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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농민의 죽음이
명절로 분주한 이 아침을 깨웁니다
한 농민의 죽음이
태풍에 휩쓸린 이 반도를 깨웁니다
쌀 수입하면 우리 농민 다 죽는다고
농수산물 수입개방 반대로 뜨겁던 그 해,
나는 'UR반대' 단식농성장에서
농민 이경해를 만났습니다
나는 농민회의 실무자로 참여했고
그는 농어민 후계자로 도의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많은 날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매우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농민 이경해를 기억하며
그를 농민열사로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의 평범한 이웃으로
그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제 농민회의 실무자도 아니고
농민을 위한 삶을 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희망을 잃은 농촌의 지도자로
벼랑 끝에 내몰린 농민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부끄러움을 안고 나는 오늘
비통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농민들이 제 목숨 같은 배추밭을 갈아엎고
농민들이 제 자식 같은 벼에 불을 놓는 심정으로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농민에 대한 어떤 희망도 없는 정부에 항거하며
여의도로 청와대로 모여 근조 상여를 태우던
농민들의 애타는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강대국들의 개방 압력에 못 이겨
우리 농업과 우리 농민의 목줄을 내준 정부에게
나는 묻습니다 누가 농민 이경해의 목을 쥐고
누가 농민 이경해를 죽게 만들었냐고
우리 농민에게 죄가 있다면
정부의 정책에 말없이 따른 죄
소를 기르라면 소를 기르고 그래서 소파동이 나고
고추를 심으라면 고추를 심고 그래서 고추파동이 나고
정부의 정책에 순순히 따른 결과가
오늘 피폐해진 우리 농촌의 모습입니다
정부의 정책에 묵묵히 따른 대가가
오늘 빚더미에 내몰린 우리 농민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참 좋은 사람을 잃었습니다
비통하고 가슴을 칠 일입니다
그러나 이역의 땅에서 죽어간 농민 이경해를 떠올리며
그의 죽음을 미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순한 득실에 따라 우리 농업을 희생시키고
죽음으로 항거한 농민의 소리를 또 다시 멀리한다면
정부는 더 큰 화를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일만 생기면 말로만 대책을 내놓는 정부
일만 생기면 농민에게 희생만을 강요하는 정부
우리 농민들은 그런 무능한 정부를
그런 힘없는 정부를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농민 이경해!
그는 이땅의 진정한 농민이었고
위기에 처한 세계 농민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고이 잠드소서!
그리고 농민이 대접받는 세상에
다시 농민의 이름으로 부활하소서
나는 농민 이경해와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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