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여성들은 브래지어와 팬티 등의 속옷을 입는다. 그런데 조선 여인들은 어떤 속옷을 입었을까? 지금 우리가 아는 한복이 조선시대에도 똑같은 옷이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우린 언뜻 가져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 등을 풀어줄 특별전이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일상복에 담긴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 옷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생활 속에 담긴 우리 옷의 발자취”기획전을 지난 8월 13일부터 9월 29일(48일간)까지 열고 있다. 이번 기획전은 우리나라 옷의 흐름을 일상복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우리 옷의 가장 기본이 되는 치마·저고리, 바지·저고리가 어떻게 변화 유지되어 왔는가를 통시적으로 살펴보는 자리이다.
이번 전시는 일상복의 쓰임새와 변화를 중심으로 한 관련자료 200여 점을 총 5부로 나누어 전시한다. 제1부는 '언제나 영원한 우리 옷', 제2부는 '시대의 감각을 담아', 제3부는 '소망을 담는 옷', 제4부는 '주연을 빛내는 조연'이며, 마지막 제5부는 '세계를 우리 품에'이다.
벽화 밖으로 나온 치마·저고리, 바지·저고리
제 1부는 '언제나 영원한 우리 옷'인데 고구려 고분벽화와 외국인이 본 우리 옷, 그리고 조선시대에 점차 윗옷과 아래옷의 비율을 달리하며 변화했던 여성의 옷차림에 대한 비교 전시 등을 통해 우리 일상복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알려준다.
특히 안악 3호분의 남녀와 색동치마가 등장하는 수산리 벽화, 사신들의 차림 등이 잘 드러나 있는 고분벽화를 보여주고, 화려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일상복의 모습을 찾아내 재현함으로써 옛 벽화 속의 옷을 통해서 당시의 일상과 복식의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게 한다.
옛날에도 유행은 있었다.
제 2부 '시대의 감각을 담아'는 각 시대에 유행했던 복식을 살펴보는 자리이다. 유행은 시대를 초월한다. 오늘날만이 아니라 옛날에도 나름의 유행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중국 복식의 영향이 컸음을 물론 서양 등의 영향도 받았음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 말에는 서양 양복의 영향을 받아 조끼가 유행했고, 중국의 마고자가 전래되어 우리 옷이 훨씬 다채로운 변화와 유행을 맞았음을 살필 수 있다. 이런 유행의 변화상을 보여주고자 단령의 변화과정 및 다양한 외투의 변화 모습 등을 전시고 있어서 시대에 따라 옷의 유행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삼국시대에 유행했던 비단벌레의 날개를 이용한 옥충식(玉蟲飾) 치마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재현되어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옥충식 치마는 신라 금관총에서 발견된 것으로, 비단벌레의 날개를 꽃무늬 모양의 옷감에 붙여 장식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발굴보고서를 통해 그 존재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옥충식을 통일신라의 치마에 그대로 재현해 보임으로써 삼국시대 우리 옷의 유행과 장식 및 문양 등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아울러 이번 전시에서는 이응해(1547~1626) 장군의 방령도 소개되고 있다. 기존에 알려진 사각깃 모양을 가진 방령(方領)(설명글 1)은 앞은 길고 뒤가 짧아 말 탈 때 입는 옷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응해 방령은 앞뒤 길이가 같아 일반 외투에서도 방령이 이용된 것으로 나타나, 조선시대 남성 외투의 다양한 맵시가 주목을 끌고 있다.
건강, 장수, 행복, 사랑을 담아낸 옷들
제 3부는 '소망을 담는 옷'으로 옷을 짓는 이 또는 입는 이의 바람을 담아 정성껏 장식으로 꾸몄던 옷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글자(壽 또는 福 등)나 십장생(설명글 2) 그림 혹은 꽃무늬 등으로 자식의 건강함을 빌고, 지혜로움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장식으로 담았던 아이들의 옷에서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기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혼례복인 활옷을 한 땀 한 땀 정성껏 자수로 담아 펼쳐낸 고운 무늬들에서는 인생의 반려자를 맞아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데 대한 희망과 행복에 대한 간절한 기원이 담겨 있다.
옷의 아름다운 장식이 단지 멋을 내기 위한 것만이 아니고, 바라던 소망을 담은 마음의 무늬임을 알게 한다.
