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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 드러 누운 노송
강물에 드러 누운 노송 ⓒ 김강임
보름달이 뜨면 더욱 아름다운 곳. 은어가 뛰놀고 관인들이 정자에 나와서 상춘을 즐긴다는 곳. 달 그림자와 함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긴 곳.

보름달이 뜨거든 '월대'로 나오세요. 풍류를 즐기기 위해 찾아간 '월대'에는 선비대신 동네아이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멱을 감을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들 뒤로 말없이 강물이 흘러 내렸다.

동네아이들이 마중을 나왔네요.
동네아이들이 마중을 나왔네요. ⓒ 김강임
하늘에서 내려와 맑은 물가에 비친 달 그림자의 장관을 즐겼기 때문일까? '월대'의 강물이 고요하게 흐른다. 어디서 흘러 오는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행여 하는 마음에 선비를 기다린다.

수령을 알 수 없는 노송이 강물 위에 드러누워 있다. 이 마을을 지키는 노송은 강물을 휘감고 오늘도 선비를 기다리는데 지금 세상에 선비가 어디 있을까?

'월대'는 수백 년 된 해송과 팽나무 고목들이 우거진 곳에 놓인 반석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주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철 냇물이 흘러 고려와 조선 시대에 관아에서 조공을 실어 날랐다 하여 조공천이라 불리던 도근내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달그림자 비치면 풍류를 즐겼다니
달그림자 비치면 풍류를 즐겼다니 ⓒ 김강임
냇물에서는 은어들이 노닐고 달이 뜨면 운치 있는 정취가 흐르는 이곳에 옛 선인들이 풍류를 즐기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보름달이 뜬 밤의 정취가 멋있다고 하며 여름철 피서지로도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월대 앞에 서니 갑자기 시인이 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하여 천년만년 누리리라."

이방원의 '하여가'를 읊으며 말없이 흘러내리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어제까지 울던 매미도 절기를 아는 듯 울음소리를 그쳤다.

월대터에는 이런 얘기가...
월대터에는 이런 얘기가... ⓒ 김강임
월대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흐르는 하천이 드문 제주도에서 연중 맑고 풍부한 냇물이 흘러 은어의 산지로 유명했으며, 강 언덕의 고목이 우거져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여름철 놀이터로 이름난 곳. 조선시대 시문을 즐기던 선비들이 모여 시회를 열기도 했으며, 연회를 베풀기도 했던 유서 깊은 장소이다"

그러나 지금은 물도 줄어들었고 뛰놀던 은어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바로 그 옆에 반달형으로 새긴 '월대(月臺)'라는 각자는 옛날의 정취를 말해주는 듯 지금도 역력히 남아 있다. 물이 깊고 뱀장어와 은어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데, 특히 이곳에서 나는 은어는 진상품이어서 옛날에는 잡지 못했다 한다.

월대비도 예술로
월대비도 예술로 ⓒ 김강임
'월대(月臺)'라 각인된 비석이 세워져 있는 서쪽 천 변에는 수 백년 된 소나무와 팽나무가 잔잔한 수면위로 휘늘어져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

뒤돌아 볼 겨를 없이 앞만 보며 달려왔던 남편과 나는 월대 정자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는데 남편은 한라산을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월대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풍경이 더없이 아름답다. 한라산 산중턱에 걸쳐 있는 구름이 월대 노송 사이로 희끗희끗하게 보인다. 마치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는 우리 둘의 흰머리 가락처럼.

수령깊은 노송은 선비를 기다리고
수령깊은 노송은 선비를 기다리고 ⓒ 김강임
그런데 남편은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서로에게 가슴속에 묻어두고 살아야할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있으면 잠시만이라도 상념에 젖게 해 두자. 머리 속에 든 상념마저도 내가 다 빼앗아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그러나 나는 이맘 때 보름달이 뜨면 달 그림자를 밟으러 나왔던 고향마을 어귀를 생각했다. 그리고 '패.경.옥' 친구들의 얼굴도 떠올렸다.

그리고 영원히 가슴속에 묻고 살자며 새끼 손가락을 걸고 맹세했던 유년시절의 첫사랑도 떠올렸다. 어쩌면 선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첫사랑의 추억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강물이 모여서 바다가 되고
강물이 모여서 바다가 되고 ⓒ 김강임
잠시 시끌벅적한 세상을 등지고 강물 끝을 바라보니 강물이 모여서 바다가 된다. 그리고 그 바다는 넓고 푸른 망망대해로 이름도 없이 흐른다.

"보름달이 뜨거든 다시 옵시다"

남편의 그 달콤한 사탕발림에 나는 또 넘어간다. '월대'를 빠져 나가면 다시 페달을 밟고 질주하듯 세상 속으로 빠져 들어가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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