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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여뀌
개여뀌 ⓒ 김자윤
그 날은 모처럼 해방감을 만끽하면서 혼자 들꽃 촬영을 했습니다.

늘 아내와 함께 사진촬영을 했는데 그 날은 추석 전날이어서 아내는 종일 음식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마침 객지에 나가 있던 아들이 집에 와 있어서 이런저런 심부름은 아들에게 맡기고 아침 일찍 구봉산에 올랐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산에만 가면 기분이 좋습니다. 철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들꽃들이 여전히 반겨주었습니다. 아내와 같이 갈 때는 적당히 보조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약간 불편했는데 이날은 너무 편안했습니다. 오래 머물기도 하고 때로는 빨리 오르기도 하면서 아무 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마음가는 대로 들꽃과 어울린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습니다. 등산을 혼자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아내는 들꽃을 찾아주고 저는 사진을 찍으면서 늘 같이 산에 다녔습니다. 그러면서도 별로 불만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2년 전 새 카메라를 사게 되면서 헌 카메라를 아내에게 주면서 사진 찍기를 권했습니다. 긴 시간 설득해서 드디어 제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제 소원은 부부가 같이 사진 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을 가르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결혼 후 30년이 다 되도록 보통 여인네들처럼 살림만 하는 여자였습니다. 50이 넘어 갑자기 공부하려고 하니 잘 될 턱이 있겠습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려운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후 사진 같은 사진이 나오기 시작하자 아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뻐했습니다.

지금은 자기가 찍은 사진을 컴퓨터로 읽어 포토샵으로 편집까지 합니다. 아름다운 글과 음악까지 넣어서 자기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합니다. 사진에 대해서 책으로 배운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생각이 무척 자유로워 깜짝 놀랄만한 사진을 종종 찍는 바람에 제 위치가 흔들릴까봐 두렵기도 하고 가슴속까지 뿌듯한 기쁨을 느끼기도 하는 복잡한 마음 상태가 될 때가 자주 있습니다.

부부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느낌을 공유하면서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좋은 것 같습니다. 같이 사진을 찍은 후로는 부부싸움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종종 산 속에서 싸울 때가 있습니다만 금방 풀어집니다. 산에 가면 오순도순 같이 사진을 찍을 것 같아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꽃을 쫓아 가다보면 어느새 헤어지게 됩니다. 어쩔 때는 한 시간 이상 서로 찾아 헤매다가 간신히 만나면 서로 상대가 잘못했다고 목청 높여 싸웁니다. 휴대폰을 사줄까도 생각했지만 용도가 산에서 서로 찾을 때 밖에 없으니 너무 아까워 아직 못 사주고 있습니다.

며칠 전 고향에 벌초하러 갈 때 아내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웃 포커스가 무슨 뜻인가요?"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가르쳤는데 새삼스럽게 물어올 때는 맥이 빠지기도 하지만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기 시작했기 때문에 질문을 자주 합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하는 아내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런 글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내한테 욕은 안 먹을는지 걱정이 앞섭니다.

산씀바귀
산씀바귀 ⓒ 김자윤
이삭여뀌
이삭여뀌 ⓒ 김자윤
좀나팔꽃
좀나팔꽃 ⓒ 김자윤
도깨비바늘
도깨비바늘 ⓒ 김자윤
꼭두서니
꼭두서니 ⓒ 김자윤
층꽃나무
층꽃나무 ⓒ 김자윤
흰도깨비바늘
흰도깨비바늘 ⓒ 김자윤
산박하
산박하 ⓒ 김자윤
구봉산 정상에서 본 남쪽 여수
구봉산 정상에서 본 남쪽 여수 ⓒ 김자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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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정년퇴직한 후 태어난 곳으로 귀농 했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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