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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벽돌집 마당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
조그만 벽돌집 마당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 ⓒ 양유창
얼마나 달렸을까. 날이 어둑해지면서 차장 밖은 이윽고 암흑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전기가 잘 보급되어 있지 않은 탓에 밤은 곧 어둠과 동의어였다. 불빛 하나 새어나오지 않는 검정 속으로 버스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렸다. 4시간 조금 지나자 버스는 드디어 하롱베이에 도착했다. 일단 인근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내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밤새 비가 엄청나게 내렸다. 그 비는 이튿날까지 계속되었다. 아침 일찍 호텔 전망대에서 하롱베이를 바라보았지만, 비와 안개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실망감을 뒤로 한 채 호텔을 나섰다. 계단을 조금 내려가니 선착장이 보였다. 안개가 자욱한 바이차이 선착장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비가 온 탓인지 여행객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배에 오르자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나는 들떠 있었다. 실망감은 이제 흥분으로 바뀌었다.

배를 타고 섬들 사이로 나아간다. 하롱베이는 중국 남부의 하이난섬과 접해 있는 곳이어서 중국을 통해서도 올 수 있다.
배를 타고 섬들 사이로 나아간다. 하롱베이는 중국 남부의 하이난섬과 접해 있는 곳이어서 중국을 통해서도 올 수 있다. ⓒ 양유창
섬에서 선착장으로 가는 길
섬에서 선착장으로 가는 길 ⓒ 양유창
배를 타고 박보만(통킹만)으로 나아간다. 하노이로부터 180km 떨어진 바닷가인 이곳은 기암괴석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섬들이 바다를 촘촘히 수놓는 곳이다. 바다이면서도 파도 한 점 일지 않는다. 섬들과 섬들 사이를 지나갈 때면 그 속에 단지 인간 외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적막한 느낌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의 바다 속 물과 돌의 조화는 인간의 왜소함과 자연의 거대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천궁 동굴 입구에서 바라본 하롱베이의 모습
천궁 동굴 입구에서 바라본 하롱베이의 모습 ⓒ 양유창
하롱베이의 하롱[下龍]은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라는 뜻이다. 하노이의 옛 이름 탐롱[昇龍]과 댓구를 이룬다. 바다 건너 침략해온 적을 막기 위해 내려온 용이 입에서 보석과 구슬을 내뿜어 갖은 모양의 기암을 만들었다는 전설을 지닌 하롱베이는 15000㎢ 넓이에 3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다.

아무리 훌륭한 사진작가도 하롱베이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사진들은 하롱베이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진작가도 하롱베이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사진들은 하롱베이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다. ⓒ 양유창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도 감탄하여 차마 폭격하지 못하였다고 하는 이곳. 바다임에도 잔잔한 파도조차 느껴지지 않는 섬들의 한가운데에 서면 평화로움에 모든 긴장이 사라지고 마음이 포근해진다. 심장이 멎을 듯이 아름다운 풍경에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 바다마저 숨죽인 이곳에서는 오로지 섬들만이 숨을 쉰다. 용이 정말 존재한다면 바다 밑에 조용히 잠들어 있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가 펄럭인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파노라마로 섬들을 촬영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파노라마로 섬들을 촬영했다. ⓒ 양유창
배를 탄 지 2시간쯤 지났을까. 비가 조금씩 멈추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빛이 내리쬔다. 수묵화처럼 흐릿한 안개에 가려졌던 섬들이 이내 햇빛에 보석빛을 반사한다. 섬 모양도 가지가지다. 두꺼비섬, 용섬, 장닭섬, 도자기섬, 말안장섬 등 아직 1천개의 섬에만 이름이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이곳의 모든 섬을 탐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색깔별 조명과 벽에 뿌려놓은 녹색 스프레이 효과로 동굴은 자연미에 인공미를 더했다.
색깔별 조명과 벽에 뿌려놓은 녹색 스프레이 효과로 동굴은 자연미에 인공미를 더했다. ⓒ 양유창
배가 섬에 닿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몇몇 큰 섬에는 동굴이 있는데 그 내부는 사람이 만든 것인지 신이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난 가장 유명한 천궁 동굴로 가보았다. 해수면에서 100개의 돌계단을 올라가면 ‘하늘의 성’이라는 뜻의 천궁 동굴이 나온다. 좁은 입구를 통과하면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고 웅장한 내부로 이어지는데 그곳에서 다시 좁은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면 형형색색의 신이 빚은 예술작품과 만날 수 있다. 더 깊이 들어갈수록 천연의 모습이 나온다. 관광객을 위해 설치해둔 인공조명은 조금 거슬리지만 제멋대로 자란 듯한 종유석과 석순들이 위대한 자연을 실감나게 한다.

동굴 내부의 다리를 건너 굽이굽이 돌아가면 천연의 모습과 마주친다.
동굴 내부의 다리를 건너 굽이굽이 돌아가면 천연의 모습과 마주친다. ⓒ 양유창
크고 웅장한 천궁 동굴에 비해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다른 동굴로 들어가 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이 동굴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베트남인들이 수천년 역사 동안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일까? 하지만, 자연의 존귀함이 빚어낸 환상의 조각 작품인 동굴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몇 개나 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아마도 자연이 베트남에 내린 선물이리라.

선상에서 회를 파는 집. 여러 민물고기들을 양식하고 있다. 비가 많이 온 탓인지 횟집 아주머니가 고인 물을 퍼내고 있다.
선상에서 회를 파는 집. 여러 민물고기들을 양식하고 있다. 비가 많이 온 탓인지 횟집 아주머니가 고인 물을 퍼내고 있다. ⓒ 양유창
다시 배에 올랐다. 하롱베이 절경에 어찌 눈만 즐거울 수 있으랴. 하롱베이에는 어민들이 산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은 수상가옥에서 생선, 새우, 게 등을 양식한다. 10평 남짓한 그 집을 지나갈 때면 직접 뜬 회도 맛볼 수 있다. 배를 멈춰 세우고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게와 새우로 허기를 채운다. 디저트로 망고, 아보카도 등 열대과일과 베트남 소주 넵모이를 한 잔 마시며 정취에 흠뻑 취한다.

꿈 속에 본 섬? 저곳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꿈 속에 본 섬? 저곳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 양유창
크루즈에 다시 시동이 걸린다. 섬들이 서서히 멀어져가고 육지가 가까워오기 시작한다. 신기한 것은 육지가 가까워올수록 등 뒤로 펼쳐진 하롱베이의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참 전에 본 풍경처럼 아련히 남아 있어 그리움도 가슴 깊이 남는다. 1950년 프랑스 아세트 출판사가 선정한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하롱베이. 전설만이 유일하게 존재를 설명해주는 그곳에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광활한 자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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