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김근태 의원이 신당 참여를 선언했다. 여러가지 복잡한 이유를 달았지만, 결론은 신당에 참여한다는 선언이었다.
김근태 의원의 신당 참여선언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필자는 드디어 김근태 의원이 '노무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인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됐다고 판단한다. 도대체 노무현 콤플렉스란게 뭐란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곡절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사실은 이 나라 주류 기득권층에게도 큰 충격이었지만, 민주화 운동의 정통을 이어왔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주류 운동권 계층에게도 마찬가지의 충격이었다. 대체 하필이면 왜 노무현이란 말인가.
서울대 운동권 출신도 아니요, 법조인이긴 하지만, 이른바 노른 자위 코스라고는 한번도 밟아본 일이 없는 변방의 판사였으며, 운동권이라고는 해도 나이 마흔 넘어 결코 우리 운동권에서는 주류가 아니었던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인권 변호사 노무현.
5공 청문회 스타였긴 했지만, 당시 야당의 양대 주류였던 양김씨의 절대체제 아래 편입되기를 거부했던 정치권의 이단아. 주류 운동권에게도 노무현 대통령의 급부상과 당선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정치권 전반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큰 충격이었다. 왜 그랬던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그야말로 이 나라를 오랫동안 지배해왔던 대통령 당선의 '문법'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젠 대통령 후보로의 부상, 그리고 당선에 이르는 일반적인 정치문법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실은 노무현 당선의 핵심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이미 유권자는 낡은 문법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는 더욱 그런 경향이 가속될 것이 분명하다.
정치문법의 파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패러다임 이론을 세운 과학사가 토마스 쿤은 혁명적 과학과 평범한 과학을 구분짓는 본질적인 차이를 후자가 "전통을 보존하는" 종류의 변화인데 반해, 전자는 "전통을 파괴하는" 변화를 수반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말하자면 지금은 혁명적 과학의 시기다. 다만 그 방법론이 국민의 합의에 따른다는 점에서 혁명 그 자체는 아닐 뿐이다. 이런 혁명에 가까운 개혁의 흐름이 압도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통령은 군사독재자가 제멋대로 차지하든가, 아니면 민주화운동의 리더들이 차지해 왔다. 양김씨가 한번씩 대통령을 해 먹고 치러진 지난 대통령 선거는 말하자면, 낡은 패러다임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방향은 달랐지만 본질면에서는 양김씨에 더 가까웠던 이회창씨와, 김대중 정권의 뒤를 이었지만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노무현씨와의 대결이었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승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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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이제 기존의 패러다임, 자발성 보다는 돈과 조직에 의지하는 낡은 패러다임의 정치에서 나오기 힘든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합리란 명분 아래 기존의 정치권에 안주하는,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선수(選數)도 쌓이고 이력도 쌓아가는 그런 식의 전통적 정치행태를 따르는 정치인들이 다음 대통령을 넘볼 수는 없는 시대에 이미 도달해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으며, 그래서 다음 5년에 대한 희망이 오히려 내년의 차기 총선거보다도 더 절망적이고, 당연한 결과로 입만 열면 내각제 운운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러한 바뀐 시대적 패러다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김근태 의원이나 추미애 의원은 말하자면 차기 대선후보로도 충분히 꼽을만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바뀐 시대적 흐름을 탄 노무현 대통령이 순식간에 대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봐 왔다. 하지만 그 배경에 있는 진정한 이유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바뀐 정치적 문법, 변화된 정치의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 부족인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변화된 패러다임에서 핵심은 자발성이다. 복잡계 네트워크에 대한 이론서인 <링크>의 저자 A.L. 바라바시 교수의 용어를 빌면, 자발성은 선호적 연결, 즉 같은 정치인이더라도 자발적으로 지지하고 자발적으로 캠페인을 벌여 다른 정치인들을 압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자발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뀌고 있는 정치토양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다수를 점하는 20대~40대의 유권자들은, 원칙을 위해서는 어떤 손해든 마다치 않는 원칙론적인 행보에 점수를 준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가능케 했던 자발성은, 뻔히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지역주의의 높은 벽에 부딪쳐 갔던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역정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단순히 원칙만 지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철밥통을 위해서라면 틀린 원칙도 끝까지 맞다고 고집부리는 박상천 같은 인간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원칙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지역이 아니라 이 나라의 개혁을 위해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정치, 바로 그것이다.
이제 김근태 의원은 달라진 패러다임에 대해 이해를 하는 과정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만 해도 평가할 만하다. 추미애 의원이 여전히 미망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한 것과 대조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시 차기를 노리는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정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에서 다음 대통령선거를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충고다.
유시민 의원은 다음 대통령은 신주류 가운데서 나온다고 한 적이 있지만, 필자는 의견이 좀 다르다. 달라진 정치의 패러다임, 바뀐 대통령 당선의 정치문법을 이해하지 않으면 그들이 신주류라고 해도 말짱 꽝이다.
신당이 꼭 시대의 대세인 것은 아니다. 신당이 됐건, 뭐가 됐건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돈과 조직이 아닌 깨끗한 정치를 몸으로 실천하며, 공직선거 후보의 선출권을 국민들 손에 돌려주는 정당이면 족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민주당의 구주류나, 혹은 통합모임을 자임하는 기회주의자들에게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상수(常數)가 아니라 보잘 것 없는 변수(變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근태 의원의 신당 참여선언이 변수에서 상수로의 전환, 낡은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진입, 새로운 정치문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거듭나려는 정치실험이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