가려진 속옷과 천연염색 직물의 아름다움
제4부는 '주연을 빛내는 조연'인데 우리의 다양한 속옷문화를 비롯해 옷을 만드는 재료인 직물과 옷의 색을 곱게 물들이는 염료 등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겉옷의 입음새를 완성시키는 다양한 속옷들을 전시함으로써 서양의 옷맵시와는 달리 속옷을 이음으로써 겉옷의 맵시를 마무리하는 우리 옷 문화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특성을 보여준다.
속바지, 단속곳(설명글 3), 무지기(설명글 4) 등의 속옷이 있었기에 미인도처럼 여성의 엉덩이 부분이 풍성해 보이고 발목 쪽으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항아리실루엣이라고 하는 독특한 맵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풍속화와 미인도 등에 보이는 여인의 아름다움은 겉옷이 지닌 아름다움의 단순한 표출이기보다는 내면 또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도 가꾸어 보듬은 데서 비롯된 아름다움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아울러 우리 옷을 만드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직물인 견, 베, 모시, 면 등을 구분하여 그 종류를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이와 더불어 쪽, 자초, 오미자, 오리나무, 황벽 등 천연염료가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색상의 세계로 관람객들을 안내하여 우리 천연염색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도록 했다.
세계를 향한 우리 옷의 고운 발걸음
끝으로 제 5부에서는 '세계를 우리 품에'로 우리 한복의 세계화를 모색하고자 하는 자리이다. 예전에 입었던 우리 옷의 재질이나 형태를 발전시켜 현대적 감각 및 실용성과 어우러진 옷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시각에서 고려시대의 요선철릭을 이용하여 만든 여자 외투, 조각보를 이용한 외투 등 전통을 받아들이고 활용하여 다양하게 개발한 우리 옷을 새로 소개한다.
그동안 한복 복식의 전시는 일상복보다는 신분이나 기능에 따라 구분하여 전시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이런 면 보다는 우리 옷이 지닌 생활 속의 미를 집중 조명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이 되는 옷을 일상이라는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 속에서 살피고, 그 의미를 찾아봄으로써 우리 옷의 일상성과 일상복의 변화 등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생활문화의 참모습을 더듬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또 그동안의 전시회에서는 단편적이고, 전 시대를 아우르지 못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지만 여기선 전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하겠다. 특히 조선의 전기에서 후기로 오면서 저고리의 길이는 짧아지고, 상대적으로 치마의 길이가 길어진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 등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기획자의 관객을 배려하는 또 하나의 따뜻한 마음씨를 엿볼 수 있다. 그저 보기만 하는 그런 전시가 아니라 우리옷의 이해를 위한 체험의 장을 마련한 점이 돋보인다. 우리의 다양한 속옷문화를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림으로 속옷을 입혀보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꼭 아기들이 인형 옷 입히기를 연상케 하는 세심한 배려이다.
게다가 직물짜기의 기본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간이베틀을 마련하여 씨실과 날실의 교차로 완성되는 직물짜기의 원리를 체험할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간단한 체험이겠지만 그래도 베틀의 원리와 우리 조상들의 의생활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다만 제 5부 '세계를 우리 품에'의 경우 전통한복을 현대화한 생활한복이 몇 점 선보이는데 전통한복의 큰 특징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듯 하여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선철릭의 허리선과 주름을 이용하고, 조각보와 같은 맵시를 만들어 낸 점이 돋보였지만 직선진동(설명글 5),섶(설명글 6) 등 중요한 장점이 배제된 것은 문제로 보였다.
지금 시판되는 대부분의 생활한복이 전통에서 급격히 멀어지면서 특징을 상실하여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한다는 주장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요즘 우리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옷을 잃어버렸다. 전통명절에도 남의 나라 옷을 자신들의 옷인 양 예사로 입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번 한가위에도 문화재청은 한복입은 관람객을 고궁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도록 했지만 고궁엔 한복을 입은 사람들을 찾기가 힘든 지경이 되어 버렸다.
옷의 진정한 생명력은 입고 생활하는 일상성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상성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물론 그 나름의 유행을 보이고 있어 우리 복식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때문에 생활 속에서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찾고 시대에 따른 변화상을 살피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복식의 참다운 멋과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우리 복식문화의 역사성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많은 우리 한국인들이 다시 한복으로 돌아오는 날을 손꼽아 기대해 본다.
문의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담당자 김영재(☏ 02-720-3138, yjkim60@nf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