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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작됐다. 상대편을 밀어내고 골문으로 달려들지만 공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다.
경기가 시작됐다. 상대편을 밀어내고 골문으로 달려들지만 공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광주 여자축구 동호회가 힘찬 시동을 걸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북구 양산동 OB맥주 공장 운동장에서는 뒤늦게 축구를 배우려는 주부들이 연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광주 여성축구동호회가 생긴 건 지난 8월 초. 광주지역 축구 동호인들이 지난 6월경 울산에서 개최된 영호남 친선 축구대회를 다녀온 뒤 여자축구 동호회 결성을 본격화 한 것.

임윤수(53) 단장은 "울산에서 여자 축구 동호회가 오픈 경기를 치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그동안 광주만 여자축구동호회가 없어서 안타까워하던 차에 모임을 가졌는데 처음 우려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30∼40대 주부들 주축, "버스 3번 갈아타고 와"

현재 회원은 30여명. 축구가 좋아 스스로 찾아 온 경우이다. 20대가 한 둘 있고 나머지는 자녀들도 한 둘 있는 30∼40대 주부들이다. 동호회다 보니 나이 제한을 두지 않았는데 모이다 보니 이상하게 다 주부들이었다고 한다.

귀걸이로 멋을 내는 사람,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인 사람,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 등 풍경도 가지가지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각별하다.

스트레칭을 하면 몸을 풀고 있다. 진지한 표정이 역력하다.
스트레칭을 하면 몸을 풀고 있다. 진지한 표정이 역력하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임미경(44·남구 백운동)씨는 "바로 오는 버스편이 없어 3번이나 갈아타고 온다"며 "중학생 때로 돌아간다면 꼭 국가대표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임씨는 그래도 나은 편. 멀리 전남 곡성에서 다니는 사람까지 있다. 이윤순(41)·허순금(44)·오성숙씨는 10여년 같은 계원으로 있다가 함께 '오기'가 발동한 경우.

"처녀 때 자전거를 많이 탔습니다. 남자들하고 대회를 해도 10등하고 그랬습니다. 지금도 윗몸 일으키기 50개씩은 합니다. 아직 잘 하진 못해도 배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맏언니 격인 이덕순(48·운암동)씨는 "집안이 운동을 잘 하는 편이었다"며 "젊다고 잘 하는 것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다쳐봐야 타박상 정도"

30여분 전에 도착해 혼자 근육을 풀고있는 그녀는 "했다가 안 했다가 하니까 오히려 그렇더라"면서 "1주일에 두 번은 그렇고 세 번씩은 해야 늘겠더라"고 의욕을 다지고 있었다. '다치면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는 "다쳐봐야 타박상 정도지 않겠느냐"고.

그동안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왔던 축구가 최근 여성들에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지난해 치른 월드컵 4강 신화와 정상급 실력을 자랑하는 북한 여자축구의 영향이 크다. 평소 운동기회를 갖기 어려운 도시인들이 생활체육에 대한 욕구도 그 만큼 늘어가는 추세다.

동호회라고 하지만 훈련만큼은 엄격하다. 오후 5시부터 진행되는 훈련은 몸의 유연성을 기르는 스트레칭에서 근력을 키우는 훈련, 드리블 등 기술 연습 순으로 진행된다.

"올해는 기초체력을 다지며 몸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아직은 엉성하지만 내년 봄이 되면 팀다운 틀을 갖추게 될 겁니다."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다. 내년을 기대하시라.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다. 내년을 기대하시라. ⓒ 이국언
황영우 감독(42·전 국가대표)은 "목표는 전국대회 우승"이라며 "내년에는 전국대회 출전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직 실력을 말한 수준이 아니다. 공을 잡기는커녕 여기 저기로 튀는 공을 따라가기도 바쁘다. 황 감독은 "유리알이라 생각하고 감싸안듯 조심스레 발끝을 대라"고 주문하지만 번번이 튕겨 나가기 일쑤다.

공을 다루고 있는 시간보다 주우러 가는 시간이 많아 보이는 지경. 그러나 땡볕 아래에서 회원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땀을 쏟아내면서도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들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틈에 시간을 내 참석하고 있다는 정현(40·오치동)씨는 "주부들이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하는 것도 아니어서 남편들의 성원도 크다"고 말했다.

남편이 알려줘 참여하게 됐다는 최선화(31·두암동)씨는 "언니들을 새로 만나다 보니 배운 점도 많고 10년은 먼저 사는 것 같다"며 "나이 차이가 있어 일반 사회에서 만나면 어려울 텐데 이곳에서는 모두 친하다"고 흐뭇해했다.

"축구 재미에 입까지 다 지었습니다.(입술이 다 부르텄습니다) 여기서 서로 웃고 떠들고 하다보니 집에서 짜증낼 것도 덜 내게 됩디다. 돌아가면 금세 언제 월요일 올까 목요일 올까 기다립니다."

월드컵을 계기로 뒤늦게 축구를 알게 됐다는 허순금(44)씨.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는 그녀는 "다음 훈련에 올 욕심으로 산다"고 말한다.

몸싸움 승부는 가려졌다. 서로 부딪히며 힘을 쓰는 사이 어느덧 웃음이 묻어난다.
몸싸움 승부는 가려졌다. 서로 부딪히며 힘을 쓰는 사이 어느덧 웃음이 묻어난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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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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