 이준용 회장의 검찰 진술조서 내용이다.

문 "(이석희가 개설한) 차명계좌에 입금한 97년 11월 24일자 및 11월 28일자 각 2억원 합계 4억원이 이회창 총재에게 전달된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답 "전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대선이 끝나고 10일 정도 지나 제가 집에 없는 사이에 이회창 총재가 저희 집으로 전화를 걸어온 사실이 있고, 대선이 끝나고 한달 후쯤 소공동 롯데호텔 1층 출입구에서 제가 이회창 총재를 우연히 만났는데 이회창 총재가 저를 만나자 저에게 '고맙다'라는 인사를 하여 저희 돈이 이회창 총재에게 전달된 것으로 제가 생각을 하였습니다."

문 "평소에도 이회창 총재로부터 전화를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이때 전화를 한 번 받은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문 "이회창 총재가 진술인에게 '고맙다'는 취지의 인사말에 대하여 진술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답 "평소 전혀 전화를 하지 않던 이 총재가 대선 후에 저희 집으로 전화를 한 것과 롯데호텔에서의 인사말을 종합하여 볼 때 제가 4억원을 지원해주어 고맙다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지난해 11월 2일 부친 장례식에 참석 중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그의 동생 이회성씨. 세풍을 기획한 이 후보 비선조직 '부국팀'은 이 후보와 가장 이미지가 닮은 이회성씨를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다.
지난해 11월 2일 부친 장례식에 참석 중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그의 동생 이회성씨. 세풍을 기획한 이 후보 비선조직 '부국팀'은 이 후보와 가장 이미지가 닮은 이회성씨를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기고 출신들의 부국팀 운영비·여론조사 등 비공식 대선자금에 사용

검찰 수사기록을 보면, 검찰은 이회성·서상목·이석희 3인이 97년 8월부터 국세청을 동원한 구체적 지원방법 등을 논의한 뒤에 그 내용을 이회성씨가 운영자금 책임을 맡고 있는 부국팀을 통해 이회창 후보에게 보고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기고를 위한, 경기고에 의한, 세풍 답게 한나라당으로 들어간 자금을 제외한 세풍 자금의 사용자도 대부분 경기고 출신들이었다. 그중 중요한 몫은 이회성-서상목이 짝을 이뤄 건사한 이회창 후보 비선조직 부국팀의 운영비였다.

초창기 부국팀 멤버는 이회성씨의 경기고 동기동창인 방석현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를 팀장 격으로 해서 이흥주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유경현, 진경탁·안동일·진영 변호사, 고흥길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황영하 전 총무처장관 등인데 역시 대부분 경기고 출신들이다. 부국팀은 형제 중에서 이회창 후보를 많이 닮아 이 후보의 이미지를 많이 갖고 있는 이회성씨에게 이 후보를 대신해서 '얼굴마담' 역할을 수행할 것을 주문했다.

방석현 교수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이회성씨에게 주어진 얼굴마담의 역할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도움을 주었다는 표시를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후보가 일일이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대신 만나 '눈도장'을 찍을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주로 몸과 머리로 뛰는 지지자들을 만나 격려하는 일과 대선자금을 지원하는 기업인들을 만나 돈을 거두는 일이었다.

이회성씨는 YS 정부에서 그 아들 김현철씨가 했던 역할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여론조사 의뢰였다. 여론조사는 그 결과가 상대방에게 알려지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때문에 역대 선거 때마다 후보의 친인척이나 최측근이 도맡아 왔다.

이회성씨는 대선기간에 여론조사기관인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조사를 의뢰해 그 비용으로 14억2000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또 경기고 선배인 이진환씨의 회사와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을 연결해 회사자금으로 여론조사를 하게 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현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경기고 동문 '선민의식'은 언론의 감시기능까지 마비시켰다

이밖에도 검찰은 계좌추적을 통해 언론인 20여명이 세풍 자금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돈을 받은 언론인 중에는 경기고 출신이 다수 포함돼 있으며 당시 정치부 기자도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한나라당이 우호적인 기사청탁을 대가로 기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을 것으로 파악했지만, 비교적 소액이고 공소시효 문제를 고려해 기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97년 12월 10일 이석희 차장이 차명으로 개설해 관리했던 계좌에서 인출된 1500만원이라는 거액을 받은 경기고 후배 이도성 전 <동아일보> 부국장의 경우는 다르다. 당시 정치부 차장이었던 이도성 기자는 국세청을 동원한 정치자금 모금 사실을 알면서도 보도하지 않았다.

