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의 쨍쨍함은 동안 내린 비로 많이 수그러들었다. 사람들은 벌써 아침 저녁 서늘해짐으로 가을을 만끽하고 있고, 길가 가로수도 제법 빛깔이 곱게 여물어가고, 들판엔 비 피해에도 불구하고 누런 빛깔의 벼가 제 몸빛을 드러내고 있다.
며칠 전 개학하고 나서 아이들 몇이 우르르 몰려왔다.
"선생님, 춘추복 입으면 안돼요? 입고 싶어요. 추워요."
"에게~ 아직 더위 남아있어. 춥긴…."
처음엔 그저 춘추복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그냥 해본 소리라 생각했다. 그 뒤로 아침 저녁이 제법 서늘해져서 나 또한 긴팔을 입게 되었다.
그 무렵 더러 기침을 하며 감기로 약을 찾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선생님들끼리 춘추복은 언제 입나요 하는 질문이 오갔고, 자연스레 답들은 "글쎄요. 추우면 입어야하지 않나?"였다. 춘추복을 입고자 하는 아이들은 늘어나 계속해서 질문을 해왔다. 이상한 것은 아이들이 생활지도부로 가지 않고 말만 늘어놓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여전히 생활지도부는 무섭다는 것이다.
"몸이 좋지 않아 학교 규정 날짜와 별도로 춘추복을 입어야하면 생활지도부에 가서 말하고 입으면 되지 않을까. 가서 말씀드리고 입도록 해."
풀이 꺾인 목소리로 "네에~"하고 가는 아이의 뒷모습은 체념 그 자체였다. 몇몇이 와서 등교길에 춘추복 입고 왔다가 돌려보내졌다는 말을 흘리고 갔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교 규정은 좋지만, 그 규정은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몸상태에 따라 추운 아이는 먼저 춘추복을 입고, 아직 더운 아이는 하복을 입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시기를 정해서 천편일률적으로 교복을 맞춰입으라는 것은 억지다.
평상복 차림의 교사도 어제는 반팔이었다가, 오늘은 긴팔로 입는다. 그것은 자기 몸의 상태에 따른 자유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교복 입는 날이 정해져야 하는가.
생활지도부의 입장에선 뚜렷히 왜 그래야하는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제 오후 내 자리 근처에서 몇몇 담임과 생활지도부장이 이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들어보니, 특이체질은 생활지도부에 허락을 맡고 입으란다. 그렇다면 긴팔을 입은 교사는 특이체질이어서 입는가라고 옆 선생님이 말하자 답을 못 한다.
한참 성장기에 놓인 아이들은 저마다 몸상태가 다르다. 그러다보니 몇 벌 되지 않는 교복 정도 맞춰 입지 않으면 어떤가. 교복을 입기로 한 상태에서 그 정도의 융통성도 유지되지 않으면서 창의성, 독창성 계발은 어디서 하라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오늘도 아이들은 사이사이 겉옷을 걸치고 있다. 춘추복은 입지 못하는 규정이니 하복 위에 덧옷을 가지고 와 입고 있는 것이다. 어떤 반 선생님은 자기 반만이라도 자율적으로 입으라 할 예정이다.
추울 때 긴 옷을 입고, 더울 때 짧은 옷을 입는 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당연한 일이므로.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