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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에 근무할 때 이야기입니다. 비무장지대란 38도선에 군사분계선을 긋고 그 선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2km, 북쪽으로 2km 도합 4km를 완충지역으로 설정하고 설정된 선의 남쪽은 남방한계선, 북쪽은 북방한계선이라 부릅니다.
일명 철책선이라고도 하는 그 곳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은 정전협정에 따라 경화기만 휴대하며 철책 안쪽 비무장지대에 근무하는 장병들은 수색대원으로 가슴에 민정경찰이란 마크를 달고 여름에도 방탄조끼를 입고 근무합니다.
비무장지대에는 일명 플라스틱 지뢰라고 부르는 지뢰가 무수히 깔려 있습니다. 손전등 뒷마개처럼 생긴 지뢰인데 밟으면 발목만 잘려진다 해서 일명 발목지뢰라고도 부릅니다. 6·25 당시 비행기로 뿌려놨다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빗물에 쓸리고 흙에 묻혀서 아무 곳에나 굴러다니지요. 이 지뢰는 금속탐지기로도 탐지가 안 되기 때문에 장병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곳에서 성남이 고향인 동기생과 같이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기들끼리는 끔찍히 위했습니다.
어느 날 내가 근무하는 부대가 전진 배치 임무를 받았습니다. 임무수행 중 점심을 못 먹은 나 대신 근무를 자처한 친구가 벙커 밖으로 나간지 5분도 안 돼 '쾅' 소리가 들렸습니다. 대남 방송이 들리지 않는 시간은 적막만 감도는 곳인데 폭음이 들리다니…. 숟가락을 내 던지고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친구가 한 다리로 뛰면서 "내 발! 내 발!"하면서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지뢰를 밟은 겁니다. 조금 전까지 있던 친구의 다리가 없어젔습니다. 콸콸 쏟아지는 피를 군복으로 둘둘 말아 지혈을 한 다음 들것에 실어서 남방한계선(GOP)으로 후송했습니다. 정전협정에 따라 비무장지대에는 헬기가 뜰 수 없기 때문에 남방한계선 밖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오피 밖으로 나가려면 어른 머리통 만한 자물통으로 잠겨 있는 철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열쇠를 관리하는 장교가 돌발상황을 예견하지 못하고 자리를 비운 탓에 시각을 다투는데 문을 빨리 열지 못했습니다.
"미친새끼들. 빨리 안 열면 죽여버릴 거야."
총을 빼들고 빨리 안 열면 쏴 죽인다고 수선을 피우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자꾸 지체되었습니다. 지체되는 동안 친구의 몸에서 빠져 나가던 피는 멈췄습니다.
처음으로 친구의 발목이 있었던 잘려나간 자리를 보았습니다. 화기에 퉁퉁 부어 오른 발목을 보는 순간,
'아!'
나는 순대를 생각했습니다. 칼로 잘려 나간 것처럼 일자로 끊어진 친구의 다리 속에 있던 혈관, 뼈, 살 등이 칼로 썰어 놓은 순대와 똑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 대신 평생 불구로 살게 된 친구의 잘려진 발목을 보고 왜 순대 생각을 했을까?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난 그날 이후 순대를 먹지 않았으며 순대집이 보이면 돌아서 지나갔습니다.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다시 순대를 먹습니다. 세월이 기억을 퇴색시킨 모양입니다. 내가 있는 동네에 근사한 순대 체인점이 생겼고 가끔 그 집에 가서 식사를 합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 그 친구가 어디에 사는지 모릅니다. 가끔 성남에 가면 그 친구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그 친구를 생각하면 고맙고 죄스럽다는 생각입니다. 멀쩡한 두 다리로 살고 있는 것은 순전히 내 대신 다리가 잘려나간 친구 덕분이거든요.
그 생각을 하면 평생 순대를 먹으면 안 되는데 먹는걸 보면 난 참 나쁜인간임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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