당시 D건설 S 회장은 이도성 차장으로부터 이석희 차장을 소개받아 한나라당에 5억원을 후원금으로 냈다. 그런데 S씨는 97년 10월 하순경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의 자택을 방문했다가 JP로부터 "이회창 후보가 국세청 이석희 차장을 통해 기업인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모금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확인해 보니 사실이더라"는 말을 듣고 이도성 기자에게 정보의 출처(JP)와 함께 이런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도성 기자는 세풍 사건을 보도하거나 그것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세풍을 적극 지원했다. 그 역시 경기고-서울대 출신으로 이석희 차장과는 막역한 사이였다. 어쩌면 경기고 동문이라는 선민(選民)의식이 언론인 본연의 역할인 감시기능까지 마비시켰던 셈이다.

8월 18일 '세풍' 선고 후, 관련자들 이회창 전 총재와 장시간 통화

지난 8월 18일 세풍 사건 선고 이후 관련자들은 이회창 후보의 후원회장을 지낸 L 변호사 사무실에 모여 미국에 가 있는 이회창 전 총재와 장시간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이회창씨는 법정구속된 서상목 전 의원에 대해 "내년 총선에 출마할 사람인데"라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했고, 동생 회성씨와의 통화에서는 "형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위로하면서 "현재 국내 돌아가는 상황이 매우 유동적이기 때문에 참고 견디면 다시 희망찬 날이 올 것"이라고 위로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이들 가운데 한 인사는 "후버 연구소 3층의 골방에서 눈물 젖은 햄버거를 드실 것이 아니라 이제 귀국해 우리들을 지도해 달라"고 간청했으나, 이 전 총재는 "아직은 생각을 정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들 가운데 일부는 1심 재판이 끝나 검찰의 출국금지도 해제되었기 때문에 조만간 출국해 이 전 총재를 만나 조기귀국을 건의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세풍 '경(京)-경(慶) 야합'에 관련된 인사들

세풍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경기고 출신 인사들

서상목 한나라당 의원(경기고 61회) : 이석희 차장과 세풍 주도
이석희 국세청 차장(경기고 61회) : 서상목 의원과 세풍 주도
이회성 에너지경제연구원 고문(경기고 60회) : 세풍 총괄

방석현 서울대 교수(경기고 60회) : 이회성의 동기로 부국팀 팀장
연하청 명지대 교수(경기고 60회) : 이회성의 동기로 이회창 후보 자문교수
강재준 IDN 사장(경기고) : 선배인 방석현 교수에게 대선 관련 사무실 제공
서대권 뉴서울호텔 사장(경기고 62회) : 이석희 차장에게 호텔 스위트룸 무료 제공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경기고 52회) : 후원금 20억원 제공.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경기고 60회) : 동기인 이회성에게 현금 30억원 전달.
이익치 현대증권 사장(경기고 59회) : 후배인 이석희 통해 30억원 전달
최상순 한화유통 사장(경기고 61회) : 18억원 전달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경기고 63회) : 5억원 제공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경기고 52회) : 4억원 입금
김상응 삼양사 회장(경기고 60회) : 1억 전달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경기고 61회) : 1억 전달
이운형 세아제강 회장(경기고 61회) : 5천만원 전달

김인주 한국종금 사장(경기고 61회) : 세풍자금 차명(借名)관리
권오기 한국종금 부장(경기고) : 상동
임 0 0 제일은행 S지점 출장소장(경기고 61회) : 상동
민경상 국민은행 쌍문동지점장 (경기고 60회) : 상동
이인희 외환은행 중부지점장(경기고 58회) : 상동

경기고와 손잡은 경남고 및 범(汎)PK 출신 인사들

박일룡 안기부 차장(경남고) : 3인 조찬모임 통해 한나라당 지원
배재욱 청와대 사정비서관(경남고) : 세풍 후원한 3인 회의 멤버
정형근 한나라당 정세분석위원장(경남고) : 3인 조찬모임 통해 청와대-안기부 정보 수집
전태준 국군 의무사령관(경남고) : 배재욱 비서관의 경남고 1년 후배로 이회성과 지방 동행
임채주 국세청장(부산고) : 이석희의 권유로 세풍 주도에 가담
주정중 국세청 조사국장(경남고) : '100대 그룹 기본사항' 책자 작성해 모금에 가담
권영해 안기부장(경주고) : 공기업 동원해 한나라당에 자금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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