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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직장 동료에 대한 기억이다. 결혼 후 첫 아이를 낳은 그에게 아기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물었더니, '큰 집 형들'의 항렬을 따라 지어야지 하면서 더 이상 말을 이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막연하게 지방 도시 출신인 그의 집안이 나름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라고 추측해 버리고 말았다.
그 때의 '큰 집 형들'이 다름 아닌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인 큰어머니의 자식들이며 자신의 어머니는 둘째 부인으로 슬하에 아들 하나, 곧 그 동료를 두었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꿈은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밥 먹고 사이 좋게 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도 평범하고 소박한 꿈으로 보이겠지만, 그에게는 얼마나 절절한 바람이었을 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안타깝게도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내 되는 사람의 지방 근무로 인해 늘 주말 부부로 지내며 아이를 번갈아 맡아 길러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다 자랐을 텐데 주말 부부의 살림을 합쳤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그 때는 그랬다고, 어쩔 수가 없었다고,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고 말씀을 하신다. 연극〈작은 할머니〉의 주인공 작은 할머니도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남편은 독립운동 하러 떠나서 감감 무소식이고, 시부모님과 어린 딸 조춘이를 데리고 사는 나날은 배고프고 팍팍해 괴롭기만 하다. 일본 경찰들은 남편의 독립 운동을 이유로 자신을 정신대에 보내느니 어쩌니 을러대기 일쑤이다.
부잣집에서 아들을 낳아줄 작은댁을 구한다는 소식에 땅문서 받아 시부모께 드리고 씨받이로 들어간다. 아들 하나만 낳아주면 다시 집으로 와 시부모 모시고 딸 기르며 살 줄 알았던 순진한 작은 할머니. 오래도록 소식이 없다가 큰댁의 정성으로 아들을 낳는다.
자기 마음 대로인 남편이 밉지만 놓아주지 않는 남편이 무섭다. 그러면서 형님인 큰댁과의 정에 마음을 붙이고 살아간다. 6·25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큰댁이 죽지만 사망 신고를 하지 못한 채, 자신이 낳은 아들에게까지 작은 어머니로 행세하기에 이른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의 진짜 어머니 자리를 찾고 호적에도 오르지만 이미 머리는 하얗게 변했다. 치매에 걸린 남편은 여전히 큰 소리 치며 구박하지만, 이제 할머니는 할 말 다하며 그래도 정성껏 남편의 시중을 든다.
시집 갈 날을 앞둔 손녀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은 할머니. 남편이 야단 칠 때 대청 마루 밑으로 들어가 숨었던 일을 떠올리며 너는 그러지 말라고, 마음이 대청 마루에 숨지 말고 찬찬히 알아듣게 설명하라고, 남편 마음도 대청 마루 밑에 숨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야기를 듣던 손녀는 그동안 입에 붙었던 '작은 할머니가' 아닌 '할머니'로 바꿔 부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해방이 되고 한 쪽 다리를 다친 채 살아 돌아온 본 남편과 마주친 작은 할머니. 배는 둘째를 가져 남산만하고, 서로 볼 낯이 없다며 미안해하는 두 사람은 소리내어 울 수도 없다. 씨받이로 들어간 아내 덕분에 부모와 딸아이의 목숨은 이을 수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부끄럽고 미안해하는 아내에게 어렵게 입을 열어 하는 말. "당신이 한 일은 모두 잘 한 일이요." 객석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루는 어느 덧 시집갈 나이가 된 조춘이가 엄마를 찾아온다. 어려서 두고 떠나온 딸이 식모살이 끝에 제 짝을 만나 시집간다고 하니 엄마는 그저 대견스러우면서도 미안해 어쩔 줄 모른다. 따지고 괴롭히려고 온 것은 아니지만 조춘이의 말투는 곱지 못하고, 그것이 또 서로 마음 아파 모녀는 속상하다.
과수원 맨 땅바닥에서 시집가기 전 어머니께 올리는 딸의 마지막 절에 어머니도 딸도 객석도 운다. '너만 잘 살면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모든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돼 가슴으로 전해져 온다.
정말 그 때는 다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큰댁, 작은댁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고, 그 사이에서 자녀들은 또 다른 고통으로 가슴 아파하며 그 상황을 자신의 인생에 고스란히 받아 새겨 넣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장면과 대사에서 젊은 사람들은 금방 그리고 쉽게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솔직히 잘 웃을 수 없었다. 너무 슬퍼서. 그렇게 살아야 했던 때가 있었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접어버리기에는 너무 아파서.
큰댁, 작은댁의 멍에는 누가 씌운 것인가. 시대가, 사회가, 제도가 만든 벽에 갇혀 한 세상 살아야 했던 우리 할머니를 만난 모처럼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는 사람 한 평생의 삶이 너무도 쓰고 아픈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도 연극 속 큰댁과 작은댁의 교감과 소통과 서로 아껴주는 정경은 작은 위안이 된다. 사람을 죽도록 아프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반대로 사람을 죽지 않고 살아가도록 끌어주고 안아주는 것 역시 사람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작은 할머니〉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은 고통을 몸으로 마음으로 겪어온 이 땅의 할머니들. 어머니들. 그 분들 노년은 그 무엇이 있어, 그 누가 있어 남은 인생을 따뜻하게 이끌어 드릴까. 바로 나이며, 바로 우리들인 것을 우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작은 할머니 - 그 여자의 소설 / 엄인희 작, 강영걸 연출, 출연 우상민, 공호석, 강선숙, 이효임, 김태수 등 / ∼ 9. 28 / 설치극장 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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