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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차츰 바뀌어 올해는 중학교 3학년도 책이 바뀌었다. 후련한 맘 끝에는 너무나 많은 분량이라 다 가르칠 수 없음이 늘 미안하다. 그래도 쪼개고 쪼개서 필요한 부분을 상의해서 가르치는 데는 우리 학교 다닐 때에 비하면 천국 같은 풍경이다.

아이들이 직접 수업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매번 "선생님은 맨날 놀고 우리만…"이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간이 흐르면 피식 웃으며 그 때 성실하게 하지 못 한 것에 매우 후회스러워 한다.

가을이란 계절적 배경에 맞춰서인지, 첫 단원에는 시 두 편과 신화 한 편이 나와 있다.

몇 년 전 영화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에 쓰였던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가 맨 먼저 나와 있고, 김종길의 '성탄제'가 그 뒤에 나와 있다.

모둠 활동을 좋아하는 내 수업에 아이들은 오늘도 발표할 것에 대해 고민한다. 하지만 웬일인지 오늘 10반 녀석들이 우르르 수업 전에 다가왔다.

"선생님, 빨리 발표하고 싶어요. 이것 보실래요? 저희가 생각해도 너무 잘했어요."

이게 웬일인가. 정말 가뭄에 콩 나는 자신감. 녀석들은 내용이 든 전지를 펼쳐 보이려고 좁은 자리에서 야단인데, 그 순간 말을 끊었다.

"아아~ 바로 몇 분 후면 볼 건데, 나도 설레임의 기분을 가져보자. 어서 올라가서 발표 준비하렴."

괜스레 보지도 않았으면서도 녀석들의 자신감에 감탄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3층으로 향했다.

대개 녀석들은 종소리가 나고 5분이 지나도록 혼란스러운데, 여전히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떠들썩한 교실분위기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나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컴퓨터에서 배경음악으로 쓸 노래를 찾고 있던 아이들은 오늘따라 힘차 보이고 자랑스러워 보인다. 역시 뭔가를 해온 때의 모습이란 승승장구한 장수를 능가하는 모양이다.

"자! 오늘 어느 모둠 발표인가? 얼렁 나와 해버리자!"

시 '즐거운 편지'를 다른 곡에 맞춰 부르는 모둠(김정호의 '아버지'란 노래에 맞춰 불렀는데, 모두가 중얼거리는 수준, 결국 다음 시간에 다시 하기로 했다)과 이 시를 몸짓으로 표현하는 모둠(움직임이 작았지만 매우 잘했다. 좀 더 완벽한 몸짓을 위해 다음 시간 다시 하기로 했다)이 있고, 쉬는 시간에 당당하게 와서 스스로를 칭찬하는 모둠이 왔다.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녀석들은 내용이 적힌 전지를 높이 쳐들며 참 잘 설명해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것을 보는 아이들도 하나둘 허튼 짓을 그만두고 녀석들을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중간쯤인 것 같은데, 벌써 설명이 다 되었노라며 인사를 하는 아이들이었다.

"설마 이것으로 끝났다는 것이 아니겠지?"

"네?"

"책은 보고 한 거니? 책 뒷면 살펴봤어?"

"네? (뒤적뒤적) 어라~ 하하하하"

우리 모두 "하하하하"였다. 글쎄 녀석들은 뒤에 나온 시구는 빼놓고 앞면만 해온 것이다. 그래도 내용 설명은 적절하게 잘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다른 아이들은 다음 시간에 해오라고 하고, 녀석들 중 수진이는 그래도 할 수 있단다. 그 용기가 얼마나 아름답든지 그래 해보라 했더니. 결국 한 줄도 못 하고 얼굴을 붉혔다.

녀석들의 무안함을 알아챈 듯 6교시 마침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뛰어가듯 자리에 앉았다. 종이 녀석들을 살린 것이다.

퇴근시간이 넘은 이 시간도 난 웃음이 나온다. 녀석들의 노력과 그 앳된 서툰 웃음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하는 지 녀석들은 모를 일이다. 오늘 또 녀석들에게 살아있음의 뿌듯함을 느끼며 감사한다. 내일 또 내 모습이, 내 목소리가 커질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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