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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사러 갔다가 그 책은 서서 읽고 이 책을 사 가지고 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표지에 가득 그려진 자전거, 이 자전거들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라울 따뷔랭은 세발자전거, 네발자전거까지는 그 누구보다도 잘 탔다. 그런데 두발 자전거는 어떤 노력을 해도 탈 수 없었다. 그는 자전거를 못 탄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변속장치나 토클립을 망가뜨리고 붕대를 감고 나타난다. 그러면서 라울 따뷔랭은 자전거의 구조, 성질, 특징 등을 아주 자세한 부분까지 알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포로똥 영감님 댁 자전거 수리공이 되었다.

오불관언(吾不關焉)의 경지에 이른 라울 따뷔랭은 평소에 농담 잘하고 웃기기 잘하며 자신의 비밀을 숨기고 살아간다. 어느 날 그에게 사랑이 찾아든다.

포로똥 영감님 댁 따님인 조시안에게 라울 따뷔랭이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을 읽으며 한참을 웃었다. 눈가에 눈물이 달릴 정도로 웃고 나니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랑 고백을 기다리는 조시안과 비밀을 먼저 말해버린 라울 따뷔랭. 그는 사랑을 고백하기 전에 자신의 비밀을 먼저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순박한 라울 따뷔랭은 사랑을 고백하는데도 자전거 타는 것과 같은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자신이 사는 방법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순간에는 영 글러먹었다는 것을 조시안이 떠나 버린 다음에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비밀은 무엇일까? 햄을 잘 만드는 오뀌나뜨 프로냐르는 햄을 상징하는 대명사 프로냐르로, 안경점을 운영하는 프레데릭 비파이유는 안경을 대신하여 비파이유라고 불리었다. 라울 따뷔랭 역시 자전거 대신 따뷔랭이라고 불리웠지만 오뀌나뜨 프로냐르가 햄을 즐겨먹고 프레데릭 비파이유가 안경을 쓰고 생활하는 것과 달리 라울 따뷔랭에게는 남들에게 말못하고 혼자 품고 있는 비밀이 있었다.

어느 날 `골칫거리가 생겼다` 며 한 손에 변속장치 손잡이와 끊어진 케이블을 들고 사진관을 하는 에르베 피구뉴가 찾아오면서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에르베 피구뉴는 라울 따뷔랭이 자전거를 타고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찍고 싶어한다. 아내까지 나서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 라울 따뷔랭은 포도주를 잔득 마시고 언덕 위에 서서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고 말하지만 에르베 피구뉴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에 올라탔다.

라울 따뷔랭은 무모한 사이클 주자가 되어 3개월 동안 병원에 누워 있어야했고 에르베 피구뉴는 그 사진으로 유명 인사가 된다. 봄에 에르베 피구뉴의 사진집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이 나오게 되었다.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 라울 따뷔랭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려고 에르베 피구뉴를 찾아가지만 자신의 비밀을 말하기도 전에 에르베 피구뉴의 비밀을 듣고 그도 자신과 똑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쫓는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룬 사람보다는 어찌어찌하다보니 그 자리에 서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많은 사람들이 라울 따뷔랭처럼 그렇게 산다. 피구뉴처럼 그렇게 산다. 항상 중요한 순간의 포착을 놓쳐버리는 피구뉴나 자전거의 구조를 아주 잘 알지만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라울 따뷔랭은 결국 돌아보면 나인 동시에 우리 주변에 살고있는 사진관 아저씨이고 자전거포집 주인일 것이다.

이 글을 쓰고 그린 장 자끄 상뻬는 아주 시원하게 이러한 삶의 복잡 다양한 편린들을 놓치지 않고 삽화라는 또 다른 언어를 통해서 담아내고 있다.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사소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말이다. 마치 비 온 후 펼쳐진 들판 같이 맑고 깨끗하다. 그 안에 라울 따뷔랭과 생 세롱이라는 동네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다. 아니, 우리들의 삶이 펼쳐진다.

라울 따뷔랭 - 작은책

장자끄 상뻬 지음,최영선 옮김, 열린책들(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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