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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이해 서울YWCA가 4일 오후 1시 탈북주민 초청 한가위 송편빚기 행사를 열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마련하는 이번 행사엔 하나원에서 적응교육을 받고 최근에 퇴소한 탈북주민 여덟 명이 참석해 한가위의 정을 나눴다.
초반엔 서로들 처음 만난 얼굴에 서먹함을 표했지만 먹음직스런 송편이 하나 둘 쌓일수록 그들의 정겨움도 무르익어 갔다. 각자 만든 송편을 먹여주고 맛을 비교하는 사이 어느덧 그들은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며 둘도 없는 고향 친구가 되었다.
함북 무산이 고향인 마순희(51)씨는 “북한에서도 추석엔 온 길이 성묘하러 가는 사람들의 머리로 새까맣게 물든다”며 “고향 생각이 가장 많이 나는 명절에 고향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 반갑다”고 기뻐했다.
마씨는 이어 “우리가 북한에 있을 때 남한에 건너 간 사람들을 좋게 보지 않았던 것처럼 북에 남겨진 친척도 우리가 남한에 온 걸 알면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며 “어제도 대구에 온 고향 사람들을 밤늦게까지 TV로 보느라 잠을 못 잤다, 그들을 보며 고향 생각이 나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고 전했다.
또 마씨는 “북한에 있을 때는 남한 사람이 통일을 원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와보니 우리와 같은 마음이었다”며 “우리 마음대로라면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은데 왜 그리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려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함북 함흥이 고향인 주미영(43)씨는 “냉면집에서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끼리 모여 음식을 만들고 사는 얘기를 나누던 그 시절로 돌아 간 것 같다”며 “처음엔 내 말을 못 알아들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나와 보니 너무 좋다”고 감회를 밝혔다.
주씨는 “좋은 음식을 볼 때 고향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생각이 가장 많이 난다”며 “그저 열심히 살아 돈을 많이 벌어 북에 남겨진 친척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 그는 “고향에 있는 어머니 산소와 중국에 있는 남편 묘를 생각하면 한판 크게 울고 싶은 심정이다”며 “올 추석엔 외로움을 달래러 어머님 고향인 순천에 다녀 올 생각이다"고 전했다.
민속촌에 다녀왔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는 김선화(43)씨 또한 “남한 사람이랑 같이 마음을 나누니 마치 한집에 모여 사는 가족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며 “중국에서 잃어버린 남편과 고향에 두고 온 시어머님이 생각난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김씨는 “대구 U대회를 보며 얼마나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며 “명절이 다가올수록 고향 생각에 더 가슴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그는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열심히 살아 성공하여 북에 남겨진 우리 친척들에게 꼭 보답하고 싶다”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송편을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다. 숟가락으로 모양을 내는가 하면 컵으로 찍어 누르기도 하고 다른 색깔의 떡을 엮어 두 가지 색을 지닌 탐스런 송편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지닌 사연만큼이나 각양각색의 송편이 빚어졌다. 취재를 하는 기자에게 하나라도 더 송편을 먹이려는 그 모습이 다름 아닌 우리네 부모와 꼭 닮았다.
정몽헌씨의 자살 얘기부터 시작해 남한 정세 및 경제 상황, 사랑하는 가족 얘기까지 이어진 그들의 대화는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네 서민들의 삶과 다름 아니었다.
| | “작은 건 얘비하죠!” | | | 북측 송편이 남측 송편보다 2배 이상 큰 이유는? | | | |
| | | ▲ 사진 왼쪽이 북측 송편이다 | ⓒ김진석 | 북측 송편과 남측 송편의 차이가 있다면 ‘크기’ 를 뽑을 수 있다. 북측 송편의 크기는 한 입에 들어가는 남측 송편에 비해 무려 2배 이상이 컸다.
이에 탈북자 한정선(29)씨는 “남측 송편은 얘비하죠!” 라며 “북측 송편이 큰 이유는 북한 사람들의 인심이 후하고 마음 씀씀이가 크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얘비하다’ 는 단어가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한씨는 “눈에 차지 않는다” 라는 북한 사투리라며 “보는 것만으로도 푸짐하고 배부르게 만드는 게 북한이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다”고 밝혔다.
이어 한씨는 “그 이면엔 쌀이 비싸기 때문에 떡을 크게 만들어 쌀을 좀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이유도 있다” 며 “눈에 차게 만들어 음식을 더 맛있게 보이는 효과를 얻는다” 고 덧붙였다.
/ 김은성 | | | | |
행사를 주최한 서울 YWCA 김효정(38) 간사는 “작은 송편 하나로 그들과 마음을 터놓고 그간 나누지 못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작년에 이어 행사를 마련했다”며 “작년에 비해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 12월에 송년 모임도 계획 중이다”고 밝혔다.
또 그는 “탈북 주민들이 점점 더 많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 비해 막상 그들이 남한에 오면 살 길이 막막하다”며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할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그는 “탈북 주민들을 바라보는 무조건적인 동정 어린 시선은 바뀌어야 한다”며 “그들이 스스로 남한에 적응해 살아 갈 수 있는 취업 조건 등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송편 빚기 행사에 모인 탈북자 8인은 모두가 밝은 표정이었다. 그들은 모두 금년에 남한으로 들어 온 사람이었다. 둘 셋의 자녀를 거느린 그들은 “그 누군들 걱정, 근심 없는 가정이 있겠어요?”라며 “앞으로 열심히 살아요!”라고 입을 모았다. 가슴 속 깊이 자리한 시름을 뒤로 송편 하나로 이어진 그들의 동포애는 속절없는 시간과 함께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