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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꾸미가 이스트 퍼스(East Perth)역까지 데려다 주는 바람에 10시55분 차인데 8시 55분에 도착했다. 그와 가볍게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우리가 기다리는 기차는 사우스 레일 오스트레일리아(south rail Australia)에서 운영하는 인디안 퍼시픽(Indian Pacific)이다. 이 장거리 기차를 타고 우리는 2박 3일을 달려 남호주의 중심도시인 애들레이드로 간다.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바람이 따뜻했고, 햇빛이 고왔고, 하늘이 맑았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졸았다. 요즘 가뭄이라는 퍼스에 어제 잠깐 내린 비 덕분인 것 같았다.

기차시간이 다가오자 대합실에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다. 여기저기서 베개를 끌어 안은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정신은 멀쩡해보였다. 미친 사람이나 대낮에 베개들고 돌아다닌다고 알고 있던 나는 참, 이상했다. 지니한테 물어보니 자기도 처음엔 너무 낯설었다고하며 좀 있으면 알게 된단다.

기차는 깨끗했다. 여행자를 위해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 있었다. 좁지만 장거리 기차여행객들을 위하여 샤워시설도 되어 있었고 타월들도 크기별로 준비되어 있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늘의 색과 바다의 색이 구별되지 않는다. 그저 푸르디 푸르다. 구름과 파도가 구별되지 않고 희고 희다. 어느 덧 기차는 누런 벌판을 달린다. 계속되는 누런 들판 속으로 달려간다. 이젠, 붉은 땅이 계속된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내 발을 건드렸다. 꼬마 3명이서 숨바꼭질을 하는지 의자 밑으로 숨었다. '몇 살이냐'고 물으니 7살, 한 명은 6살 6개월 그리고 5살이란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6개월도 이야기하는게 낯설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보라색 옷을 입은 아이가 똘똘하고 이뻤다. 여러번 장난을 치며 놀았는데 별 기억은 없고 그저 똘똘한 이미지만 남아있다.

독일의 작곡가 헤르만 네케(Hermann Necke)가 만들고 어효선이 작사한 합창곡 크시코스의 우편마차(Csikos Post)가 떠 오른다.

'들길을 지나 저 멀리 고개 넘고 내를 건너서 비바람 부는 날에도 달려간다 달려간다 우편마차'

기차는 밝고 경쾌하게 달리고 달린다. 나는 일몰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꺼낸다. 온통 붉은 빛이다. 땅도 하늘도 내 마음도 붉은 그리움이다.

달리고 달려 밤 9시경에 도착한 곳은 광산을 했던 칼구리(Kalgoorlie)역이다. 칼구리에 대한 부분을 찾아 읽어본다. 칼구리는 에버리지널 언어로 '포크 모양을 한 세 개의 선'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쉬어간단다. 퍼스에서 동쪽으로 600km떨어진 금광도시로 퍼스와 애들레이드를 잇는 교통의 거점이기도하다.

칼구리는 1893년 패디 해넌이 마운틴 샬롯에서 금을 발견하면서 소문이 퍼져 일확천금을 꿈꾸는 호주사람들이 몰려와 이루어진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경마와 하키, 권투, 사격 등의 스포츠와 도박이 급속히 발달하여 1897년 7월에는 '티볼리가든'이 문을 열어 음악 콘테스트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1896년 퍼스와 잇는 철로가 개통 되었고 1903년 파이프공사로 식수난도 해결되었다. 따라서 인구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생산비용이 증가하고 금값이 하락함에 금광산업도 쇠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자들이 칼구리로 계속 모여들어 1934년 현지인과 이주자간에 폭동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쇠퇴기에 접어든 칼구리는 1960년대 니켈 붐이 일면서 1970년 중반에 다시 활기를 찾아 지금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첫 금광 발견자의 이름을 딴 해넌스트릿(Hannan St)을 따라 어디로 어디로 다들 몰려간다. 우리도 간다. 마을은 깜깜하다. 그저 커다란 마켓의 불빛과 pub주변에서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시내 안으로 들어가니 호텔, 은행, 우체국 등이 보였지만 밤이 깊어서 인지 스산했다. 노천에서 술을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거의 조용했다. 가끔, 애버리지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 우리와 여행을 함께 시작한 쵸코
ⓒ 이진
무서워서 더 이상 가지 않고 역으로 되돌아 왔다. 지금은 폐쇄된 철뚝에 앉아 인성이가 시드니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지니에게 보내 준 곰돌이를 데리고 사진을 찍는다. 렌즈를 통해서 본 곰돌이는 인형이 아니라 같이 여행하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김장훈의 노래를 듣는다.

다시, 밤11시에 기차를 타고 Cook이라는 마을로 왔다. 약 20분간을 머문다고 했다.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니 온통 반짝이는 별들이다. 드러누워서 별을 보고 싶다. 역무원이 곰돌이를 보고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없다'고 하자 그가 '쵸코'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다시 쵸코와 우리의 기차여행은 시작 되었다. 사람들은 아까 들고 탔던 베개를 꺼내고 이불까지 꺼내 의자에 그리고 바닥에 깔고 누워서 잠을 청한다. '하하하 저거였구나' 발이 통로까지 나오기도 한다. 나와 지니는 에어필로우(Air pillow)에 바람을 넣고 꽂꽂이 앉아서 잠을 청한다. 아직 우린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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